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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 허위 차용증 기초한 공정증서 집행 제동…“원인채권 없어 강제집행 불허”

판결·사건 리포트

가족 사이 자금 지원을 외부 차용으로 꾸며 만든 차용증과, 이를 전제로 작성된 공정증서의 효력을 둘러싼 분쟁에서 항소심 법원이 강제집행을 허용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겉으로는 채무 인수와 이자 지급이 이어졌더라도, 출발점이 된 금전소비대차계약 자체가 실제 돈거래 없는 통정허위표시라면 그 뒤에 작성된 공정증서 역시 집행의 근거가 될 수 없다는 취지다.

대전고등법원 제1민사부는 2025년 7월 23일 청구이의 사건에서 제1심을 취소하고, 피고가 공정증서에 기초해 진행하려던 강제집행을 불허했다. 재판부는 판결 확정 때까지 해당 공정증서 정본에 기초한 강제집행도 정지한다고 함께 판단했다. 사건의 핵심은 2013년 작성된 차용증이 진정한 금전대차를 반영한 것인지, 아니면 아들에게 건넨 부모 돈을 제3자에게 빌린 돈처럼 꾸미기 위해 작성된 허위 문서인지에 있었다.

판결문에 따르면 원고는 2018년 E로부터 토지와 임야를 사들이는 과정에서 매매대금 중 3억 원을 당장 지급하기 어렵게 되자, E가 언급한 기존 차용증상 채무를 자신이 떠안는 방식으로 문제를 정리했다. 이후 원고는 2019년 지불확인서를 써주고, 2022년에는 피고 요청에 따라 공정증서까지 작성했다. 그러나 원고는 뒤늦게 이 차용증의 기초가 된 돈거래 자체가 허위였고, 따라서 자신이 인수한 채무도 무효라며 강제집행을 다투는 소송을 냈다.

재판부는 먼저 실제 3억5천만 원의 출처를 따져봤다. E는 남편 소유 임야를 매도한 뒤 남은 돈 약 3억5천만 원을 예금했다가 2013년 6월 해약해 같은 날 아들 D 계좌로 송금한 것으로 조사됐다. 법원은 이런 금융거래 내역에 비춰볼 때 D에게 지급된 자금은 부모 측 자금으로 보는 것이 자연스럽고, 피고가 같은 무렵 E나 D에게 별도로 3억5천만 원을 건넸다고 볼 객관적 금융자료는 확인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피고는 과거 돈사를 팔고 받은 수표를 오랫동안 보관하다가 2013년 E에게 현금성 자금으로 빌려줬다고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이 설명도 쉽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거액의 수표를 금융기관에 맡기지 않고 6~7년간 궤짝에 넣어 보관했다는 진술 자체가 거래관념과 경험칙에 비춰 매우 이례적이라고 본 것이다. 법원은 이 대목에서 문서 형식보다 실제 자금 흐름과 진술의 개연성을 더 무겁게 봤다.

쟁점은 이후 이른바 변제 흐름으로 옮겨갔다. 피고는 E와 원고로부터 원금과 이자를 받아왔으므로 실제 채권채무관계가 존재한다고 맞섰다. 그러나 법원은 2014년 7월 이뤄진 계좌 거래를 세밀하게 들여다본 끝에, E가 피고 명의 계좌로 6,050만 원을 넣은 뒤 같은 날 거의 곧바로 그 돈이 다시 E 측 계좌로 되돌아간 사실에 주목했다. 재판부는 시간적 근접성과 거래 장소의 동일성 등을 종합하면, E가 피고 명의 계좌에 실질적 권한을 행사한 것으로 보이고, 실제 채무 변제였다면 이렇게 즉시 환류된 흐름은 쉽게 설명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피고 주장의 변화도 법원의 의심을 키운 요소였다. 처음에는 6천만 원을 받아 차량 구입과 술 구매, 생활비 등에 썼다고 했다가, 금융조회 결과 돈이 다시 E 계좌로 흘러간 사실이 드러난 뒤에는 “E가 잠시 쓰겠다며 다시 가져갔다”는 취지로 설명을 바꿨다. 하지만 법원은 당시 전표상 수표 발행 내역이 없고, 전체 주장도 일관되지 않는다며 신빙성을 인정하지 않았다.

이자 지급 내역도 피고에게 유리하게 작용하지 않았다. 원고는 2019년 지불확인서를 작성한 뒤에도 2022년까지는 피고가 아닌 E 명의 계좌로 매년 600만 원 안팎의 돈을 보냈고, 피고에게 직접 돈이 간 것은 2023년 10월 문자 요청 뒤 600만 원이 입금된 것이 거의 유일했다. 재판부는 진짜 채권자라면 장기간 독촉이나 보전 조치가 있었어야 하는데, 피고는 이 사건 차용증상 이자지급일로부터 9년 가까이 지난 시점에야 처음으로 원고에게 직접 이자 지급을 요구했다고 지적했다.

차용증 작성 경위와 관련해서도 법원은 원고 쪽 설명이 더 개연적이라고 봤다. 판결문에 따르면 피고와 E는 소송 제기 후 통화에서 “아들한테 피고에게 빌려서 준 것처럼 말했다”는 취지의 대화를 나눴고, 재판부는 이를 차용증이 실제 차용을 반영한 것이 아니라 외관을 만들기 위한 문서였다는 원고 주장에 부합하는 사정으로 해석했다. 결국 법원은 E와 피고 사이의 금전소비대차계약은 채무를 실제로 부담할 의사 없이 작성된 통정허위표시로 무효라고 판단했다.

이 판단이 내려지면서 그 뒤에 이어진 법률행위도 함께 무너졌다. 무효인 차용증상 채무를 전제로 한 원고의 채무인수 역시 효력이 없고, 그 채무를 담보하기 위해 작성된 공정증서도 원인채권이 존재하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따라서 해당 공정증서에 기초한 강제집행은 허용될 수 없다고 결론지었다.

이번 판결은 공정증서처럼 형식상 강한 집행력을 갖는 문서라도, 그 기초가 된 실질적 법률관계가 허위로 드러나면 집행 단계에서 제동이 걸릴 수 있음을 다시 보여준다. 특히 법원은 차용증과 지불확인서, 공정증서라는 연속된 문서보다 실제 자금의 출처와 환류 흐름, 장기간의 변제·독촉 양상, 당사자 대화의 맥락을 더 중시했다. 형식은 갖춰졌지만 실질이 없는 채권이라면, 뒤늦게라도 집행권원을 흔들 수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한 판결로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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