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착시’ 아니었다…코스피 1분기 실적, 수출·내수 업종까지 동반 회복

반도체 슈퍼사이클이 코스피 상장사 실적을 크게 끌어올렸지만,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제외하고도 기업 이익이 뚜렷하게 개선된 것으로 나타났다. 인공지능(AI) 투자 확대에 따른 메모리 반도체 호황이 시장 전체의 실적 지표를 밀어 올린 가운데, 화학·비금속·의료정밀·서비스 등 비반도체 업종에서도 이익 증가세가 확인되면서 코스피 실적 회복이 특정 대형주에만 기대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분석이 나온다.
한국거래소가 19일 유가증권시장 12월 결산법인 639곳의 올해 1분기 연결 실적을 집계한 결과, 전체 상장사의 매출액은 전년 동기 대비 19.49% 증가했고 영업이익은 175.83%, 순이익은 177.82% 급증했다. 매출액 대비 영업이익률은 16.85%, 순이익률은 15.25%로 각각 1년 전보다 크게 개선됐다. 기업들이 같은 매출을 올려도 더 많은 이익을 남기는 구조로 돌아섰다는 뜻이다.
가장 큰 배경은 단연 반도체다. 삼성전자는 올해 1분기 연결 기준 매출 133조9000억원, 영업이익 57조2000억원을 기록해 분기 기준 사상 최대 실적을 냈고, 메모리 사업의 고부가 제품 판매와 평균판매가격 상승이 실적을 견인했다고 밝혔다. SK하이닉스도 1분기 매출 52조5763억원, 영업이익 37조6103억원을 기록하며 매출 50조원을 처음 넘어섰고, 영업이익률은 72%에 달했다. 두 회사 모두 AI 인프라 투자 확대와 HBM, 서버용 D램, eSSD 등 고수익 제품 수요의 수혜를 직접적으로 받았다.
하지만 이번 실적의 핵심은 ‘삼전·닉스 효과’를 걷어내도 이익 증가세가 살아 있었다는 점이다. 두 회사가 전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10%에 달했지만, 이를 제외한 나머지 코스피 상장사들의 매출도 9.07% 늘었고 영업이익은 44.49%, 순이익은 55.79% 증가했다. 반도체가 지수를 끌고 간 것은 맞지만, 상장사 전반의 체력 회복도 함께 진행된 셈이다.
업종별로 보면 전기·전자의 영업이익이 491.75% 늘며 전체 증가 폭을 주도했다. 그러나 비금속, 의료·정밀기기, 일반서비스, 화학 업종도 각각 세 자릿수 영업이익 증가율을 기록했다. 수출 경기 회복, 원가 부담 완화, 가격 전가력 개선, 구조조정 효과 등이 복합적으로 반영된 결과로 풀이된다. 특히 평택항 등 주요 수출 거점에 차량과 컨테이너 물동량이 쌓이는 장면은 제조업과 물류, 자동차, 부품 산업의 회복 기대감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재무구조도 개선됐다. 코스피 상장사의 올해 3월 말 기준 부채비율은 108.74%로 지난해 말보다 1.64%포인트 낮아졌다. 이익이 늘어난 동시에 부채 부담이 소폭 줄면서 기업들의 재무 안정성도 나아진 것이다. 분석 대상 639곳 가운데 순이익 흑자를 낸 기업은 504곳으로, 1년 전보다 23곳 늘었다. 고금리와 경기 둔화 우려 속에서도 적자 기업보다 흑자 기업의 저변이 확대된 점은 시장에 긍정적인 신호다.
금융업 역시 대체로 개선세를 보였다. 별도로 집계된 금융업 42곳 가운데 은행을 제외한 금융사의 영업이익은 전년 대비 30.51%, 순이익은 28.82% 증가했다. 특히 증권업은 영업이익이 141.19%, 순이익이 139.33% 늘며 가장 두드러진 회복세를 보였다. 주식시장 거래대금 증가와 자본시장 활황이 실적에 반영된 것으로 해석된다. 반면 은행업은 영업이익과 순이익이 각각 8.95%, 7.28% 감소해 업권별 온도 차가 나타났다.
이번 실적은 코스피 시장의 회복 국면이 반도체 대형주 중심의 ‘착시’에 그치지 않을 가능성을 보여준다. 다만 지속성은 아직 변수다. 반도체 업황은 AI 투자 사이클과 가격 흐름에 민감하고, 비반도체 업종은 환율·원자재 가격·글로벌 수요 둔화 여부에 따라 이익 개선세가 흔들릴 수 있다. 금융업도 증시 환경이 꺾이면 증권사의 실적 회복세가 약해질 수 있다.
그럼에도 1분기 성적표만 놓고 보면 코스피 기업들은 매출 확대, 수익성 개선, 부채비율 하락이라는 세 가지 지표에서 모두 진전을 보였다. 반도체가 선두에서 끌고, 제조업과 서비스업 일부가 뒤따르는 구조가 만들어진 것이다. 시장의 관심은 이제 이익 급증이 일회성 반등에 머물지, 아니면 올해 연간 실적 개선 흐름으로 이어질지에 쏠릴 전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