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전용 주차구역만으로는 부족하다…출입구까지 이어지는 경로가 무장애 건축의 기준
장애인 전용 주차구역이 있다는 사실만으로 그 건물을 곧바로 ‘무장애 건축환경’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현행 기준은 주차면의 존재 여부보다 주차면에서 건물 출입구까지 실제로 이동할 수 있는 경로를 함께 보도록 짜여 있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기 전 마지막 구간인 주차구역, 보행통로, 출입구가 한 번에 연결돼야 접근성이 성립한다는 뜻이다.
국가법령정보센터에 공개된 ‘장애인·노인·임산부 등의 편의증진 보장에 관한 법률 시행규칙’ 별표 1을 보면, 장애인전용주차구역은 장애인 등이 출입할 수 있는 건축물의 출입구 또는 장애인용 승강설비와 가장 가까운 장소에 설치해야 한다. 또 주차구역에서 출입구 또는 승강설비로 가는 통로는 높이차이를 없애고, 유효폭 1.2미터 이상으로 확보하며, 자동차가 다니는 길과 분리해 설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주차면만 확보해 놓고 그 뒤 이동경로가 끊기면 제도의 취지에 맞지 않는 구조다.
BF 인증은 주차면이 아니라 접근·이용·이동 전 과정을 본다
보건복지부와 한국장애인개발원이 운영하는 장애물 없는 생활환경(BF) 인증제도도 같은 방향으로 설계돼 있다. BF 인증은 어린이, 노인, 장애인, 임산부뿐 아니라 일시적으로 이동에 제약이 있는 사람까지 포함해 시설을 접근·이용·이동하는 데 불편이 없는지를 계획, 설계, 시공, 관리 단계에서 평가하는 제도다. 주차장 한 항목만 통과했다고 인증이 부여되는 방식이 아니라, 건물의 진입과 내부 이용 흐름 전체를 본다.
이 제도는 단순 권고에 그치지도 않는다. 보건복지부 정책 안내와 관련 법령에 따르면 공원과 일부 신축·증축·개축 건축물 가운데 법령이 정한 의무인증시설은 BF 인증을 받아야 한다. 또 시행규칙은 BF 인증을 받은 대상시설에 대해서는 편의시설 설치기준 적합성 확인을 받은 것으로 보도록 정하고 있다. 제도상으로는 BF 인증이 주차면, 접근로, 출입구, 내부 이동 동선까지 함께 검증하는 관문인 셈이다.
전국 설치율은 올랐지만 ‘기준에 맞게 설치됐는가’는 다른 문제
실제 운영 결과를 보면 제도 도입과 현장 성과를 같은 것으로 보기 어렵다. 한국장애인개발원이 2024년 4월 공개한 ‘2023년 장애인 편의시설 설치 현황조사’에 따르면 분석 대상은 건물 19만991개, 편의시설 644만413개였다. 이 가운데 편의시설 설치율은 89.2%였지만, 기준에 맞게 설치된 적정 설치율은 79.2%에 그쳤다. 설치율과 적정 설치율 사이에 10.0%포인트 차이가 난 것이다.
이 수치는 무장애 건축환경을 볼 때 ‘있다’와 ‘제대로 작동한다’를 구분해야 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주차구역, 접근로, 출입문, 화장실 같은 항목이 도면이나 현장에 존재하더라도 실제 규격과 연결 동선이 기준에 맞지 않으면 이용자는 불편을 겪을 수 있다. 장애인 전용 주차구역을 확보했더라도 출입구까지의 통로 폭이 좁거나 차량 동선과 섞여 있거나, 단차가 남아 있으면 접근성은 크게 떨어진다.
지역별 차이도 적지 않다. 같은 조사에서 17개 시도 가운데 적정 설치율은 세종 86.7%, 서울 84.0%, 경기 82.7%로 비교적 높았고, 전남 71.5%, 강원 73.9% 등은 상대적으로 낮았다. 설치율 자체보다 적정 설치율의 격차가 더 크다는 점은 제도가 전국적으로 적용되고 있어도 실제 품질은 지역마다 다를 수 있음을 시사한다.
시민이 궁금한 ‘실제 이동거리’는 공개 통계만으로 바로 답하기 어렵다
다만 시민이 가장 궁금해하는 질문, 곧 ‘장애인 전용 주차구역에서 건물 출입구까지 실제로 얼마나 멀고 안전한가’에 대해 공개 자료가 곧바로 답을 주는 것은 아니다. 한국장애인개발원 BF 인증 실적 현황 공개 목록에는 인증번호, 지역, 시설명, 인증대상, 용도구분, 인증일자, 인증기관 등이 정리돼 있지만, 주차면에서 출입구까지의 실제 거리나 동선 길이가 표준 지표로 공개되지는 않는다. 인증 건수가 늘었다는 사실만으로 현장의 체감 접근성을 단정하기 어려운 이유다.
결국 시민 입장에서 더 필요한 정보는 주차면 수 자체보다 건물 바깥에서 안쪽으로 이어지는 이동 연속성이다. 주차구역이 가장 가까운 위치에 있는지, 출입구까지 단차 없이 이어지는지, 보행통로 폭이 충분한지, 차량과 분리돼 있는지, 비가 오거나 야간에도 안전하게 이동할 수 있는지 같은 항목이 실제 이용성을 좌우한다. 현행 제도도 이미 그 방향으로 기준을 두고 있지만, 공개 통계와 인증 목록은 아직 그 체감 거리와 품질을 한눈에 비교할 만큼 세분화돼 있지 않다.
따라서 무장애 건축환경을 평가할 때는 장애인 전용 주차구역의 유무만 묻는 방식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갈 필요가 있다. 제도 접근성은 주차구역에서 출입구까지의 연속된 경로를 요구하고 있고, 운영 성과는 설치율보다 적정 설치율에서 갈린다. ‘주차면이 있느냐’보다 ‘그 주차면에서 실제로 건물 안까지 갈 수 있느냐’가 더 정확한 판단 기준에 가깝다.
자료: 국가법령정보센터, 장애인·노인·임산부 등의 편의증진 보장에 관한 법률 시행규칙 별표 1 및 시행규칙 본문; 보건복지부, 장애인편의시설관련정책; 한국장애인개발원, 2023년 장애인 편의시설 설치 현황조사(2024-04-12); 한국장애인개발원, 장애물 없는 생활환경(BF) 인증제도 BF 인증 개요·인증실적 현황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