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사람에게 선택의 자유가 똑같이 중요할까…문화에 따라 달라지는 결정의 심리

오피니언

시나 아이옌가의 2010년 TED 강연을 후속 연구로 재검증…미국 아동은 직접 선택할 때 높은 성과, 아시아계 아동은 어머니의 선택에 더 적극적으로 반응

식당에 들어간 손님이 음식을 주문한다. 메뉴에 없는 조합이라도 재료가 준비돼 있다면 자신의 취향에 맞춰 달라고 요구할 수 있고, 식당은 이를 합리적인 고객 서비스로 받아들일 수 있다. 하지만 다른 문화적 환경에서는 정해진 조리법을 바꾸는 요구가 음식의 전통이나 제공자의 전문성을 존중하지 않는 행동으로 이해될 수도 있다.

같은 요청이 어느 사회에서는 정당한 소비자의 권리로, 다른 사회에서는 적절하지 않은 선택으로 해석될 수 있다는 뜻이다.

이러한 차이는 음식 주문과 같은 일상적인 상황에서만 나타나지 않는다. 자녀의 교육을 결정하거나 직업을 선택하고, 가족의 의료문제를 논의하는 과정에서도 누가 최종 결정을 내려야 하는지에 관한 기대는 달라질 수 있다.

현대사회에서는 개인의 선택권이 자유와 자율성을 나타내는 중요한 가치로 인정받는다. 소비자는 여러 상품 가운데 자신의 선호에 맞는 제품을 고를 수 있어야 하고, 학생은 원하는 진로를 선택할 수 있어야 하며, 노동자는 직업과 근무환경에 관한 의사결정에 참여할 권리를 가진다.

그러나 개인이 모든 결정을 직접 내릴 수 있어야 만족스럽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는 주장이 모든 문화적 환경과 상황에서 같은 의미를 가질까.

미국 컬럼비아대학교 경영대학원의 심리학자 시나 아이옌가(Sheena Iyengar)는 2010년 TEDGlobal 강연 ‘The Art of Choosing’에서 이 질문을 제기했다.

그는 선택의 자유를 인간에게 보편적으로 중요한 가치로 인정하면서도, 선택을 경험하는 방식은 성장한 문화와 사회적 관계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미국 사회에서 강조하는 개인의 독립적인 결정이 다른 문화권에서도 반드시 가장 만족스러운 선택 방식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은 아니라고 지적했다.

강연의 핵심은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선택지를 원하는가라는 문제에만 있지 않았다. 누가 선택해야 하는지, 어떤 선택이 실제로 의미 있는지, 결정을 직접 내려야 한다는 요구 자체가 어떤 부담을 발생시키는지에 관한 질문이었다.

그가 소개한 실험에서는 같은 과제를 수행하는 아이들이라도 직접 선택했는지, 교사가 선택했는지, 어머니가 선택했다고 믿었는지에 따라 서로 다른 결과를 보였다.

미국 내 유럽계 아동들은 스스로 선택한 과제에서 더 높은 수행을 보였지만, 아시아계 아동들은 어머니가 선택했다고 믿은 조건에서 더 좋은 성과를 나타냈다.

이 결과는 선택의 자유가 언제나 동일한 심리적 동기를 제공한다는 가정에 의문을 제기했다.

그러나 문화적 차이를 보여주는 하나의 실험만으로 미국인은 개인주의적이고 동아시아인은 집단주의적이라는 결론을 내릴 수는 없다.

2022년 발표된 미·중 비교 재현연구에서는 미국과 중국 참가자의 선택 패턴에서 통계적인 차이가 확인됐지만, 그 차이의 크기는 최초 연구보다 훨씬 작았다. 특히 중국 참가자들은 독특한 선택지보다 다수가 선택하는 대안을 명확하게 선호한다는 기존의 예상과 다른 모습을 보였다.

16년 전의 강연을 오늘날 다시 살펴봐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선택의 의미가 문화에 따라 달라진다는 설명은 여전히 중요한 문제를 제기하지만, 그 차이를 고정된 민족적 특성이나 국가별 행동 규칙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일본에서 설탕을 넣은 녹차를 주문하자 왜 문제가 발생했나


아이옌가는 강연을 일본 교토에서 경험한 일화로 시작했다.

그는 연구를 위해 일본에 머물던 시절 한 식당에서 설탕을 넣은 녹차를 주문했다. 직원은 일본에서는 녹차에 설탕을 넣지 않는다고 설명했지만, 아이옌가는 자신의 취향에 맞는 음료를 마시고 싶다는 의사를 거듭 밝혔다.

직원과 관리자 사이에 논의가 이어진 끝에 식당 측은 설탕이 없다는 이유로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런데 아이옌가가 녹차 대신 커피를 주문하자 커피잔 옆에는 설탕 두 봉지가 놓여 있었다.

아이옌가는 이 경험을 단순한 서비스상의 오해가 아니라 선택에 대한 문화적 관점의 차이로 해석했다.

미국에서 성장한 고객에게 자신의 취향을 반영해 음식을 조정해 달라는 요청은 합리적인 소비자 선택일 수 있다. 반면 그가 경험한 일본 식당에서는 녹차를 정해진 방식으로 제공하는 것이 올바른 서비스라고 받아들여졌다는 설명이다.

이 일화는 선택권에 관한 중요한 문제를 제시한다.

어떤 사람은 자신의 취향을 직접 표현하고 그에 맞는 결과를 얻는 과정에서 존중받고 있다고 느낀다. 반면 다른 사람은 해당 분야의 경험과 전문성을 가진 사람이 적절한 방식을 추천하거나 결정해 주는 과정에서 더 좋은 서비스를 경험한다고 느낄 수 있다.

그러나 한 식당에서 발생한 사건을 일본 사회 전체의 선택 문화를 대표하는 증거로 사용할 수는 없다.

그 식당의 운영방침이나 당시 직원의 판단이 특별했을 가능성도 있으며, 일본의 다른 식당에서는 같은 요청을 받아들였을 수도 있다.

아이옌가 역시 이 일화를 엄격한 문화 비교 실험의 결과로 제시한 것은 아니었다. 선택의 의미가 서로 다르게 해석될 수 있다는 사실을 설명하기 위한 도입 사례였다.

문화적 차이에 관한 주장을 검증하려면 실제로 여러 집단을 비교한 연구가 필요하다.


스스로 고른 과제를 아이들이 더 잘한다는 믿음은 보편적인가


1999년 시나 아이옌가와 마크 레퍼는 학술지 ‘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에 ‘Rethinking the Value of Choice: A Cultural Perspective on Intrinsic Motivation’이라는 연구를 발표했다.

연구의 출발점은 심리학에서 오랫동안 중요하게 다뤄진 가정이었다.

사람은 자신이 직접 선택한 활동에 더 많은 동기를 느끼고, 다른 사람이 선택한 활동보다 높은 지속성과 만족을 보일 수 있다는 설명이다.

개인의 자율성과 선택이 내재적 동기를 높이는 요인이라는 연구도 축적돼 있었다.

그러나 아이옌가와 레퍼는 이러한 결과가 특정한 문화적 환경에서 형성된 자기관과 관련될 가능성을 검토했다.

개인이 독립적인 존재로서 자신의 선호를 표현해야 한다는 가치가 강한 환경에서는 직접 선택하는 행동이 중요한 의미를 가질 수 있다.

반면 가족과 공동체의 관계를 자신의 정체성과 밀접하게 연결하는 환경에서는 신뢰하는 사람의 선택을 따르는 행동도 자율성과 만족의 경험에 기여할 수 있다는 가설이었다.

연구진은 미국 내 유럽계 아동과 아시아계 아동을 대상으로 선택권의 제공 방식이 과제 수행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비교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연구가 미국과 아시아 전체의 모든 어린이를 대표하도록 설계된 국가별 인구조사가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실험은 특정한 지역과 연령의 참가자를 대상으로 실시됐다. 따라서 결과를 문화적 차이에 관한 하나의 근거로 이해해야 하며 모든 개인에게 동일하게 적용되는 행동 법칙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같은 문제를 풀었는데 누가 선택했는지에 따라 성적이 달라졌다


아이옌가는 2010년 TED 강연에서 샌프란시스코 재팬타운에서 실시한 실험을 소개했다.

연구진은 7~9세의 유럽계 미국인 아동과 아시아계 미국인 아동에게 글자의 배열을 바꿔 단어를 만드는 애너그램 과제를 제시했다.

아이들은 세 가지 조건 가운데 하나에 배정됐다.

첫 번째 집단의 아이들은 여러 과제 묶음 가운데 자신이 풀고 싶은 것을 직접 선택했고, 답을 작성할 때 사용할 필기구도 스스로 골랐다.

두 번째 집단에서는 실험자가 과제와 필기구를 정해줬다.

세 번째 집단의 아이들은 자신의 어머니가 과제와 필기구를 선택했다는 설명을 들었다.

실제로 연구진은 조건 사이에서 과제 내용 자체가 달라지는 영향을 줄이도록 실험을 구성했다. 참가자가 동일한 종류의 과제를 수행하더라도 누가 선택했다고 믿는지에 따라 결과가 어떻게 달라지는지 살펴본 것이다.

유럽계 미국인 아동들은 자신이 직접 선택했을 때 더 높은 수행을 보였다.

아이옌가는 강연에서 이 집단이 직접 선택한 조건에서 다른 사람이 선택한 조건보다 약 2.5배 많은 애너그램을 풀었다고 설명했다.

반면 아시아계 미국인 아동들은 어머니가 선택했다고 믿은 조건에서 가장 높은 수행을 보였다. 자신이 직접 선택한 경우가 그다음이었고, 실험자가 과제를 정해준 경우에는 상대적으로 낮은 수행을 나타냈다.

이 결과는 사람의 동기를 결정하는 요인이 단순히 선택권을 보유했는지에만 있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누가 선택했는지, 그 사람을 얼마나 신뢰하는지, 그 선택이 자신과의 관계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가 중요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아시아계 아동은 독립적인 선택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결론으로 확대해서는 안 된다.

연구에서도 아시아계 아동들이 실험자가 선택한 조건보다 직접 선택한 조건에서 더 높은 수행을 보였다. 또한 신뢰하는 어머니의 선택과 낯선 실험자의 선택에 대한 반응은 같지 않았다.

따라서 차이는 직접 선택과 타인의 선택이라는 단순한 구분보다 선택을 한 사람과의 관계를 포함해 해석해야 한다.


어머니가 선택한 과제는 왜 다른 사람의 지시와 같지 않았나


동일한 과제를 수행하더라도 어머니가 선택했다고 믿을 때 동기가 높아졌다는 결과는 가족관계가 선택의 의미를 바꿀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한다.

신뢰하는 사람의 결정은 단순한 외부 지시로 받아들여지지 않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아이가 부모와 평소에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부모가 자신의 관심과 능력을 충분히 이해한다고 믿는다면 부모의 추천을 따르는 일이 자신의 의사를 무시하는 행동처럼 느껴지지 않을 수 있다.

반면 자신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낯선 사람이 같은 선택을 한다면 강요받고 있다는 느낌을 경험할 수 있다.

선택의 주체가 누구인가라는 질문만큼이나 선택을 맡기는 관계가 어떤 성격을 갖고 있는가라는 질문이 중요해지는 이유다.

그러나 이러한 설명을 근거로 부모가 자녀의 진로와 교육활동을 대신 결정하는 편이 더 좋다고 판단할 수는 없다.

1999년 연구는 비교적 짧은 과제 수행을 대상으로 했으며, 부모의 선택이 장기적인 학업 성취나 진로 만족도를 높이는지까지 확인한 연구는 아니었다.

또한 실제 부모가 자녀의 의견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는지, 자녀가 부모의 결정을 신뢰하는지, 선택을 거부할 수 있는지에 따라 결과는 달라질 수 있다.

특히 신뢰에 기반한 조언과 권위에 의한 강제는 구분해야 한다.

자녀가 부모의 결정을 자신의 목표와 연결해 받아들이는 경우와 거절할 수 없어서 따르는 경우는 외형상 같은 행동으로 보일 수 있지만 심리적 경험은 크게 다를 수 있다.

아이옌가의 연구를 현대 교육과 양육에 적용하려면 바로 이 차이를 확인해야 한다.


2022년 재현연구는 문화적 차이가 예상보다 작을 수 있다고 보여줬다


문화심리학 연구에서는 미국인과 동아시아인의 선택 행동을 비교하는 실험이 널리 알려져 있다.

대표적인 사례 가운데 하나는 여러 개의 펜 가운데 독특한 색을 가진 펜을 선택하는지, 다수와 같은 색의 펜을 선택하는지 비교하는 연구다.

1999년 희경 김과 헤이즐 마커스는 유럽계 미국인과 동아시아인의 선택 행동을 비교하면서 미국 참가자들은 남들과 다른 대안을, 동아시아 참가자들은 다수와 비슷한 대안을 상대적으로 선호하는 경향을 보고했다.

이러한 연구는 문화가 독립성과 조화를 어떻게 강조하는지 설명하는 대표적인 사례로 인용돼 왔다.

그러나 후속 연구에서는 문화적 차이의 크기가 원래 실험과 같지 않을 수 있다는 결과가 제시됐다.

2022년 학술지 ‘The Journal of Social Psychology’에 발표된 재현연구는 미국과 중국 참가자 729명을 대상으로 유사한 선택 과제를 실시했다.

연구 결과 미국 참가자의 62.53%가 다수와 다른 대안을 선택했다.

중국 참가자 가운데 다수와 다른 대안을 선택한 비율은 50.00%였다.

집단 사이의 차이는 통계적으로 유의했지만 효과크기는 크라메르의 V값 0.12로 나타났다. 원래 연구의 효과크기인 0.52보다 상당히 작은 수준이었다.

특히 중국 참가자의 선택 패턴은 독특한 대안과 다수가 선택하는 대안 사이에서 거의 절반으로 나뉘었다.

이는 동아시아인은 집단과 같은 선택을 선호한다는 설명을 모든 상황에 적용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다만 이 재현연구는 아이옌가와 레퍼의 1999년 애너그램 실험을 직접 반복한 연구가 아니다. 김과 마커스의 펜 선택 실험을 재검토한 자료라는 점을 명확하게 구분해야 한다.

두 연구는 선택의 문화적 차이라는 공통된 문제를 다루지만 측정한 행동과 연구 대상이 다르다.

그럼에도 재현연구는 문화적 차이를 설명하는 초기 연구를 해석할 때 중요한 경고를 제공한다.

처음 관찰된 차이가 후속 연구에서도 같은 크기로 나타나는지 검토해야 하며, 국가나 문화권을 하나의 고정된 행동 특성으로 묶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미국인과 동아시아인은 정말 서로 반대되는 선택 성향을 가지고 있을까


문화심리학에서는 개인의 독립성을 강조하는 자기관과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강조하는 상호의존적 자기관을 구분해 왔다.

이러한 개념은 문화권 사이에 나타날 수 있는 평균적인 차이를 설명하는 데 도움이 된다.

그러나 개인주의와 집단주의를 국가별 성격표처럼 사용하는 데는 문제가 있다.

어떤 국가에 속한다는 사실만으로 개인이 어떤 선택을 선호하는지 정확하게 예측할 수 없기 때문이다.

같은 국가 안에서도 세대와 교육 수준, 경제적 조건, 지역과 직업에 따라 선택에 관한 태도가 달라질 수 있다.

가족의 중요한 문제를 결정할 때는 공동의 논의를 선호하는 사람이 소비재를 구매할 때는 자신의 취향을 강하게 주장할 수도 있다.

직업 선택에서는 부모의 의견을 중요하게 생각하더라도 일상적인 생활방식에서는 독립적인 결정을 선호할 수 있다.

따라서 문화적 차이를 이해하려면 어떤 영역의 선택을 다루고 있는지 살펴봐야 한다.

또한 연구 참가자가 해당 문화적 규범을 얼마나 중요하게 받아들이는지도 고려해야 한다.

2022년 재현연구에서 미국과 중국 참가자 사이의 선택 차이가 나타났지만 그 크기가 초기 연구보다 작았다는 사실은 이러한 접근의 필요성을 보여준다.

문화권의 평균적인 경향은 존재할 수 있지만 그 차이가 모든 개인에게 동일하게 나타나지는 않는다.

무엇보다 문화는 개인의 선택을 결정하는 단일한 원인이 아니다.

가족관계와 교육, 사회제도, 경제적 자원, 개인의 경험이 함께 작용할 수 있다.

아이옌가의 강연을 문화의 다양성을 이해하는 출발점으로 삼을 수는 있지만 미국인과 한국인, 일본인과 중국인의 선택을 획일적으로 구분하는 근거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


선택지를 일곱 개 제공했는데 왜 사람들은 한 가지라고 답했나


아이옌가의 강연에서 또 다른 흥미로운 사례는 동유럽의 소비자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였다.

그는 공산주의 체제에서 시장경제 체제로 전환한 국가들의 주민에게 여러 종류의 탄산음료를 제공하고 몇 가지 선택지가 있다고 생각하는지 물었다.

코카콜라와 다이어트 코크, 스프라이트 등 서로 다른 일곱 개의 음료가 제시됐지만 일부 참가자는 이를 일곱 가지 선택이 아니라 탄산음료라는 하나의 선택으로 이해했다.

여기에 주스와 물을 추가하자 참가자들은 탄산음료와 주스, 물이라는 세 가지 선택지가 있다고 답하는 경향을 보였다.

서로 다른 브랜드의 상품이 여러 개 존재한다고 해서 모든 소비자가 그 차이를 독립적인 선택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아니라는 설명이었다.

이 사례는 선택지가 실제로 몇 개 존재하는지와 소비자가 의미 있는 차이라고 인식하는 선택지가 몇 개인지 구분해야 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한 사람에게는 서로 다른 브랜드의 상품이 중요한 취향과 정체성의 표현이 될 수 있다. 다른 사람에게는 성능이나 기능에 실질적인 차이가 없다면 같은 종류의 상품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그러나 강연에 등장한 동유럽의 인터뷰 사례를 해당 국가의 모든 소비자가 브랜드 차이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증거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

당시의 역사적 전환기와 소비 경험, 조사 대상자의 특성이 결과에 영향을 미쳤을 수 있으며, 시장과 소비문화도 시간이 흐르면서 달라진다.

오히려 중요한 질문은 선택지를 어떻게 분류하고 인식하는가에 있다.

소비자가 두 상품을 서로 다른 대안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면 선택지의 숫자가 증가하더라도 실제 선택의 의미가 크게 달라지지 않을 수 있다.

이 논점은 앞선 선택 과부하 연구와도 연결되지만 이번 강연에서 더 중요한 부분은 선택지의 많고 적음이 아니라 무엇을 하나의 선택으로 인식하는지가 다를 수 있다는 사실이다.


선택의 자유가 중요하다는 말과 모든 결정을 직접 내려야 한다는 말은 다르다


선택권은 개인의 삶에서 중요한 가치를 가진다.

어떤 직업을 선택할지, 어디에서 생활할지, 어떤 의료서비스를 받을지 결정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의견이 존중받는 것은 자율성의 중요한 요소다.

그러나 최종 결정을 반드시 혼자 내려야만 자율성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정보가 부족하거나 판단해야 할 요소가 복잡한 상황에서는 전문적인 조언을 받을 수 있다. 가족과 공동으로 결정하거나 일부 판단을 신뢰하는 사람에게 위임할 수도 있다.

이러한 행동이 자신의 의사에 따라 이루어진다면 다른 사람이 결정에 참여했다는 사실만으로 자율성을 포기했다고 판단하기 어렵다.

여기서 구분해야 할 것은 선택을 위임하는 행위와 선택권을 박탈당하는 상황이다.

전자는 자신이 신뢰하는 사람에게 결정을 맡기거나 조언을 요청하는 행동이다. 후자는 본인의 의견과 관계없이 다른 사람이 결정을 내리고 그 결과를 강요하는 상황이다.

외형적으로는 다른 사람이 선택했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개인이 경험하는 자유와 책임의 정도는 다르다.

2010년 헤이즐 마커스와 배리 슈워츠는 학술지 ‘Journal of Consumer Research’에 발표한 ‘Does Choice Mean Freedom and Well-Being?’에서 개인의 선택과 자유, 행복의 관계가 문화적으로 형성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연구자들은 미국의 교육 수준이 높고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집단에서 중요하게 평가하는 선택의 의미를 모든 사회에 적용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특히 서구 사회 안에서도 사회경제적 계층에 따라 개인의 독립성과 선택을 경험하는 방식이 달라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따라서 선택권을 보장하는 제도의 목표는 모든 개인이 가능한 한 많은 결정을 직접 내리도록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가치와 상황에 맞는 의사결정에 실질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있어야 한다.


의료 현장에서는 선택할 권리가 오히려 고통스러운 책임이 될 수 있다


아이옌가의 TED 강연에서 가장 무거운 질문은 의료적 의사결정에 관한 것이었다.

그는 중환자 상태의 신생아에게 생명유지치료를 계속할 것인지 결정해야 했던 부모들의 경험을 소개했다.

강연에서 비교한 미국과 프랑스의 의료환경에서는 가족이 최종 결정에 참여하는 방식에 차이가 있었다.

미국에서는 부모에게 치료 중단에 관한 결정을 요청하는 경우가 있었고, 프랑스에서는 의료진이 전문적인 판단과 제도적 절차에 따라 결정을 내리는 방식이 강조됐다.

아이옌가는 연구진과 함께 이러한 차이가 부모가 상실을 경험하는 과정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검토했다.

강연에서는 미국 부모들이 최종 결정을 자신이 내렸다는 사실 때문에 죄책감과 후회를 오래 경험하는 사례가 소개됐다. 프랑스 부모들 가운데는 결정에 대한 부담을 다르게 받아들이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두 국가의 부모가 서로 다른 방식으로 슬픔을 경험했다는 사례만으로 미국식 의사결정이 잘못됐거나 프랑스식 제도가 더 우수하다고 판단할 수는 없다.

의료적 결과와 가족의 경험에는 환자의 상태와 의료진의 설명 방식, 법적 제도, 가족의 가치관 등 여러 조건이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2004년 학술지 ‘Social Science & Medicine’에 발표된 미국과 프랑스 신생아 중환자실 비교연구는 이러한 문제의 복잡성을 보여준다.

연구진은 두 의료기관에서 의료진 60명과 부모 71명을 인터뷰하고 진료기록과 의사결정 과정을 검토했다.

분석에서는 미국의 부모 자율성 모델과 프랑스의 의료진 중심 모델 사이에 제도적인 차이가 존재하지만, 실제 의료적 의사결정에서는 의료진의 전문적 판단과 예후에 대한 설명 방식이 여전히 큰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이 제시됐다.

이 결과는 형식적으로 누가 최종 결정을 내리는지와 실제 의사결정의 내용이 어떻게 형성되는지를 구분해야 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의료진이 모든 정보를 정리하고 특정한 선택을 강하게 권고한다면 최종 서명을 환자나 가족이 했더라도 의사결정의 실질적인 구조는 의료진의 판단에 크게 의존할 수 있다.

반대로 의료진이 결정을 내리는 제도라고 해도 가족과 충분히 협의하고 환자의 가치관을 반영할 가능성도 있다.

따라서 의료현장에서 중요한 것은 선택을 직접 하느냐의 문제를 넘어 설명과 참여, 책임이 어떻게 구성되는지에 있다.


환자가 의사에게 결정을 맡기고 싶어 한다면 자율성을 포기한 것일까


의료적 선택에는 일반적인 소비자 선택과 다른 특성이 있다.

환자는 자신의 건강과 삶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결정을 해야 하지만, 질병의 예후와 치료 효과, 부작용에 관한 정보를 충분히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다.

전문적인 의료지식을 가진 의사의 설명이 필요한 이유다.

이때 환자가 가능한 치료방법을 모두 비교하고 최종 결정을 직접 내리기를 원할 수 있다. 반면 자신의 가치관과 우려를 충분히 전달한 뒤 의사가 적절한 방법을 추천해 주기를 원하는 환자도 존재한다.

두 경우 가운데 어느 하나만을 자율적인 의사결정이라고 규정하기는 어렵다.

중요한 것은 환자가 어떤 방식으로 의사결정에 참여하고 싶은지 확인하는 것이다.

충분한 정보를 제공받고 자신의 선호에 따라 전문가에게 판단을 위임하는 것과, 정보를 제공받지 못한 상태에서 다른 사람이 일방적으로 결정을 내리는 것은 명확하게 다르다.

이러한 구분은 의료윤리에서도 중요하다.

환자의 자기결정권을 존중한다는 이유로 어려운 판단의 부담을 모두 환자에게 떠넘기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을 수 있다.

반대로 환자가 불안해할 것이라고 가정해 중요한 정보를 제공하지 않거나 치료 선택에서 배제하는 것도 적절하지 않다.

실제 의료서비스에서는 환자가 이해할 수 있는 설명을 제공하고, 선호하는 참여 수준을 확인하며, 필요할 때 전문적인 권고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접근이 중요하다.

아이옌가의 강연이 남긴 질문은 선택권 자체를 줄여야 한다는 것이 아니다.

사람이 감당하기 어려운 의사결정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선택권을 어떻게 지원해야 하는지에 관한 문제다.


한국의 진로 선택과 가족 의사결정에도 같은 질문을 적용할 수 있을까


한국에서는 교육과 취업, 결혼과 주거 등 중요한 문제를 결정할 때 가족의 의견이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부모가 자녀의 대학 진학을 위해 정보를 수집하고 학과를 추천하거나, 가족이 함께 생활비와 주거 문제를 논의하는 경우를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행동을 일률적으로 개인의 선택권을 제한하는 문화적 특징이라고 볼 수는 없다.

자녀가 원하지 않는 진로를 강요받는 상황과 부모가 제공한 정보를 참고해 스스로 결정을 내리는 상황은 다르기 때문이다.

특히 교육과 진로에서는 실제로 누가 최종 선택을 했는지보다 당사자가 자신의 선택이라고 받아들이는지가 중요할 수 있다.

부모가 적극적으로 조언하더라도 자녀가 이를 신뢰하고 자신의 목표에 부합한다고 판단한다면 그 조언은 의사결정을 지원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

반대로 가족의 기대를 거절하기 어려워 본인의 관심과 적성에 맞지 않는 선택을 한다면 장기적인 불만과 갈등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

이러한 차이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실제 당사자의 경험을 조사해야 한다.

1999년 아이옌가와 레퍼의 실험을 근거로 한국 학생들이 부모가 선택한 진로에서 더 높은 성과를 낼 것이라고 단정해서는 안 된다.

실험에 참여한 아이들은 비교적 짧은 애너그램 과제를 수행했으며, 대학 진학과 직업 선택처럼 장기간의 결과를 가진 결정을 연구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한국의 의사결정 문화를 분석하려면 국내 학생과 부모의 실제 참여 방식, 진로 만족도, 교육과정의 특성 등을 별도로 확인해야 한다.

강연의 가치는 한국인을 특정한 문화적 유형으로 분류하는 데 있지 않다.

우리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선택의 방식이 개인과 상황에 따라 다른 의미를 가질 수 있다는 사실을 검토하도록 한다는 점에 있다.


소비자는 언제 전문가의 추천을 더 가치 있게 평가할까


현대의 소비환경에서는 개인이 직접 선택하는 과정과 다른 사람의 추천에 의존하는 과정이 함께 이루어진다.

상품을 구매할 때 소비자는 자신의 취향을 반영하지만 전문적인 정보를 제공하는 판매자와 주변 사람들의 평가도 참고한다.

가전제품의 복잡한 사양을 비교할 때는 전문가의 추천이 도움이 될 수 있고, 개인의 취향이 중요한 디자인 상품에서는 직접 선택하는 경험이 더 큰 만족을 제공할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도 중요한 것은 무엇을 선택하느냐뿐 아니라 누구의 추천을 신뢰하느냐는 문제다.

같은 상품을 추천하더라도 관련 분야의 경험이 풍부한 사람이 제안한 것인지, 판매 실적에 따라 보상을 받는 사람이 제안한 것인지에 따라 소비자가 받아들이는 의미는 달라질 수 있다.

또한 소비자가 직접 결정해야 한다는 부담을 줄여주는 서비스와 소비자의 판단을 대신 통제하는 서비스는 구분해야 한다.

예를 들어 소비자가 필요한 조건을 먼저 제시하고 그 조건에 맞는 대안을 추천받는 과정은 선택을 지원하는 방식이다.

반면 중요한 정보를 제공하지 않은 채 특정한 대안을 선택하도록 유도한다면 실질적인 선택권을 제한할 위험이 있다.

아이옌가의 연구는 모든 소비자가 가능한 한 많은 개별 상품을 비교하는 경험에서 만족을 얻는다는 가정을 검토하게 만든다.

소비자에 따라 스스로 탐색하는 과정을 선호할 수도 있고, 신뢰할 만한 추천을 통해 의사결정의 부담을 줄이는 방식을 선호할 수도 있다.

따라서 기업이 고객에게 선택권을 제공할 때는 선택지가 많다는 사실을 강조하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소비자가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어떤 정보를 필요로 하는지, 직접 비교하기를 원하는지 또는 전문적인 추천을 원하는지 파악할 필요가 있다.

다만 추천을 제공한다는 이유로 소비자가 다른 대안을 확인하고 거절할 권리를 제한해서는 안 된다.


AI가 추천하는 시대에는 선택권의 의미가 어떻게 달라질까


2010년 아이옌가가 강연했던 당시에도 인터넷 쇼핑과 개인화된 추천서비스는 존재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인공지능이 소비자의 질문을 이해하고 여러 조건을 종합해 대안을 추천할 수 있게 됐다.

예를 들어 이용자는 원하는 예산과 기능을 설명한 뒤 적합한 상품을 제안받을 수 있다. 여행 계획과 식단, 학습방법에 관해서도 여러 정보를 비교해 달라고 요청할 수 있다.

이러한 변화는 의사결정 과정에서 중요한 질문을 만든다.

AI가 여러 대안을 분석해 하나를 추천했을 때 그 결정을 누구의 선택으로 이해해야 하는가.

사용자가 자신의 목표와 조건을 직접 설정하고 AI가 추천한 결과를 검토해 수용했다면 AI는 의사결정을 지원하는 도구로 기능했다고 볼 수 있다.

반대로 추천의 근거를 이해하지 못하고 대안을 비교할 기회도 없이 AI의 판단을 그대로 따랐다면 사용자의 참여 수준은 제한적일 수 있다.

다만 AI 추천을 이용했다고 해서 선택권을 포기한 것으로 판단할 수는 없다.

인간은 오랫동안 전문가와 가족, 친구의 조언을 받아 결정을 내려왔으며, 의사결정에 다른 사람이나 도구의 도움을 활용하는 것은 그 자체로 자율성의 상실을 의미하지 않는다.

문제는 이용자가 어느 정도의 통제권을 유지하고 있는지에 있다.

추천의 이유를 설명받을 수 있는지, 자신의 조건을 수정할 수 있는지, 다른 대안을 확인할 수 있는지, 결과를 거절하거나 변경할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

이러한 기준은 AI가 개인의 선택을 대신하는 상황뿐 아니라 정보를 정리하고 대안을 비교해 주는 모든 디지털 서비스에도 적용할 수 있다.

다만 AI 추천의 효과와 문화적 선택 선호의 관계에 관해서는 별도의 실증연구가 필요하다.

1999년의 문화심리학 실험에서 관찰된 결과를 근거로 특정 국가의 이용자가 AI 추천을 더 잘 받아들일 것이라고 단정해서는 안 된다.

AI와의 관계는 가족이나 신뢰하는 교사와의 관계와 다르며, 서비스의 정확성과 투명성에 관한 기대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선택권을 확대하는 정책이 언제나 국민의 만족을 높일까


정책에서도 선택권의 확대는 중요한 목표로 제시된다.

학교와 의료기관, 공공서비스 등을 이용할 때 시민이 여러 대안 가운데 선택할 수 있도록 하면 자신의 요구에 맞는 서비스를 이용할 가능성이 높아질 수 있다.

그러나 선택권이 존재한다는 사실과 실제로 그 선택권을 활용할 수 있다는 사실은 구분해야 한다.

경제적 자원이 부족하거나 필요한 정보에 접근하기 어려운 사람은 선택지가 많아져도 그 가운데 적합한 대안을 판단하기 어려울 수 있다.

선택에 따른 결과를 예측하기 어려운 제도라면 다른 사람의 도움과 상담이 중요한 역할을 할 수도 있다.

2017년 배리 슈워츠와 네이선 치크는 ‘Behavioural Public Policy’에 발표한 논문에서 선택과 자유, 행복의 관계가 생각보다 복잡하다고 설명했다.

연구진은 선택의 기회가 개인의 자유와 만족을 높일 수 있지만, 그 의미와 효과가 문화와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논의를 공공정책에 적용하면 선택지를 늘리는 것만큼 선택을 지원하는 제도를 마련하는 일이 중요해진다.

복잡한 의료서비스를 선택해야 하는 사람에게는 이해하기 쉬운 정보와 상담이 필요할 수 있다. 다양한 교육기관 가운데 선택해야 하는 가족에게는 기관별 교육과정과 지원 내용에 관한 신뢰할 만한 자료가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상담과 추천을 확대한다는 이유로 시민에게 제공해야 할 정보를 제한하거나 특정한 대안을 강제해서는 안 된다.

선택권의 실질적인 보장은 개인이 자신의 결정을 직접 내릴 수 있는 권리와 필요한 경우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권리를 함께 포함해야 한다.


문화적 차이를 존중한다는 이유로 개인의 권리를 제한할 수는 없다


선택의 의미가 문화에 따라 달라진다는 주장은 중요한 사실을 이해하도록 돕는다.

그러나 이 설명을 문화적 상대주의의 극단적인 형태로 해석하는 데는 주의가 필요하다.

어떤 사회에서 가족과 공동체의 결정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사실이 개인의 의견을 무시해도 된다는 근거가 될 수는 없다.

신뢰하는 부모의 선택을 따르는 행동과 부모의 선택을 거절할 권리가 없는 상황은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의료적 결정을 전문가에게 맡기는 것을 선호하는 환자가 있다고 해서 모든 환자의 의사결정권을 의료진에게 이전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실제로 문화적 가치에 관한 평균적인 연구 결과는 개별 개인의 의사를 대신할 수 없다.

어떤 사람이 어떤 나라에서 태어났는지보다 그 사람이 지금 어떤 방식으로 의사결정에 참여하고 싶은지 확인하는 일이 중요하다.

문화에 관한 지식은 상대방이 자신의 의사를 표현할 수 있도록 질문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상대방이 특정한 문화권에 속한다는 이유로 어떤 선택을 원할 것이라고 미리 판단하는 것은 오히려 자율성을 제한할 수 있다.

따라서 문화적 차이를 존중하는 방법은 특정 집단에 고정된 선택 방식을 적용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실제 선호와 관계의 특성을 확인하는 것이다.


16년 전 강연의 핵심은 선택의 수가 아니라 선택의 의미에 있다


시나 아이옌가의 2010년 TED 강연은 선택권을 인간의 자유와 행복을 설명하는 가장 중요한 가치로 받아들이는 관점에 의문을 제기했다.

그는 미국의 소비문화와 일본의 일상적 경험, 미국 내 아동 실험, 동유럽의 소비자 인터뷰, 미국과 프랑스의 의료적 의사결정을 비교하면서 선택의 의미가 하나로 고정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접근은 당시에도 중요한 문제의식이었다.

개인이 자신의 선택을 통해 독립성과 정체성을 표현하는 사회가 있는 반면, 가까운 사람과의 관계를 통해 결정을 내리는 과정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환경도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화적 차이를 보여주는 연구는 연구 대상과 측정 방법, 시대적 배경을 함께 검토해야 한다.

1999년 아이옌가와 레퍼의 아동 실험에서는 누가 선택했는지에 따라 서로 다른 수행 패턴이 나타났다.

2010년 마커스와 슈워츠는 선택의 가치가 교육 수준이 높고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서구의 집단에서 중요하게 평가되는 방식과 다른 사회의 경험을 구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2022년에는 문화적 선택 성향을 다룬 대표적인 펜 선택 실험의 재현연구에서 초기 연구보다 작은 차이가 나타났다.

이러한 자료들을 종합하면 문화적 차이가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과 그 차이가 모든 사람에게 동일하게 적용된다는 주장을 구분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선택의 의미는 문화에 따라 달라질 수 있지만 같은 문화권 안에서도 개인과 상황에 따라 차이가 발생할 수 있다.

또한 가족과 공동체가 중요한 사회에서도 개인의 선택권은 중요한 가치가 될 수 있으며, 독립성을 강조하는 사회에서도 전문가와 가족의 판단에 의존하는 결정이 유용할 수 있다.

따라서 특정한 문화에 속한 사람은 독립적인 선택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식의 설명은 적절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어떤 사람에게 어떤 상황에서 어떤 선택 방식이 도움이 되는지 확인하는 일이다.


모든 사람이 직접 결정해야 자유로운가…선택권과 결정의 부담을 구분할 때다


개인의 선택권이 중요한 이유는 자신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결정에 참여하고 원하지 않는 결과를 강요받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든 결정을 반드시 혼자 내려야 한다는 요구는 선택권의 보장과 같지 않다.

사람은 필요한 정보를 직접 검토할 수도 있고 신뢰하는 전문가에게 설명을 요청할 수도 있다. 가족과 함께 논의한 뒤 결정을 내리거나 스스로 원한다면 특정한 판단을 다른 사람에게 위임할 수도 있다.

이러한 과정이 자신의 의사에 따라 이루어지고 결과를 이해할 수 있다면 다른 사람이 결정에 참여했다는 사실만으로 자유가 줄어들었다고 판단할 필요는 없다.

반대로 다양한 선택지가 제공돼 있더라도 자신의 의견을 표현할 기회가 없거나 중요한 정보를 확인하지 못한다면 실질적인 자율성이 충분히 보장됐다고 보기 어렵다.

이 구분은 현대사회에서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소비자는 더 많은 상품을 비교할 수 있게 됐고, 시민은 복잡한 공공서비스를 선택해야 하며, 개인은 의료와 교육, 투자 등 전문적인 정보가 필요한 결정을 반복적으로 마주한다.

여기에 AI가 정보를 분석하고 대안을 추천하는 역할까지 확대되면서 실제 의사결정의 과정은 더욱 복잡해지고 있다.

이러한 환경에서 필요한 것은 선택의 기회를 단순히 늘리는 일에 그치지 않는다.

개인이 어떤 정보를 필요로 하는지, 어느 정도의 직접적인 참여를 원하는지, 어떤 사람이나 도구를 신뢰하는지 확인해야 한다.

또한 조언과 위임이 이루어지는 상황에서도 결정을 거절하거나 변경할 권리가 어떻게 보장되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2010년 아이옌가의 강연이 제시한 질문은 개인의 선택권을 줄여야 한다는 주장이 아니었다.

선택의 자유를 설명하는 하나의 문화적 방식을 보편적인 정답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는 문제의식이었다.

16년이 지난 지금, 그 문제의식은 후속 연구를 통해 더욱 정교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

미국인과 동아시아인의 평균적인 선택 행동에 차이가 나타날 수 있지만, 그 차이를 모든 개인에게 적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자녀가 부모의 조언을 받아들인다는 사실만으로 독립성이 부족하다고 판단할 수도 없고, 스스로 모든 결정을 내리기를 원한다는 이유만으로 더 합리적인 판단을 한다고 단정할 수도 없다.

신뢰하는 사람의 추천은 좋은 결정에 도움이 될 수 있지만 그러한 신뢰가 항상 올바른 결과를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선택의 자유를 보장하는 가장 중요한 조건은 누가 모든 결정을 내려야 하는지 미리 정해놓는 데 있지 않다.

당사자가 자신의 가치와 상황을 반영할 수 있도록 필요한 정보와 참여 기회를 제공하고, 원하지 않는 선택을 거절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결국 모든 사람에게 선택의 자유가 똑같이 중요한가라는 질문에는 두 가지 차원의 답이 필요하다.

자신의 삶에 관한 결정에서 존중받고 강요받지 않을 권리는 중요하다. 그러나 그 권리를 실제로 행사하는 방식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

어떤 사람은 직접 선택하는 과정에서 만족을 얻고, 다른 사람은 신뢰하는 사람과 함께 결정하는 과정에서 더 큰 안정감과 확신을 경험할 수 있다.

그 차이를 이해하는 것이야말로 선택의 자유를 더욱 충실하게 보장하는 출발점이다.

선택권의 목적은 모두가 혼자 결정하도록 만드는 데 있지 않다.

자신의 삶에 관한 중요한 결정을 이해하고, 참여하고, 필요한 도움을 얻으며, 최종적으로 자신의 의사를 존중받을 수 있게 하는 데 있다.

시나 아이옌가의 강연을 2026년에 다시 읽어야 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선택의 자유가 진정한 자유가 되려면 선택을 제공하는 것에서 끝나서는 안 된다.

그 선택이 누구에게, 어떤 관계와 상황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까지 이해해야 한다.


자료: Sheena Iyengar, ‘The Art of Choosing’, TEDGlobal 2010(2010); Iyengar, S. S. and Lepper, M. R., ‘Rethinking the Value of Choice: A Cultural Perspective on Intrinsic Motivation’, 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1999); Markus, H. R. and Schwartz, B., ‘Does Choice Mean Freedom and Well-Being?’, Journal of Consumer Research(2010); Kim, H. and Markus, H. R., ‘Deviance or Uniqueness, Harmony or Conformity? A Cultural Analysis’, 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1999); ‘Selecting the Special or Choosing the Common? A High-Powered Conceptual Replication of Kim and Markus’ (1999) Pen Study’, The Journal of Social Psychology(2022); Orfali, K., ‘Parental Role in Medical Decision-Making: Fact or Fiction? A Comparative Study of Ethical Dilemmas in French and American Neonatal Intensive Care Units’, Social Science & Medicine(2004); Schwartz, B. and Cheek, N. N., ‘Choice, Freedom, and Well-Being: Considerations for Public Policy’, Behavioural Public Policy(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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