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승강기 고장·교체 때 장애인 이동지원, 설치 기준은 있지만 운영 기준은 비어 있다
공동주택에서 승강기가 멈췄을 때 휠체어 이용자나 보행이 어려운 주민을 어떻게 이동시킬 것인지는, 2026년 10월 23일 현재 전국 단일 기준으로 정리돼 있다고 보기 어렵다. 법령은 아파트를 새로 짓거나 크게 고칠 때 장애인 등이 층간 이동을 할 수 있도록 승강기나 경사로 같은 편의시설을 갖추도록 하고 있지만, 이미 사람이 살고 있는 단지에서 승강기 고장이나 교체 공사로 수일에서 수주 동안 운행이 멈출 때 관리주체가 어떤 대체수단을 반드시 제공해야 하는지는 별도 전국 공통 규정이 뚜렷하지 않다.
대신 실제 분쟁은 국가인권위원회 결정과 지방자치단체의 안내, 개별 단지의 관리규약과 복지서비스 연계에 기대는 구조에 가깝다. 승강기 설치 단계의 접근권과, 운행 중단 시 생활지원 대책이 서로 다른 제도에 흩어져 있는 셈이다.
설치 의무는 비교적 분명하지만, 운행 중단 대책은 별도 규정이 약하다
보건복지부와 국가법령정보센터에 따르면 장애인·노인·임산부 등의 편의증진 보장에 관한 제도는 공동주택을 신축·증축·개축·대수선하거나 용도를 바꿀 때 편의시설 설치를 요구한다. 시행령 별표 기준에는 아파트가 장애인 등이 한 층에서 다른 층으로 이동할 수 있도록 계단을 이용하기 편한 구조로 설치하거나, 장애인용 승강기·휠체어리프트·경사로 등을 1대 또는 1곳 이상 두도록 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문제는 이 기준이 주로 건축과 설치 단계에 맞춰져 있다는 점이다. 보건복지부 안내에도 장애인 편의시설은 대상시설의 신축이나 증축 등과 함께 설치되는 것이 원칙이라고 돼 있다. 기존 공동주택 전체에 대해, 승강기 교체 공사나 장기 고장 기간 중 대체 이동수단을 어떻게 마련할지까지 직접 규정한 조항은 이번 확인 범위에서 찾지 못했다.
공동주택 관리 제도도 마찬가지다. 공동주택관리법은 시·도지사가 관리규약의 준칙을 정하도록 하고, 시행령은 관리규약준칙에 포함해야 할 사항을 열거하고 있다. 다만 현행 시행령 차원에서 승강기 일시 중단 시 장애인이나 고령 입주민에게 어떤 편의를 제공해야 하는지를 전국 공통항목으로 적시한 규정은 확인되지 않았다. 결국 단지별 관리규약이나 지방자치단체 준칙에 반영됐는지가 실제 대응 수준을 가르는 구조다.
현장에선 분쟁이 반복됐고, 인권위는 차별로 판단했다
이 공백은 국가인권위원회 결정에서 반복해서 드러났다. 인권위는 2021년 11월 공개한 결정례에서 아파트 승강기 개선 공사 기간에 휠체어 이용 장애인에게 대체 이동수단 등 편의를 제공하지 않은 것은 차별이라고 판단했다. 당시 인권위는 아파트 관리주체가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동등하게 출입할 수 있도록 편의를 제공할 의무가 있으며, 대체 이동수단을 제공하지 못한다면 공사 기간 동안 다른 장소에서 생활할 수 있도록 인적·물적 조치를 검토해야 한다고 봤다.
판단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인권위는 2025년 7월 15일에는 여러 아파트 단지의 노후 승강기 교체 공사와 관련해 장애인 등의 이동 대책 마련을 권고했고, 보건복지부와 국토교통부 등 관계 부처에는 법률 개정 등 제도 보완 의견을 냈다. 이어 2026년 1월 5일 공개된 또 다른 권고에서도 공사 기간 중 장애인, 노인, 임산부 등이 이동 불편을 다시 겪지 않도록 대책을 세우라고 아파트 측에 권고했다.
지방자치단체도 이런 결정을 현장 안내에 활용하고 있다. 김포시는 2024년 4월 29일 공동주택 단지에 보낸 안내에서, 승강기 설치검사 이후 세 번째 또는 네 번째 정밀안전검사 시기인 약 22~25년차에 8대 안전부품 설치와 승강기 교체 공사가 늘고 있고 이 과정에서 휠체어 이용 장애인의 외출 불편이 발생하고 있다며 국가인권위원회 결정문을 참고자료로 배포했다. 노후 아파트에서 승강기 교체가 늘수록 이동권 충돌도 구조적으로 늘어날 수 있다는 뜻이다.
안전 행정은 고장 신고에 초점, 생활 이동권은 별도 대응이 필요하다
승강기 안전관리 체계가 곧바로 생활 이동권 대책으로 이어지지도 않는다. 한국승강기안전공단 안내를 보면 중대한 고장에는 운행 중 정지로 이용자가 갇히는 경우 등이 포함되지만, 정전이나 천재지변으로 발생한 경우는 일부 항목에서 제외된다. 다시 말해 현재 제도는 사고와 중대고장 보고, 검사 이력, 구조 활동 지원에는 비교적 촘촘하지만, 운행 중단으로 인해 고층 거주 장애인이 장을 보거나 병원에 가고 출근하는 일상 이동이 끊기는 문제까지 자동으로 해결해 주지는 않는다.
한국승강기안전공단과 국가승강기정보센터는 승강기 고장 이력, 사고·고장 현황, 보유 현황 등을 제공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정보체계가 있다고 해서 개별 공동주택의 관리주체가 이동 취약 입주민에게 어떤 대체수단을 언제까지 제공해야 하는지가 정해지는 것은 아니다. 안전 통계와 생활지원 기준 사이에 별도 설계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실제 이용 가능한 지원은 있으나, 아파트 승강기 중단에 자동 연동되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제도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보건복지부의 장애인활동지원 제도는 6세 이상 65세 미만 등록장애인 가운데 서비스 지원 종합조사 점수 요건을 충족한 사람에게 활동보조를 제공하며, 급여 내용에는 이동보조가 포함된다. 다만 이는 승강기 고장 발생만으로 자동 개시되는 공동주택 전용 제도가 아니라 개인의 자격과 신청, 수급 결정에 따라 작동하는 복지서비스다.
2026년 시행 중인 돌봄통합지원법도 지방자치단체가 장애, 질병, 사고 등으로 일상생활 유지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에게 주거·돌봄·이동지원 등을 연계할 수 있는 틀을 마련했다. 그러나 이 역시 특정 아파트 승강기 교체 공사에 맞춰 곧바로 임시승강기, 숙소, 식료품 전달, 외출 보조를 의무화하는 직접 규정은 아니다. 현장에서는 결국 관리사무소, 입주자대표회의, 지자체 복지부서, 활동지원기관이 얼마나 빨리 연결되느냐에 따라 체감 결과가 달라질 가능성이 크다.
결국 공동주택 이동권의 현재 제도는 ‘설치는 법으로, 운영 중단은 개별 대응으로’ 요약된다. 새 아파트나 대수선 단계에서의 접근성 기준은 비교적 분명하지만, 이미 입주가 이뤄진 단지에서 승강기 교체·장기 고장·정전이 발생했을 때 고층 장애인과 노인, 임산부를 어떻게 이동시킬지는 여전히 관리규약, 인권위 권고, 지방정부 안내, 복지서비스 연계에 의존한다. 시민이 체감하는 이동권은 승강기 설치 여부만이 아니라, 멈췄을 때 누가 무엇을 책임질지까지 제도화돼야 비로소 완성된다는 점이 이번 확인에서 드러났다.
자료: 보건복지부, 장애인편의시설 이해(최종수정일 2025년 9월 11일); 보건복지부, 장애인활동지원(최종수정일 2026년 3월 31일); 국가법령정보센터, 장애인·노인·임산부 등의 편의증진 보장에 관한 법률 시행령 별표 2(2024년 9월 19일 개정); 국가법령정보센터, 공동주택관리법 및 같은 법 시행령(2025년 4월 15일 기준 확인); 국가법령정보센터,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2025년 11월 11일 시행); 한국승강기안전공단, 승강기 정보관리 및 중대사고와 중대고장 안내(2026년 10월 확인); 국가승강기정보센터, 보유 현황·사고 현황 통계 페이지(2026년 10월 확인); 국가인권위원회, 아파트 승강기 공사 시 장애인에게 이동편의 제공해야(2021년 11월 2일); 국가인권위원회, 공동주택 승강기 공사 시 장애인 불편 최소화해야(2026년 1월 5일); 국가인권위원회, 노후 승강기 교체 공사 기간 중 장애인 등 이동 관련 대책 마련 권고(2025년 7월 15일); 김포시, 아파트 승강기 교체 등 공사 시 장애인 이동편의 관련 국가인권위 사례 공유(2024년 4월 29일); 국가법령정보센터, 의료·요양 등 지역 돌봄의 통합지원에 관한 법률(2026년 9월 10일 시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