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홍수 피해, 이제 국가가 더 책임진다…기후적응법 통과

정치

폭염이 이어질 때 모두가 같은 더위를 겪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 피해는 똑같지 않다. 냉방이 잘 되는 집에서 생활하는 사람과 냉방비가 부담스러워 에어컨 사용을 줄이는 사람, 실내에서 일하는 사람과 한낮 야외에서 일하는 사람, 침수 위험이 낮은 아파트에 사는 사람과 반지하·저지대 주택에 거주하는 사람이 맞닥뜨리는 기후위험은 크게 다르다.

이 차이를 앞으로 국가가 더 적극적으로 관리해야 한다는 법적 근거가 마련됐다.

국회는 지난 8월 26일 본회의에서 ‘기후위기 적응 및 국민안전 강화에 관한 법률’, 이른바 기후적응법 제정안과 탄소중립기본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기후적응법은 기존 탄소중립기본법에 흩어져 있던 적응 관련 조항을 별도 법으로 분리하고, 기후변화 영향에 대한 조사·예측·평가와 취약계층의 기후회복력 지원을 국가 정책의 한 축으로 명확히 한 것이 핵심이다.

기후위기를 줄이는 ‘감축’뿐 아니라 이미 발생하고 있는 폭염과 홍수, 가뭄에 어떻게 적응할 것인지가 독립적인 국가정책이 된 셈이다.


기후정책의 중심이 ‘탄소 줄이기’에서 ‘피해 줄이기’로 넓어진다


그동안 기후정책은 주로 온실가스 감축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발전소의 배출량을 줄이고, 전기차와 재생에너지를 늘리고, 산업계에 탄소감축 목표를 부여하는 식이다.

물론 이런 정책은 기후위기의 장기적인 원인을 줄이는 데 필요하다. 그러나 온실가스를 오늘 당장 크게 줄인다고 해도 이미 누적된 기후변화의 영향이 곧바로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폭염은 더 강해지고, 짧은 시간에 많은 비가 쏟아지는 국지성 호우도 반복되고 있다. 정부는 올해 여름 자연재난 대책에서도 평균기온이 평년보다 높고 강수량의 지역별 편차와 집중호우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는 점을 전제로 대응체계를 강화했다. 특히 고령층 등 취약계층의 1대1 대피 지원과 폭염 중대경보에 따른 안전관리 강화가 주요 대책에 포함됐다.

기후적응법은 바로 이 지점을 제도화한다. 기후변화를 막는 정책만큼이나 이미 나타난 피해를 줄이는 정책도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는 방향이다.


폭염 피해는 이미 ‘누가 더 취약한가’의 문제다


기후재난이 모두에게 동일한 위험으로 작용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온열질환 통계에서도 확인된다.

질병관리청 온열질환 응급실감시체계에 따르면 2026년 5월 15일부터 8월 3일까지 신고된 온열질환자는 2221명, 추정 사망자는 19명이었다. 해당 자료는 전국 응급실 참여 의료기관을 통한 표본감시 결과로 전수조사는 아니지만, 여름철 폭염이 실제 건강피해로 이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문제는 폭염을 피하는 능력이 개인마다 다르다는 데 있다. 고령자는 체온 조절 능력이 떨어질 수 있고, 야외 노동자는 작업시간을 마음대로 바꾸기 어렵다. 저소득층은 냉방비 부담 때문에 에어컨 사용을 줄일 수 있고, 주거환경이 열악한 가구는 같은 기온에서도 더 높은 실내온도에 노출될 수 있다.

같은 폭염이라도 경제적·사회적 조건에 따라 피해가 달라지는 이유다.

따라서 기후위기 대응은 단순한 일기예보나 행동요령 제공만으로 충분하지 않을 수 있다. 취약계층의 냉방비와 주거환경, 노동조건, 의료 접근성까지 함께 살펴야 실제 피해를 줄일 수 있다.


‘취약계층 지원’이 법에 들어간 의미


이번 기후적응법에서 특히 주목할 부분은 취약계층에 대한 기후회복력 지원이 명시됐다는 점이다. 정부는 법 통과를 설명하면서 기후변화 영향에 대한 조사·예측·평가와 함께 취약계층의 기후회복력을 높이는 지원체계를 마련하는 것이 주요 내용이라고 밝혔다.

기후회복력이라는 표현은 단순히 재난을 견디는 능력만을 뜻하지 않는다. 피해를 예방하고, 피해가 발생했을 때 일상을 빠르게 회복할 수 있는 능력까지 포함한다.

예를 들어 폭염에 취약한 가구의 냉방환경을 개선하거나, 침수 위험지역의 주거시설을 보강하고, 반복적인 가뭄이나 폭우에 취약한 농어촌 지역에 대응 인프라를 구축하는 정책이 여기에 연결될 수 있다.

다만 법이 만들어졌다고 곧바로 모든 취약계층에게 새로운 지원금이 지급되는 것은 아니다. 구체적인 대상과 지원방식, 예산 규모는 시행령과 향후 정부·지방자치단체 정책을 통해 정해져야 한다.

그래서 법 통과 이후 더 중요한 것은 ‘누구를 취약계층으로 볼 것인가’와 ‘어떤 위험에 어떤 방식으로 지원할 것인가’를 얼마나 구체적으로 설계하느냐다.


지역마다 다른 위험, 지자체 역할도 커질 수밖에 없다


기후위기는 지역마다 모습이 다르다.

도심에서는 열섬현상과 반지하 침수 문제가 클 수 있고, 산간지역에서는 산사태와 산불 위험이 더 중요할 수 있다. 농어촌에서는 가뭄과 폭염이 농작물과 고령 주민의 건강에 동시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전국에 동일한 대책 하나를 적용하는 방식으로는 대응에 한계가 생길 수밖에 없다.

기후적응법이 기후변화 영향 조사와 평가체계를 강화하는 것도 지역별 위험을 더 세밀하게 파악하기 위해서다. 어느 지역이 폭염에 취약한지, 침수와 산사태 위험이 어디에 집중돼 있는지, 어떤 계층이 피해를 반복적으로 받는지를 데이터로 확인해야 예산과 인력을 우선 배치할 수 있다.

앞으로는 지방자치단체의 역량 차이도 중요한 문제가 될 수 있다. 재정이 충분한 지역은 냉방시설과 방재 인프라를 빠르게 확대할 수 있지만, 인구 감소와 재정 부족을 겪는 지역은 대응 속도가 느릴 수 있기 때문이다.

국가 차원의 기후복지가 필요하다는 논리도 여기서 나온다. 거주지역의 재정 여건에 따라 재난으로부터 보호받는 수준이 크게 달라져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정치가 기후위기를 다루는 방식도 달라진다


기후정책은 오랫동안 산업과 에너지 정책의 영역으로 인식돼 왔다. 발전소를 어떻게 바꾸고, 자동차 배출량을 얼마나 줄이고, 기업의 탄소배출을 어떻게 규제할 것인지가 정치적 논쟁의 중심이었다.

기후적응법은 이 논의를 생활정치와 복지정치의 영역으로 넓힌다.

폭염에 취약한 독거노인을 어떻게 보호할 것인지, 침수 위험이 반복되는 주거지역을 누가 먼저 정비할 것인지, 냉방비를 감당하기 어려운 가구를 어떤 방식으로 지원할 것인지가 기후정책의 일부가 되기 때문이다.

이런 변화는 향후 예산 논쟁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기후대응 예산이 재생에너지나 산업 전환에만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주거와 보건, 안전, 복지 영역으로 더 넓게 배분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결국 ‘기후예산을 어디에 쓸 것인가’가 새로운 정치적 선택의 문제가 될 수 있다.


법보다 중요한 것은 실제 예산과 실행이다


기후적응법의 의미를 높게 평가하더라도 법 하나가 기후재난 피해를 자동으로 줄여주는 것은 아니다.

취약계층을 지원하려면 예산이 필요하고, 위험지역을 정비하려면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역할을 명확하게 나눠야 한다. 기후위험 데이터를 축적하고 이를 실제 정책에 활용할 전문인력도 필요하다.

특히 ‘취약계층 지원’이라는 표현이 선언에 그치지 않으려면 대상과 기준이 분명해야 한다. 소득 수준만 볼 것인지, 연령과 직업, 주거형태, 지역적 위험까지 함께 고려할 것인지에 따라 정책 효과는 크게 달라질 수 있다.

폭염을 예로 들면 단순히 취약가구에 냉방비를 지원하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을 수 있다. 야외 노동자의 작업시간 조정과 휴식권, 노후주택의 단열 개선, 무더위쉼터 접근성 같은 문제까지 함께 봐야 하기 때문이다.

결국 기후적응은 한 부처의 사업으로 끝날 수 없는 정책이다. 환경과 복지, 보건, 노동, 국토, 재난안전 정책이 동시에 움직여야 한다.


기후위기가 커질수록 복지의 기준도 바뀐다


복지는 오랫동안 소득과 질병, 실업, 고령 같은 위험에 대응하는 제도로 발전해왔다. 하지만 기후변화가 일상의 위험으로 자리 잡으면 복지가 다뤄야 할 영역도 넓어질 수밖에 없다.

같은 소득을 가진 사람이라도 폭염에 취약한 주택에 사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생활 위험은 다르고, 같은 지역에 살아도 고령자와 야외 노동자가 감당해야 하는 위험은 다르다.

이런 차이를 정책이 얼마나 세밀하게 반영하느냐가 앞으로 기후복지의 핵심이 될 가능성이 크다.

8월 26일 국회를 통과한 기후적응법은 그 출발선에 가깝다. 온실가스를 얼마나 줄일 것인지와 함께, 이미 닥친 기후위험으로부터 누구를 먼저 보호할 것인지도 국가의 책임이라는 원칙이 법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