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관 살리자고 OTT를 150일 늦춘다?…‘홀드백’ 논쟁의 속사정

문화

극장에서 놓친 영화를 집에서 보려면 앞으로 최대 다섯 달 가까이 기다려야 할 수도 있다. 정부가 극장 개봉 영화가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로 넘어가기까지 일정한 유예기간을 두는 이른바 ‘홀드백’ 자율협약을 추진하면서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영화계와 함께 극장 개봉 뒤 구독형 OTT 공개까지 약 150일의 간격을 두는 방안을 논의해왔다. 정부가 당초 8월 안에 방향을 확정하겠다고 밝힌 가운데 8월 31일 현재까지 극장업계와 제작·배급사, 소비자단체의 입장은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표면적인 목적은 침체된 영화관을 살리는 것이다. 극장에서 영화를 개봉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OTT에서 볼 수 있다면 관객이 굳이 비싼 티켓을 사지 않고 집에서 공개되기를 기다릴 수 있다는 논리다.

그러나 반론도 만만치 않다. 관객이 영화관에 덜 가는 이유가 정말 OTT 때문인지, 150일이라는 긴 유예기간을 두면 제작사와 배급사는 그동안 어디에서 수익을 회수할 것인지, 극장에서 충분한 상영기회조차 얻지 못한 작은 영화까지 동일한 규칙을 적용하는 것이 합리적인지에 대한 질문이 이어진다.

결국 홀드백 논쟁은 영화 한 편을 언제 OTT에서 볼 수 있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극장을 보호하기 위해 관객과 제작사의 선택을 어디까지 제한할 수 있느냐는 문화산업의 규칙을 둘러싼 논쟁이다.


150일은 어디에서 나온 숫자일까


홀드백은 새로운 개념은 아니다. 영화가 극장에서 먼저 상영된 뒤 VOD나 IPTV, OTT 등 다른 유통창구로 넘어가기까지 일정한 기간을 두는 방식은 오랫동안 영화산업에서 활용돼왔다.

문제는 OTT가 급성장하면서 이 기간이 점점 짧아졌다는 데 있다.

영화관업계는 극장 독점 상영기간이 짧아질수록 관객이 OTT 공개를 기다리게 되고, 극장 매출이 줄어들면 배급 수익과 제작 투자까지 위축되는 악순환이 생긴다고 주장한다.

정부가 현재 검토하는 방안 가운데 하나가 극장 개봉일로부터 구독형 OTT 공개까지 150일가량의 유예기간을 두는 자율협약이다. 지난해에는 국회에서 극장 상영 종료 뒤 6개월이 지나야 다른 플랫폼에 공급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까지 발의됐지만, 정부와 업계에서는 일률적인 법제화에 신중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면서 자율협약 방식에 무게가 실렸다.

150일은 약 5개월이다.

극장에서 한두 주 만에 상영이 끝난 영화라도 원칙적으로 그 기간을 채워야 한다면, 관객이 다시 영화를 만날 수 없는 긴 공백이 생길 수 있다.


관객이 극장을 떠난 이유가 정말 OTT 때문일까


홀드백을 둘러싼 가장 큰 의문은 극장 침체의 원인을 어디에서 찾느냐에 있다.

영화진흥위원회의 영화소비자 행태조사에서는 극장 관람이 줄어든 이유로 ‘볼 만한 영화가 없어서’라는 응답이 24.8%, ‘티켓 가격이 비싸서’가 24.2%로 나타났다. 반면 ‘조금 기다리면 다른 플랫폼에서 볼 수 있어서’라는 응답은 16.6%였다.

OTT가 극장 관객 감소에 영향을 주지 않았다고 볼 수는 없지만, 가장 큰 원인이라고 단정하기도 어렵다는 의미다.

실제로 올해 상반기 국내 극장 관객 수는 약 3736만명으로 전년 동기보다 74.9% 늘었고, 매출도 81.7% 증가했다. 흥행할 만한 작품이 등장하자 다시 관객이 극장으로 움직였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 숫자는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극장에 관객이 오지 않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OTT 공개를 늦추는 것보다, 관객이 1만5000원 안팎의 티켓값을 지불할 만한 영화를 더 많이 만드는 것이 먼저 아니냐는 것이다.


극장에서는 못 보는데 OTT에서도 못 본다면


제작·배급업계가 가장 우려하는 부분도 여기에 있다.

대형 영화는 극장에서 몇 주, 길게는 몇 달 동안 상영될 수 있지만 중소 규모 영화와 독립영화는 상황이 다르다. 개봉 직후 관객 반응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 상영 횟수가 빠르게 줄거나 일찍 극장에서 내려갈 수 있다.

그런데 극장 상영 여부와 관계없이 개봉일 기준 150일 동안 OTT 공개가 제한된다면, 영화는 극장에서도 보기 어렵고 OTT에서도 볼 수 없는 상태에 놓이게 된다.

최근 영화계에서는 대작 두 편이 주요 영화관 상영횟수 상위권의 69%가량을 차지하는 등 스크린 쏠림 현상도 다시 논란이 됐다. 작은 영화의 상영기회를 충분히 보장하지 않은 채 OTT 공개시점만 늦추면 오히려 작품의 유통기회를 줄일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제작사 입장에서는 수익 회수도 늦어진다.

극장 매출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 IPTV나 OTT 판권 판매를 통해 제작비를 일부 회수해야 하는데, 이 통로가 다섯 달 동안 막히면 자금력이 약한 제작사일수록 부담이 커질 수 있다.


관객에게도 ‘기다려야 할 의무’가 생긴다


소비자단체가 홀드백 논의에 반발하는 이유는 선택권 때문이다.

민변 민생경제위원회와 참여연대, 배급사연대 등은 지난 8월 24일 정부가 추진하는 홀드백 자율협약에 소비자 의견이 충분히 반영되지 않았다고 비판하면서, 150일 유예가 높은 영화관 티켓 가격 때문에 OTT나 IPTV를 이용하는 소비자의 선택을 제한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영화관에 갈지, 집에서 OTT로 볼지는 관객이 자신의 시간과 비용에 따라 결정하는 문제다.

어린 자녀가 있거나 이동이 불편한 사람, 영화관 접근성이 떨어지는 지역에 사는 사람에게 OTT는 단순한 편의 서비스가 아니라 사실상 주요 영화 관람수단이기도 하다.

따라서 극장이라는 특정 유통채널을 보호하기 위해 다른 채널의 공개를 일률적으로 늦추는 것이 적절한지에 대한 논쟁은 피하기 어렵다.

홀드백이 길어질수록 관객에게는 사실상 “극장에서 보거나, 몇 달 기다리라”는 선택지만 남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극장 위기를 외면하기도 어렵다


반대 논리만으로 문제를 설명하기도 어렵다.

영화관은 단순히 영화를 보여주는 공간에 그치지 않는다. 극장 매출은 배급사와 투자사, 제작사로 이어지고 다시 새로운 영화 제작에 투입되는 영화산업의 중요한 수익원이다.

극장 관객이 장기간 줄어들면 영화관뿐 아니라 제작 생태계 자체가 위축될 가능성이 있다.

특히 대형 멀티플렉스조차 관객 감소로 상영관 운영을 조정하는 상황에서 지역의 작은 영화관과 독립예술영화관은 더 큰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극장업계가 최소한의 독점 상영기간을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도 결국 영화 한 편을 극장에서 충분히 소비할 시간을 확보해야 산업 전체의 투자 구조가 유지된다는 판단 때문이다.

문제는 그 기간을 모든 영화에 똑같이 적용해야 하느냐다.


모든 영화에 ‘150일’을 적용할 필요가 있을까


현재 논쟁에서 현실적인 대안으로 거론되는 것은 차등 적용이다.

제작비 규모와 극장 상영기간, 관객 수, 배급방식 등에 따라 홀드백 기간을 달리하는 방식이다.

대형 상업영화는 충분한 극장 상영기간을 확보한 뒤 OTT로 이동하도록 하고, 극장에서 조기에 상영이 종료된 중소 규모 영화는 보다 빨리 디지털 플랫폼으로 넘어갈 수 있도록 예외를 두는 방식도 생각할 수 있다.

한국영화감독조합에서도 홀드백의 취지에는 공감하면서도 6개월보다는 개봉 이후 3~4개월 정도가 현실적이라는 의견을 제시한 바 있다.

결국 중요한 것은 ‘홀드백을 할 것인가 말 것인가’보다 어떤 영화에 얼마만큼 적용할 것인지다.

영화마다 제작비와 관객층, 상영기간이 다른데 모든 작품을 하나의 숫자로 묶으면 보호하려던 영화산업 안에서 오히려 새로운 불균형이 생길 수 있다.


극장을 살리는 방법이 OTT를 늦추는 것뿐이라면


홀드백 논쟁이 더 중요하게 봐야 할 지점은 극장의 경쟁력 자체다.

관객이 높은 티켓 가격을 감수하고도 극장에 가는 이유는 집에서는 얻기 어려운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큰 화면과 음향, 다른 관객과 함께 영화를 보는 경험, 특정 작품을 가장 먼저 접할 수 있다는 희소성이 극장의 가치다.

반대로 극장에 갈 이유가 충분하지 않은 상태에서 OTT 공개시점만 늦추면 관객이 반드시 극장으로 돌아온다고 보장하기 어렵다. 아예 해당 영화를 보지 않거나 다른 콘텐츠를 선택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올해 상반기 관객이 다시 크게 늘어난 것도 결국 극장에서 보고 싶은 작품이 등장했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그래서 홀드백은 극장산업을 살리는 하나의 장치가 될 수는 있어도 그 자체가 해답이 되기는 어렵다.

티켓 가격과 스크린 배분, 중소영화의 상영기회, 제작투자 구조까지 함께 손대지 않는다면 OTT 공개를 늦추는 것만으로 영화산업 전체의 문제를 해결하기는 어렵다.

영화관을 살리는 일과 관객의 선택권을 보호하는 일은 반드시 둘 중 하나를 포기해야 하는 문제는 아니다.

정부가 만들어야 할 규칙도 관객에게 단순히 ‘더 오래 기다리라’고 요구하는 방식보다는, 극장에서는 극장에서 볼 이유를 만들고 OTT에서는 작품이 사라지지 않도록 유통의 길을 열어주는 방향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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