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수도·권역별 성장엔진 다시 꺼낸 정부, 지방소멸 해법 될까

정치경제

세종과 권역별 성장엔진을 앞세운 국토대전환

정부가 지방 주도 성장을 앞세운 ‘국토대전환’ 전략을 본격화했다. 수도권 집중을 완화하고, 지역이 스스로 산업과 인재, 정주 여건을 설계하는 구조로 균형발전 정책을 바꾸겠다는 구상이다. 핵심은 세종시 행정수도 기능 강화와 ‘5극3특’ 권역별 성장엔진 육성이다.

정부는 지난 26일 이재명 대통령 주재로 열린 제10회 중앙지방협력회의에서 ‘지방 주도 성장 추진방안’과 ‘권역별 성장엔진’을 발표했다. 이 자리에서는 민선 9기 중앙·지방 협력방안, 3대 메가프로젝트 연계 권역별 성장엔진 육성방안, 지방균형성장을 위한 재정투자방향 등도 함께 논의됐다.

이번 발표에서 가장 눈에 띄는 대목은 세종시 행정수도 기능 완성 일정이다. 정부는 대통령 세종집무실을 2029년 8월까지 건립하고, 국회세종의사당은 2033년 하반기까지 건립하겠다는 계획을 제시했다.

균형발전의 중심을 ‘지방 주도’로 옮기겠다는 구상

이번 전략은 중앙정부가 사업을 정하고 지역이 따라가는 방식에서 벗어나겠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정부는 지방정부가 지역산업과 제도를 재설계하고, 중앙정부가 이를 뒷받침하는 방향을 제시했다. 권역별 성장거점을 중심으로 산업과 인프라, 인재 양성, 투자 지원을 묶겠다는 점도 기존 균형발전 정책과 구분되는 지점이다.

문제는 ‘지방 주도’라는 표현이 실제 권한 이전으로 이어질 수 있느냐다. 지방정부가 산업 전략을 세우더라도 예산, 규제, 인허가, 세제, 전력·용수 인프라의 결정권이 중앙에 남아 있다면 지역은 여전히 실행 주체가 아니라 사업 신청자가 될 가능성이 크다. 지방이 주도하려면 계획 수립 권한만이 아니라 재정과 규제 조정 권한까지 함께 내려가야 한다.

중앙과 지방이 원팀이 되겠다는 선언은 필요하지만, 지방소멸 위기를 막는 데 충분하지는 않다. 지역은 이미 청년 유출, 생산가능인구 감소, 의료·교육 인프라 약화, 생활서비스 축소를 동시에 겪고 있다. 산업 하나를 지정하고 특구 이름을 붙이는 방식만으로는 인구가 돌아오지 않는다.

세종 행정수도 완성, 상징을 넘어 기능으로 가야 한다

대통령 세종집무실과 국회세종의사당 건립은 균형발전 정책에서 상징성이 큰 과제다. 행정부처 상당수가 세종에 자리 잡았지만 대통령실과 국회가 서울에 남아 있는 구조에서는 행정 비효율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오래전부터 제기돼 왔다.

세종 행정수도 완성은 단순한 청사 이전 사업이 아니다. 정책 결정과 예산 심의, 부처 협의, 국회 대응이 같은 공간축에서 이루어질 수 있느냐의 문제다. 세종이 실질적 행정수도로 기능하려면 건물 건립 일정을 넘어 정부와 국회의 업무 방식까지 바뀌어야 한다.

국회세종의사당은 이미 국회법 개정과 관련 규칙 제정을 거쳐 절차가 진행돼 왔고, 행복청은 설계와 공사를 거쳐 2033년 준공을 목표로 추진하고 있다고 설명해 왔다. 그러나 청사와 의사당이 들어선다고 곧바로 지역 균형발전이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세종으로 옮겨가는 기능이 실제 의사결정 권한을 동반하는지, 국회와 부처의 비효율을 줄이는지, 주변 충청권의 산업·교통·주거 체계와 연결되는지가 관건이다.

권역별 성장엔진, 산업 명칭보다 실행 구조가 중요하다

권역별 성장엔진 전략은 지역별 특성과 산업 기반을 묶어 성장거점을 만들겠다는 접근이다. 수도권 일극 구조에서 벗어나 복수의 성장축을 만들겠다는 점에서는 방향성이 분명하다. 정부가 말한 ‘5극3특’ 구상도 이런 맥락에서 나온다.

하지만 권역별 성장엔진이 성공하려면 몇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첫째, 지역 산업이 중앙정부 공모사업의 목록으로만 소비돼서는 안 된다. 지역 대학, 기업, 연구기관, 지방정부가 실제로 함께 움직이는 생태계가 있어야 한다. 둘째, 전략산업에 필요한 전력, 용수, 교통, 물류, 데이터 인프라가 동시에 깔려야 한다. 셋째, 지역에서 배운 인재가 지역 기업에 취업하고 정착할 수 있는 경로가 만들어져야 한다.

지방의 문제는 기업이 없어서만 생긴 것이 아니다. 일자리가 있어도 주거가 불안하고, 의료 접근성이 낮고, 자녀 교육과 문화 생활의 선택지가 좁으면 청년은 지역에 남기 어렵다. 권역별 성장엔진이 산업단지와 특구 확대에만 머문다면 과거 균형발전 정책의 한계를 반복할 수 있다.

지방소멸 해법은 산업과 생활 인프라를 함께 묶어야 한다

지방소멸은 인구 숫자의 문제가 아니라 생활 기반의 붕괴 문제다. 청년이 떠나면 지역 기업은 인력을 구하지 못하고, 기업이 줄면 지방세 기반이 약해진다. 세수가 줄면 의료·교육·교통·돌봄 서비스가 줄어들고, 생활 여건이 나빠지면 다시 인구가 빠져나간다. 악순환이 이어지는 구조다.

따라서 정부의 지방 주도 성장 전략은 산업정책과 생활정책을 동시에 설계해야 한다. 권역별 성장엔진이 지역 일자리를 만드는 축이라면, 정주 여건 개선은 그 일자리를 지역에 붙잡아두는 접착제다. 지방에 좋은 공장을 짓는 것과 지방에서 살 만한 생활권을 만드는 것은 같은 정책의 두 면이다.

특히 의료와 교육, 교통은 지방 정착의 핵심 변수다. 청년층은 일자리만 보고 움직이지 않는다. 자녀 교육, 배우자의 일자리, 병원 접근성, 문화 생활, 대중교통, 주거 비용을 함께 본다. 기업 역시 인재가 오지 않는 지역에는 투자를 망설인다. 결국 지방 성장 전략은 산업 유치보다 넓은 의미의 생활권 재건 전략이어야 한다.

재정지원은 성과보다 지속성을 봐야 한다

정부가 지방균형성장을 위한 재정투자방향을 함께 논의한 것은 의미가 있다. 균형발전은 선언으로 가능한 일이 아니며, 장기간 재정 투입과 제도 조정이 필요하다. 다만 재정지원은 단기 실적 경쟁으로 흘러가서는 안 된다.

지역 사업은 중앙정부 평가에 맞춘 숫자를 만들기 쉽다. 투자유치 금액, 협약 건수, 특구 지정 수, 입주기업 수는 비교적 빠르게 제시할 수 있다. 그러나 실제 중요한 것은 5년 뒤와 10년 뒤에 지역에 남은 기업, 정착한 인재, 늘어난 생활서비스, 회복된 지역 상권이다.

지방 주도 성장을 제대로 평가하려면 단기 성과지표와 장기 정착지표를 분리해야 한다. 정부가 지역별 성장엔진을 지원하더라도 해당 권역에서 청년 고용이 늘었는지, 지역 대학 졸업생의 역외 유출이 줄었는지, 의료·교육·문화 접근성이 개선됐는지를 함께 봐야 한다.

중앙과 지방의 협력은 권한 배분에서 검증된다

중앙지방협력회의에서 논의된 안건들은 지방 주도 성장을 제도화하려는 출발점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중앙과 지방의 협력은 회의체 운영만으로 검증되지 않는다. 실제 예산 편성, 규제 완화, 인허가 조정, 공공기관 기능 배분, 인재 양성 체계에서 지방의 결정권이 얼마나 커지는지가 중요하다.

지방정부도 책임을 피할 수 없다. 지방 주도라는 이름 아래 지역별로 비슷한 산업을 중복 유치하거나, 단체장 임기 안에 보이는 성과에만 집중하면 정책 지속성이 흔들릴 수 있다. 지방정부는 지역의 강점과 약점을 냉정하게 분석하고, 인접 지자체와 경쟁보다 협력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권역별 성장엔진은 행정구역 단위가 아니라 생활권과 산업권 단위로 설계돼야 한다. 청년의 출퇴근, 기업의 공급망, 대학의 연구협력, 병원의 진료권역은 행정 경계와 일치하지 않는다. 지방 주도 성장이 성공하려면 광역 협력의 실질성이 중요하다.

정부 발표가 정책 전환이 되려면

이번 정부 발표는 균형발전 의제를 다시 전면에 올렸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세종 행정수도 기능 완성, 5극3특 권역별 성장엔진, 지방균형성장 재정투자 방향은 모두 수도권 일극 체제의 한계를 넘어야 한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그러나 지방소멸은 더 이상 구호로 대응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지역 주민은 또 하나의 발전계획보다 실제로 달라지는 생활을 원한다. 기업은 보조금보다 예측 가능한 인프라와 인재 공급을 본다. 청년은 일자리뿐 아니라 살 수 있는 도시인지를 따진다.

정부의 국토대전환 전략이 성공하려면 ‘어디에 무엇을 짓겠다’는 발표를 넘어 ‘누가 어떤 권한으로, 얼마의 재원을 갖고, 몇 년 동안 책임질 것인가’를 분명히 해야 한다. 행정수도와 성장엔진은 균형발전의 출발점일 수 있지만, 해법 그 자체는 아니다. 지방이 다시 살아나려면 산업과 생활, 권한과 책임, 중앙과 지방의 역할이 함께 바뀌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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