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지방성장에 예산 집중한다는 정부, 적극재정은 성장 마중물 될까

경제

내년도 예산안, 적극재정 기조로 전환

정부와 여당이 내년도 예산안에서 적극재정 기조를 앞세웠다. 핵심 투자 분야는 인공지능, 3대 메가 프로젝트, 지방 주도 성장, 민생 지원이다. 경기 회복의 불씨를 살리고 미래 성장동력을 확보하겠다는 구상이지만, 재정 투입이 단기 부양에 그치지 않고 산업 생산성과 지역 정착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더불어민주당과 정부는 지난 25일 내년도 정부 예산안을 협의하면서 재정의 적극적인 역할을 강조했다. 이 자리에서는 AI와 3대 메가 프로젝트, 지방 주도 성장 등에 대한 집중 투자가 논의됐다.

적극재정은 경기 둔화나 구조 전환기에는 필요한 정책 수단이 될 수 있다. 민간 투자가 주춤할 때 정부가 먼저 투자해 산업 기반을 만들고, 기업과 인재가 움직일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적극재정은 언제나 재정건전성 논란을 동반한다. 결국 핵심은 “얼마나 많이 쓰느냐”가 아니라 “돈을 쓴 뒤 무엇이 남느냐”다.

AI 예산은 단순 지원금이 아니라 산업 인프라여야 한다

정부가 AI 투자를 내년도 예산의 핵심 축으로 잡은 것은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AI는 이제 특정 기업이나 연구소의 기술이 아니라 제조업, 금융, 의료, 교육, 행정, 콘텐츠 산업 전반의 생산성을 바꾸는 기반 기술이 됐다. 국가가 AI 인프라와 데이터, 인재 양성, 산업 적용을 지원하지 않으면 기업 간 격차뿐 아니라 국가 경쟁력 격차도 커질 수 있다.

문제는 AI 예산의 쓰임이다. 단순히 AI 사업 명칭이 붙은 과제를 많이 만드는 것만으로는 성과가 남지 않는다. GPU와 데이터센터, 국산 AI 모델, 산업별 AI 전환, 중소기업 적용, 공공데이터 개방, AI 인재 양성이 서로 연결돼야 한다. AI 예산은 행사성 사업이나 단기 용역이 아니라 산업 현장에서 실제로 쓰이는 인프라로 설계돼야 한다.

특히 중소·중견기업의 AI 전환은 중요하다. 대기업은 자체 투자 여력이 있지만, 중소 제조업과 서비스업은 AI를 도입하고 싶어도 데이터 정리, 인력 확보, 비용 부담에서 막히는 경우가 많다. 정부 예산이 이 격차를 줄이지 못하면 AI 투자는 일부 대기업과 플랫폼 기업 중심의 성장으로 끝날 수 있다.

지방 주도 성장, 돈보다 구조가 중요하다

내년도 예산안 협의에서는 지방 주도 성장도 주요 축으로 다뤄졌다. 특히 ‘성장엔진 특별보조금’을 신설해 앵커기업이 지방으로 갈 경우 설비투자의 상당 부분을 정부가 지원하는 방안이 거론됐다. 이는 지방에 기업을 유치하고 지역 산업 기반을 키우겠다는 취지다.

지방 성장 예산은 필요하다. 수도권 집중이 심화되면 주거비와 교통 혼잡, 청년 경쟁 과밀, 지역 소멸 문제가 동시에 악화된다. 기업과 인재가 수도권에만 몰리는 구조를 바꾸려면 지방에 좋은 일자리와 산업 생태계가 있어야 한다. 정부가 앵커기업의 지방 투자를 지원하겠다는 방향은 그런 점에서 의미가 있다.

하지만 기업은 보조금만 보고 지방으로 가지 않는다. 전력과 용수, 물류, 부품 공급망, 연구 인력, 대학, 병원, 주거, 교육, 문화 인프라를 함께 본다. 지방 설비투자 보조금이 실제 이전과 정착으로 이어지려면 정주 여건 개선과 인재 공급 정책이 동시에 붙어야 한다. 공장만 지방에 짓고 핵심 인력은 수도권에 남는 구조라면 지방 주도 성장이라고 보기 어렵다.

민생 예산은 단기 지원과 구조 개선을 구분해야 한다

적극재정에서 민생 지원은 빠질 수 없다. 고물가와 고용 불안, 주거 부담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취약계층 지원과 생활비 부담 완화는 필요하다. 다만 민생 예산도 단기 현금성 지원과 구조 개선형 지출을 구분해야 한다.

단기 지원은 위기 국면에서 효과가 있다. 하지만 반복되는 현금성 지원만으로는 가계의 불안을 근본적으로 줄이기 어렵다. 민생을 안정시키려면 일자리, 주거, 보육, 의료, 교육, 교통비 부담을 낮추는 장기적 지출과 연결돼야 한다. 특히 청년과 저소득층, 자영업자, 고령층은 같은 민생 대상이라도 필요한 정책이 다르다.

정부 예산은 민생을 넓게 보되, 집행은 정밀해야 한다. 소득이 낮은 계층에는 직접 지원이 필요하고, 청년층에는 일자리와 주거 기반이 중요하며, 지역 주민에게는 의료·교통·돌봄 서비스가 체감 민생이다. 예산이 넓게 흩어지면 효과는 약해진다.

적극재정의 성패는 ‘승수’보다 ‘잔존 효과’에 달려 있다

재정 투입의 효과를 말할 때 흔히 경기 부양 효과를 본다. 정부가 돈을 쓰면 수요가 늘고, 기업 매출과 고용에 영향을 주는 방식이다. 그러나 지금 필요한 적극재정은 단기 경기 대응을 넘어야 한다. AI와 지방성장 예산은 돈을 쓴 뒤에도 남는 자산을 만들어야 한다.

AI 예산은 산업 생산성, 공공서비스 효율, 데이터 인프라, 전문인력으로 남아야 한다. 지방성장 예산은 지역 기업, 지역 대학과의 연계, 청년 정착, 생활 인프라로 남아야 한다. 민생 예산은 단기 소비 진작을 넘어 취약계층의 삶을 안정시키는 제도 개선으로 이어져야 한다.

따라서 내년도 예산안을 평가할 때는 총액보다 구조를 봐야 한다. 어느 부처가 얼마를 가져갔는지가 아니라, AI·지방·민생 예산이 서로 연결돼 있는지 따져야 한다. 예산은 많지만 부처별 칸막이에 갇히면 성과는 분산된다.

재정건전성 논란을 피하려면 성과 기준이 필요하다

적극재정은 필요할 수 있지만, 재정건전성 논란을 피할 수는 없다. 국가채무 증가와 세수 여건, 경기 대응 필요성, 미래 투자 필요성이 충돌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부는 “확장하겠다”는 말만으로는 부족하다. 어떤 지출은 늘리고, 어떤 지출은 줄이며, 어떤 사업은 통폐합할 것인지 함께 제시해야 한다.

재정건전성은 단순히 지출을 줄인다고 확보되는 것이 아니다. 성장 잠재력을 높이는 투자는 미래 세입 기반을 키울 수 있다. 반대로 성과가 낮은 지출은 규모가 작아도 재정 부담이 된다. 중요한 것은 지출의 질이다.

AI와 지방성장 예산도 성과 기준을 분명히 해야 한다. AI 예산은 실제 산업 적용 건수, 중소기업 생산성 개선, AI 인재 취업, 공공서비스 품질 개선으로 평가해야 한다. 지방성장 예산은 기업 이전 숫자만이 아니라 지역 고용, 청년 정착, 지역 대학 연계, 정주 여건 개선으로 봐야 한다.

지방 예산은 ‘기업 유치’보다 ‘사람 정착’까지 봐야 한다

지방 주도 성장 예산의 가장 큰 함정은 기업 유치 실적에만 집중하는 것이다. 기업 투자 협약과 공장 착공은 기사화하기 쉽고 숫자로 보이기 좋다. 하지만 지방소멸의 핵심은 사람이 남지 않는다는 데 있다.

청년이 지방에 남으려면 일자리만으로는 부족하다. 배우자의 일자리, 자녀 교육, 병원 접근성, 문화생활, 교통, 주거비까지 함께 본다. 지방 성장 예산이 산업단지와 보조금 중심으로만 설계되면 기업은 올 수 있어도 사람은 오래 머물지 않을 수 있다.

정부가 지방 미래성장 지원금, 지역 필수의료, 지방국립대 지원 같은 정책을 함께 검토하는 이유도 이 지점과 연결된다. 지방 성장의 핵심은 산업과 생활권을 동시에 만드는 것이다. 공장이 들어오고, 대학이 인재를 키우고, 병원이 버티고, 교통과 주거가 따라붙어야 지역 경제가 살아난다.

AI와 지방성장을 따로 보지 말아야 한다

AI 예산과 지방성장 예산은 별도 항목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연결돼야 한다. AI 산업이 수도권과 일부 대기업에만 집중되면 지역 격차는 더 커질 수 있다. 반대로 지방 산업에 AI를 접목하면 지역 제조업과 농업, 물류, 의료, 행정서비스의 생산성을 높일 수 있다.

예를 들어 지역 제조업에는 불량률 예측, 설비 고장 예측, 에너지 효율화, 물류 최적화 같은 AI 적용이 필요하다. 농업과 식품 산업에는 스마트팜, 수급 예측, 품질 관리가 중요하다. 지역 의료에는 진료 보조와 원격 협진, 응급 대응 체계가 연결될 수 있다. 지방 행정에도 민원 분석과 복지 사각지대 발굴이 가능하다.

정부 예산이 AI와 지방을 따로 배분하는 데 그치면 효과가 제한된다. 지방 산업을 AI 전환의 실험장으로 만들고, 지역 대학과 기업이 함께 인재를 키우는 구조가 필요하다. 그래야 AI 예산은 미래산업 예산이 되고, 지방 예산은 단순 보조금이 아니라 생산성 투자로 바뀐다.

내년도 예산안의 진짜 질문

내년도 예산안의 쟁점은 적극재정이냐 긴축재정이냐의 단순 대립이 아니다. 지금 필요한 질문은 더 구체적이다. 정부가 쓰는 돈이 미래 성장으로 이어지는가. 지방에 투입되는 예산이 실제 정착을 만들 수 있는가. AI 예산이 산업 전반의 생산성으로 확산되는가. 민생 예산이 일시적 완화가 아니라 생활 기반 개선으로 이어지는가.

정부와 여당은 적극재정의 필요성을 강조했지만, 국민이 보는 기준은 다르다. 국민은 예산 규모보다 체감 변화를 본다. 기업은 지원금보다 예측 가능한 인프라와 규제 환경을 본다. 지방은 일회성 사업보다 지속 가능한 권한과 재원을 원한다.

적극재정은 성장의 마중물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마중물은 펌프가 작동할 때 의미가 있다. AI와 지방성장, 민생 지원에 예산을 집중하겠다는 정부의 구상이 성과를 내려면 예산 투입 이후 기업 투자, 인재 정착, 산업 생산성, 생활 안정으로 이어지는 실행 구조가 필요하다. 내년도 예산안의 성패는 돈을 얼마나 푸느냐가 아니라, 그 돈이 한국 경제의 다음 기반을 얼마나 남기느냐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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