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전남·충남대에 5년간 3,900억원씩…‘서울대 10개 만들기’ 첫발

지역 전략산업·AI 인재 양성에 집중 투자…대학 경쟁력과 지역 정착 선순환이 성패 가른다
정부가 이른바 ‘서울대 10개 만들기’ 정책의 첫 지원 대학으로 부산대학교와 전남대학교, 충남대학교를 선정했다. 수도권에 집중된 교육·연구 역량을 지역으로 분산하고, 거점국립대를 지역 성장의 핵심 기관으로 육성하는 작업이 본격적인 실행 단계에 들어갔다.
선정된 대학에는 향후 5년 동안 대학별로 약 3,900억원이 투입될 전망이다. 연평균으로 환산하면 700억~800억원 규모다. 기존 국립대학육성사업과 인공지능 분야 지원, 지역 공유대학 사업 등을 더하면 대학별 지원 규모는 더 커질 수 있다.
정부는 재정을 학과 정원 확대나 시설 개선에만 투입하지 않고, 지역 전략산업과 연계한 교육·연구 체계 구축에 집중할 계획이다. 지역에서 인재를 양성하고 기업과 연구기관이 이를 활용하도록 해 대학과 산업, 일자리의 연결 구조를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다만 대규모 재정 지원만으로 지역대학의 경쟁력이 회복되는 것은 아니다. 우수 교원 확보와 연구 성과, 기업 참여, 졸업생의 지역 정착이 함께 이뤄져야 정책 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 첫 선정 대학 세 곳의 성과가 나머지 거점국립대 지원 방향을 결정하는 시험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
거점국립대 세 곳에 집중 투자
교육부가 추진하는 ‘서울대 10개 만들기’는 서울대를 제외한 9개 거점국립대의 교육·연구 경쟁력을 집중적으로 높이는 정책이다. 지역에 서울대 수준의 교육·연구 기반을 구축해 수도권 대학으로 향하는 학생과 연구인력의 이동을 완화하는 것이 핵심 목표다.
교육부는 2026년 6월 발표한 패키지 지원대학 선정계획에서 지역 전략산업과 인공지능 분야를 묶어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지원 범위도 학부에 머물지 않고 대학원과 연구소까지 포함했다. 교육과 연구, 산학협력을 하나의 체계로 연결하겠다는 의미다.
선정 기준에는 정부의 국토공간 대전환 전략과의 정합성, 지역과 대학의 준비도, 교육·연구 혁신 계획 등이 포함됐다. 대학 단독 계획보다 지방정부와 기업, 연구기관이 함께 마련한 성장 전략을 중점적으로 평가했다.
부산대와 전남대, 충남대는 각각 지역 산업 기반과 대학의 연구 역량을 연계한 계획을 제시했다. 세 대학에는 2027년부터 연간 약 700억~800억원이 지원될 것으로 예상된다. 5년간 대학별 지원액은 약 3,900억원, 세 대학을 합하면 1조1,700억원을 웃돈다.
사업별로는 지역 성장엔진과 연계한 브랜드 단과대학 및 융합연구원 조성에 약 400억원, 인공지능 거점대학 사업에 약 100억원, ‘5극 3특’ 공유대학 구축에 약 200억원이 배정되는 구조다. 첨단분야 혁신융합대학 사업 지원도 추가될 예정이다.
구체적인 연도별 예산은 정부 예산안과 국회 심의, 대학별 사업계획 조정 및 성과평가 과정에서 달라질 수 있다. 따라서 3,900억원은 확정된 일괄 교부액이라기보다 5년 동안 추진할 패키지 사업의 예상 지원 규모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부산대는 조선·해양과 기계·우주항공 연계
부산대는 부산·울산·경남 지역의 제조업 기반을 활용해 조선·해양, 기계, 우주항공 분야를 집중적으로 육성한다. 동남권 주력산업의 디지털 전환과 친환경 기술 개발을 담당할 인재를 양성하고, 관련 기업과 공동 교육과정을 운영할 계획이다.
부산과 울산, 경남은 조선·자동차·기계·항공산업의 생산 기반이 집적된 지역이다. 그러나 청년 인구 유출과 연구개발 인력 부족은 산업 고도화를 제약하는 요인으로 지적돼 왔다. 부산대는 지역 산업단지와 연구기관을 대학 교육 및 연구에 연결해 이 문제를 풀겠다는 구상이다.
LG와 한화 등 기업이 참여하는 계약학과와 공동 교육과정도 추진 대상에 포함됐다. 학생은 재학 중 기업의 기술 수요에 맞는 교육을 받고, 기업은 지역에서 필요한 인력을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다.
관건은 교육과정이 특정 기업의 단기 인력 수요에만 맞춰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산업구조 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기초과학과 공학 역량, 인공지능 활용 능력을 함께 길러야 한다. 산학협력의 양보다 졸업생의 취업과 연구 성과를 기준으로 사업을 평가할 필요가 있다.
전남대는 반도체·미래에너지 인재 육성
전남대는 광주·전남 지역의 반도체와 미래에너지 산업을 중심으로 사업을 추진한다. 삼성전자와 한국전력공사 등 지역 및 연관 기업·기관과 협력해 인공지능과 산업 전환을 이끌 인재를 양성할 계획이다.
광주는 인공지능 집적단지와 미래차 산업을 육성하고 있으며, 전남은 에너지산업과 재생에너지 기반을 확대하고 있다. 전남대는 두 지역의 산업 전략을 대학의 반도체, 에너지, 인공지능 연구 역량과 연결하는 역할을 맡게 된다.
대학이 제시한 계획에는 인공지능과 디지털 전환 분야 인재 4,655명을 양성하는 목표가 담겼다. 인력 양성 규모만 보면 지역 산업에 상당한 공급 효과를 낼 수 있다. 그러나 교육을 마친 인재가 수도권으로 이동하면 지역경제에 남는 효과는 제한된다.
기업 연구소와 양질의 일자리를 지역에 함께 늘리는 정책이 필요한 이유다. 대학은 인재를 양성하고 지방정부는 정주 환경을 개선하며, 기업은 연구개발 투자와 채용을 확대해야 한다. 세 주체의 역할이 연결돼야 재정 투자가 지역 성장으로 이어질 수 있다.
충남대는 대덕연구개발특구 활용
충남대는 대전의 대덕연구개발특구와 정부출연연구기관, 한국과학기술원과의 협력을 전면에 내세웠다. 과학기술 연구 성과를 산업 현장으로 이전하고, 이를 수행할 인공지능 융합인재를 매년 500명가량 양성한다는 계획이다.
충남대가 구상한 ‘NEXUS 과학기술 단과대학’은 대학과 연구기관, 기업을 공동 교육과정으로 연결하는 모델이다. 학생들이 대학 강의뿐 아니라 연구기관의 프로젝트와 기업의 현장 과제에 참여하도록 교육 구조를 개편하는 것이 핵심이다.
대전은 국내 최고 수준의 공공 연구개발 자원을 보유하고 있지만, 연구 성과가 지역 기업 성장과 일자리 창출로 이어지는 연결고리는 충분하지 않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충남대 사업은 대학이 연구개발특구와 지역 산업 사이의 중개기관 역할을 맡는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연구기관과 대학의 협력이 공동행사나 단기 과제에 그치지 않도록 교원 겸직, 공동학위, 연구장비 개방, 기술사업화 제도를 구체화해야 한다. 기존 기관의 사업을 한데 묶는 수준을 넘어 실질적인 교육·연구 통합이 이뤄져야 한다.
‘대학 서열 복제’보다 지역 성장 기반이 중요
‘서울대 10개 만들기’라는 명칭은 정책의 목표를 쉽게 전달하지만 오해를 낳을 가능성도 있다. 지역 거점국립대를 서울대와 동일한 형태로 만드는 것이 정책의 실질적인 목표는 아니다. 지역별 산업과 연구 기반에 맞는 경쟁력 있는 국립대를 육성하는 것이 핵심이다.
부산대가 조선·해양과 기계 분야에서, 전남대가 에너지와 인공지능 분야에서, 충남대가 과학기술 연구와 사업화 분야에서 강점을 확보한다면 대학 간 획일적인 서열 경쟁을 줄일 수 있다. 대학마다 다른 전문성을 키우는 체계가 필요하다.
재정 배분 방식도 대학의 학생 수와 시설 규모보다 교육·연구 성과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우수 교원 유치, 대학원 연구 경쟁력, 기업 공동연구, 기술이전, 지역 취업률 등을 지속적으로 점검할 필요가 있다.
성과를 지나치게 단기간에 요구하는 것도 경계해야 한다. 연구중심대학의 역량과 지역 산업 생태계는 몇 년 안에 완성되기 어렵다. 5년 단위 사업이 종료된 뒤에도 우수한 교육·연구 조직이 유지될 수 있도록 장기적인 재정과 제도 설계가 뒤따라야 한다.
청년이 지역에 남을 수 있어야 성공
지역대학 위기의 배경에는 학령인구 감소와 함께 수도권 중심의 취업 구조가 자리 잡고 있다. 대학의 교육 여건이 개선되더라도 졸업 후 선택할 일자리가 부족하면 청년층의 수도권 이동을 막기 어렵다.
정부가 대학 지원과 산업 육성, 교통·주거·문화 정책을 함께 추진해야 하는 이유다. 지역에서 교육받은 학생이 지역 기업과 연구기관에 취업하고, 안정적으로 생활할 수 있는 구조가 마련돼야 한다.
첫 선정 대학인 부산대와 전남대, 충남대에는 다른 거점국립대가 참고할 수 있는 성과모델을 만들어야 하는 책임도 주어졌다. 예산 집행 규모보다 어떤 인재를 길러냈고, 지역에 어떤 기업과 일자리를 만들어냈는지가 핵심 평가 기준이 돼야 한다.
이번 선정은 수도권 집중을 대학 정책을 통해 완화하려는 장기 실험의 출발점이다. 대규모 지원이 대학의 외형 확장에 머무를지, 지역 산업과 청년의 미래를 바꾸는 투자로 이어질지는 앞으로의 실행 과정에 달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