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24 대신 AI와 대화하는 시대…‘AI 국민비서’는 어디까지 알까
정부 지원을 받으려면 지금까지는 국민이 먼저 움직여야 했다. 정부24에 들어가 필요한 서비스를 검색하고, 국민비서에서 알림을 확인하고, 혜택알리미에서 자신에게 맞는 지원사업이 있는지 찾아보는 식이다. 같은 사람을 위한 행정서비스라도 여러 부처와 플랫폼에 흩어져 있어 어떤 제도가 자신에게 해당하는지 알아내는 과정 자체가 하나의 일이었다.
이 구조가 앞으로 크게 달라질 수 있다.
정부는 지난 8월 25일 국무회의에서 ‘AI 민주정부 실현 전략’을 발표하고 2027년부터 정부24와 국민비서, 혜택알리미를 연계한 맞춤형 ‘AI 국민비서’를 하나의 창구에서 제공하겠다고 밝혔다. 복지·안전·세금·농업·식약 등 국민 생활과 밀접한 5대 분야에는 24시간 AI 상담체계를 구축하고, 공공서비스 일부는 네이버·카카오 같은 민간 플랫폼에서도 이용할 수 있도록 개방한다는 계획이다.
지금까지의 전자정부가 사람이 인터넷에서 행정서비스를 찾아가는 방식이었다면, 앞으로의 정부는 AI가 질문의 뜻을 이해하고 필요한 서비스를 찾아 연결하는 방향으로 이동하는 셈이다.
편리함은 분명하다. 하지만 정부가 제공하는 AI는 민간 챗봇과는 다른 질문을 피하기 어렵다.
AI가 세금이나 복지 대상 여부를 잘못 알려줬다면 누구의 책임일까. 개인의 행정정보를 연결해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려면 AI가 나에 대해 어느 정도까지 알아야 할까. 그리고 스마트폰과 AI 사용이 익숙하지 않은 사람은 오히려 새로운 행정서비스에서 더 멀어지는 것은 아닐까.
찾아가는 행정에서 ‘먼저 알려주는 행정’으로
현재도 정부는 국민비서와 혜택알리미 등을 통해 개인별 알림과 맞춤형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하지만 앞으로 추진되는 AI 국민비서는 단순한 알림서비스보다 한 단계 더 나아간다.
정부 계획은 정부24·국민비서·혜택알리미를 연계해 하나의 창구에서 국민이 필요한 서비스를 묻고 안내받도록 하는 것이다. 예컨대 복지와 납세, 감염병 예방, 식생활 정보처럼 담당 부처가 서로 다른 행정서비스도 AI와 대화하면서 필요한 정보를 찾는 방식으로 바뀔 수 있다.
행정서비스 이용에서 가장 큰 장벽 가운데 하나는 정보 부족이다.
지원제도가 존재해도 신청자 본인이 그 사실을 모르면 혜택을 받을 수 없다. 정부 사이트에서 정확한 사업명을 검색해야 하거나 자신의 상황에 어떤 제도가 적용되는지 알아내기 어렵다면, 제도가 있어도 실제 이용률은 낮아질 수 있다.
AI 국민비서는 이 문제를 줄일 가능성이 있다. 사용자가 정확한 제도명을 몰라도 “부모님을 돌보고 있는데 받을 수 있는 지원이 있나”, “사업을 처음 시작했는데 어떤 세금을 신고해야 하나”처럼 일상적인 문장으로 질문하면 관련 행정서비스를 연결하는 방식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전자정부의 중심이 ‘어디에 정보가 있는지 찾는 능력’에서 ‘무엇이 필요한지 말하는 능력’으로 이동하는 변화다.
복지·세금도 밤에 물어볼 수 있게 된다
정부가 가장 먼저 AI 상담을 확대하는 분야는 복지·안전·세금·농업·식약 등 5개다.
정부 설명에 따르면 돌봄서비스와 납세, 감염병 증상·예방, 식생활 정보 등 국민이 자주 묻는 내용을 시간과 장소의 제약 없이 24시간 상담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목표다. 일부 사업은 2026년부터 추진되고 나머지 분야는 2027년 개통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 변화는 특히 행정기관 운영시간과 생활시간이 맞지 않는 사람에게 의미가 있다.
낮에 근무하는 직장인이 세금이나 복지 문의를 하려면 점심시간이나 업무시간을 이용해야 하고, 전화 상담은 대기시간도 길 수 있다. 단순하고 반복적인 질문을 AI가 처리할 수 있다면 공무원이나 상담원은 복잡한 민원과 판단이 필요한 문제에 더 많은 시간을 쓸 수도 있다.
다국어 행정서비스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 정부는 ‘국민안전24’를 통해 22개 언어로 재난정보를 제공하고, AI로 재난상황을 분석해 선제적으로 안내하는 방안도 추진하고 있다.
정부 AI의 장점은 결국 ‘언제든 물어볼 수 있다’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수많은 법령과 정책을 사람이 일일이 찾아보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 더 큰 변화다.
하지만 AI가 세금을 틀리게 알려주면 어떻게 될까
민간 AI가 영화 개봉일을 틀리게 답하는 것과 정부 AI가 세금 신고기한이나 복지 신청조건을 잘못 안내하는 것은 결과가 다르다.
세금 신고를 잘못하면 가산세가 발생할 수 있고, 지원사업 신청기간을 놓치면 한동안 다시 신청할 기회가 없을 수도 있다. 복지대상 여부를 잘못 설명하면 실제 필요한 사람이 지원을 포기하는 일도 생길 수 있다.
생성형 AI의 가장 큰 약점 가운데 하나는 그럴듯한 문장으로 틀린 답을 만들 수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정부 AI는 일반적인 챗봇보다 훨씬 높은 정확성과 책임체계를 요구받게 된다. 단순한 생활정보는 AI가 바로 답하더라도 세금이나 복지자격처럼 법적·경제적 영향을 주는 안내에는 근거 법령과 담당기관, 최신 기준을 함께 보여주고 최종 확인절차를 두는 방식이 필요하다.
정부도 이번 전략에서 법령과 정책사례 등 공공정보를 AI가 정확하게 인식할 수 있도록 정부 웹과 앱을 AI 친화적으로 개편하겠다고 밝혔다.
결국 중요한 것은 AI가 얼마나 자연스럽게 대화하느냐가 아니다.
그 답을 국민이 어디까지 믿어도 되는지를 정부가 명확하게 정하는 일이다.
맞춤형 서비스를 하려면 AI는 나를 얼마나 알아야 하나
AI 국민비서가 제대로 작동하려면 개인정보 문제도 피해가기 어렵다.
단순한 법령 검색이라면 사용자의 개인정보를 거의 알 필요가 없다. 하지만 “내가 받을 수 있는 지원을 알려달라”는 요청에 정확히 답하려면 상황이 달라진다.
나이와 거주지역, 가구구성, 소득 수준, 취업 여부, 사업자 여부처럼 여러 조건이 지원대상 판단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서비스가 더 정교해질수록 다양한 행정정보와의 연계 필요성도 커질 수밖에 없다.
다만 정부가 발표한 전략이 모든 행정정보를 한꺼번에 AI에 제공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현재 발표된 단계에서는 정부24·국민비서·혜택알리미를 연결해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방향이 제시됐고, 구체적으로 어떤 데이터가 어떤 방식으로 연계될지는 실제 구축 과정에서 더 명확해져야 한다.
바로 이 부분이 앞으로 중요한 쟁점이다.
AI가 더 편리한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이유로 필요 이상의 개인정보를 결합한다면 행정 편의가 개인정보 자기결정권보다 앞서는 결과가 될 수 있다.
어떤 정보를 사용하는지, 왜 필요한지, 얼마나 오래 보관하는지, 다른 목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지 등을 국민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공개하는 절차가 함께 필요하다.
정부 서비스가 네이버·카카오 안으로 들어간다
정부가 이번에 함께 제시한 변화 가운데 하나는 공공서비스를 민간 플랫폼에서도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정부는 공공서비스를 표준화·모듈화해 네이버와 카카오 같은 민간 플랫폼과 ‘모두의 AI’에서도 활용할 수 있도록 개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국민 입장에서는 편리할 수 있다.
정부 앱을 별도로 설치하지 않고 평소 자주 사용하는 플랫폼 안에서 민원이나 공공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면 접근성이 크게 높아진다.
반면 정부 서비스와 민간 플랫폼의 경계가 흐려지는 만큼 새로운 질문도 생긴다.
민간 플랫폼에서 정부서비스를 이용할 때 어떤 정보가 플랫폼에 전달되는지, 이용기록은 누구에게 남는지, 광고나 다른 상업적 서비스와 행정정보가 결합될 가능성은 없는지 등을 명확히 구분해야 한다.
정부 행정서비스는 편리함만으로 평가하기 어려운 영역이다. 이용자가 어떤 서비스를 신청했고 어떤 복지정보를 조회했는지 자체가 민감한 정보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AI가 어려운 사람에게는 사람이 남아 있어야 한다
AI 행정이 확대될수록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디지털에 익숙한 사람에게만 더 편한 정부’가 되는 것이다.
젊은 세대나 스마트폰 사용에 익숙한 사람에게 AI 대화형 서비스는 기존 검색 방식보다 편리할 수 있다. 그러나 고령층이나 장애인, 한국어 사용이 익숙하지 않은 사람에게 새로운 인터페이스가 항상 더 쉬운 것은 아니다.
AI가 행정서비스의 기본창구가 되더라도 전화 상담과 방문 민원, 사람을 통한 안내를 한꺼번에 줄여서는 안 되는 이유다.
정부 역시 이번 전략에서 기술 발전의 혜택에서 소외되는 국민이 없도록 하겠다는 방향을 제시했다. 다국어 재난정보 확대도 같은 맥락이다.
진짜 디지털 전환은 사람을 창구에서 밀어내는 것이 아니라, 반복적인 업무를 기술이 맡고 사람이 필요한 곳에는 사람이 더 집중할 수 있도록 하는 방식이어야 한다.
AI가 어려운 국민에게까지 AI를 사용하라고 요구한다면 행정의 효율성은 높아질지 몰라도 접근성은 오히려 낮아질 수 있다.
정부의 AI는 ‘정답을 주는 기계’보다 책임지는 창구여야 한다
정부는 올해 말까지 47개 중앙부처에 내부 업무용 AI인 ‘온AI’를 도입하고, 내년부터 AI 국민비서를 비롯한 대국민 서비스를 본격 확대할 계획이다. 행정 내부의 문서작성과 자료검색뿐 아니라 국민이 정부와 만나는 접점 자체가 AI 중심으로 이동하기 시작하는 셈이다.
그 변화가 제대로 작동한다면 행정서비스는 지금보다 훨씬 간단해질 수 있다.
국민이 수십 개 정부 사이트를 돌아다니며 제도를 찾지 않아도 되고, 정부가 이미 가지고 있는 정보를 바탕으로 필요한 서비스를 먼저 안내받을 수도 있다. 밤늦게 세금이나 복지 문제를 물어도 기본적인 답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정부 AI는 편리하기만 해서는 충분하지 않다.
답이 틀렸을 때 어디에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지, 어떤 개인정보를 이용해 그 답을 만들었는지, AI의 안내와 실제 행정기관 판단이 다르면 무엇을 기준으로 해야 하는지까지 명확해야 한다.
민간 AI라면 사용자가 서비스를 떠나는 것으로 끝날 수 있지만, 정부 서비스를 이용하지 않고 살아가기는 어렵다.
그래서 정부 AI에는 기술 성능보다 한 단계 높은 기준이 필요하다.
잘 대답하는 AI가 아니라, 틀렸을 때 누가 책임지는지 분명한 AI여야 한다.
AI 국민비서가 성공할지는 얼마나 사람처럼 자연스럽게 말하느냐보다, 국민이 그 답을 안심하고 행정에 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 신뢰를 얻느냐에 달려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