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형 챗GPT 나올까…‘모두의 AI’가 넘어야 할 세 가지 벽
정부가 추진하는 전 국민 인공지능 서비스 ‘모두의 AI’의 윤곽이 드러났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8월 28일 SK텔레콤, 카카오, KT 컨소시엄을 사업 수행기관으로 최종 선정했다. 6개 컨소시엄이 경쟁한 이번 사업에서 정부는 AI 모델과 서비스 경쟁력, GPU 활용계획, 이용자 확보 전략, 서비스 안전성, 국내 AI 생태계 기여도를 종합 평가했다. 선정된 세 사업자는 베타 서비스를 거쳐 연내 정식 서비스를 시작할 예정이다.
‘모두의 AI’가 지향하는 것은 단순한 챗봇 하나를 더 만드는 일이 아니다. 정부는 외산 AI와 경쟁할 수 있는 범용 챗봇에 더해 복잡한 행정 절차를 대신 처리하는 공공 AI 에이전트, 스타트업과 연계한 특화 서비스를 함께 구축한다는 계획이다. 사용자가 질문하면 답만 주는 수준을 넘어 예약과 신청, 정보 탐색, 전화 대행, 공공서비스 연결까지 대신 수행하는 AI를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그래서 이번 프로젝트의 성패를 가르는 질문도 분명하다.
국산 AI가 존재하느냐가 아니라, 국민이 굳이 그것을 써야 할 이유가 있느냐다.
이미 세계 시장에는 챗GPT와 제미나이 등 강력한 글로벌 서비스가 자리 잡고 있다. 일반 이용자는 국산인지 외산인지보다 답변이 얼마나 정확한지, 사용하기 편한지, 자신이 원하는 일을 실제로 처리해주는지를 먼저 본다.
정부가 거액의 연산자원과 예산을 지원해 AI 서비스를 만들더라도 사용자가 기존 서비스를 떠나지 않는다면 ‘국민 AI’라는 이름은 구호에 그칠 수 있다.
첫 번째 벽은 결국 쓸모다.
SK텔레콤 컨소시엄은 질문 하나를 입력하면 계획을 세우고 실제 실행까지 이어지는 ‘실행형 AI’를 개발한다. 앱과 웹뿐 아니라 전화와 문자로도 이용하도록 하고, API가 연결되지 않은 매장이나 관공서에도 AI가 대신 전화를 걸어 업무를 처리하는 기능을 구현한다는 계획이다. 디지털 서비스 이용이 어려운 고령층이나 취약계층의 접근성을 높이겠다는 구상도 포함돼 있다.
카카오 컨소시엄은 사람들이 이미 매일 사용하는 카카오톡을 AI의 진입점으로 삼는다. 범용 챗봇과 AI 에이전트를 결합해 대화 안에서 예약과 신청, 결제까지 이어지도록 하고, LG유플러스와 전화 기반 AI 서비스도 개발한다. 시니어 돌봄과 세무 등 특화 영역으로 확장한다는 계획이다.
KT 컨소시엄은 통신과 IPTV뿐 아니라 다음, 다나와, 무신사, 직방 등 다양한 파트너 채널을 연결한다. 이용자가 하나의 대화창에서 검색하고 비교하고 판단한 뒤 공공서비스까지 실행할 수 있는 통합형 AI를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교육과 부동산 등 특정 분야의 서비스도 준비한다.
세 사업자의 공통점은 명확하다.
AI 모델의 성능만 앞세우기보다 사람들이 이미 사용하고 있는 생활 플랫폼과 AI를 결합한다는 것이다.
이 전략은 현실적이다.
새로운 AI 서비스가 성공하려면 사람들이 매번 별도의 앱을 내려받아 로그인하고 사용법을 익히도록 요구하기보다, 이미 익숙한 서비스 안으로 들어가는 편이 유리하다. 카카오톡에서 행정서비스를 신청하고, 전화 한 통으로 AI가 관공서 업무를 대신 알아봐주며, IPTV와 포털에서 같은 AI를 이어서 사용할 수 있다면 글로벌 AI와 다른 경쟁력을 만들 수 있다.
하지만 여기서 두 번째 벽이 등장한다.
정확성과 책임의 문제다.
공공 AI 에이전트는 일반 챗봇과 성격이 다르다.
오늘 날씨를 묻거나 문장을 고쳐달라고 요청하는 것과 복지급여 신청, 행정서류 발급, 세금이나 금융정보를 처리하는 것은 위험의 크기가 다르다.
AI가 잘못된 정보를 주는 데서 끝나지 않고 실제 신청이나 결제를 대신 수행한다면 오류가 현실의 손해로 이어질 수 있다.
예를 들어 AI가 지원 대상이 아닌 사람에게 복지혜택을 받을 수 있다고 안내하거나, 신청기한을 잘못 알려주거나, 잘못된 개인정보를 정부 시스템에 입력한다면 책임 문제가 발생한다.
누가 책임질지도 명확해야 한다.
AI 모델을 만든 회사인지, 서비스 운영사인지, 공공데이터를 제공한 정부인지, 마지막으로 실행 버튼을 누른 이용자인지를 미리 정하지 않으면 사고가 발생한 뒤 책임 공방이 이어질 수 있다.
이 때문에 ‘모두의 AI’는 답변 속도보다 오류를 어떻게 통제하는지가 더 중요하다.
정부도 사업자 평가 과정에서 서비스 품질과 안전성 확보 계획을 별도로 평가했다. 하지만 평가 단계의 계획과 실제 서비스 운영은 다르다. 이용자가 수백만명 규모로 늘어나면 예상하지 못한 질문과 예외 상황이 쏟아질 수 있다.
특히 공공서비스에서는 AI가 확신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사람에게 넘기는 장치가 필요하다.
무조건 답을 생성하는 AI보다, “이 경우에는 담당기관 확인이 필요하다”고 멈출 줄 아는 AI가 더 안전할 수 있다.
세 번째 벽은 개인정보와 데이터에 대한 신뢰다.
AI 에이전트가 실제 생활 속 업무를 대신하려면 이용자의 정보를 상당 부분 알아야 한다.
나이와 주소, 가족관계, 소득정보, 금융상태를 알아야 받을 수 있는 복지서비스를 찾아줄 수 있고, 예약과 결제를 하려면 전화번호와 결제수단이 필요하다. 부동산이나 세무 상담까지 들어가면 다루게 되는 정보는 훨씬 민감해진다.
편리함이 커질수록 AI가 보유하게 되는 개인정보도 늘어난다.
따라서 어떤 정보가 어디에 저장되는지, AI 모델 학습에 다시 사용되는지, 여러 컨소시엄과 협력업체 사이에서 어느 범위까지 공유되는지를 이용자가 명확하게 알 수 있어야 한다.
특히 ‘모두의 AI’가 공공데이터와 연결되고 정부 서비스까지 대신 수행한다면 일반 민간 챗봇보다 더 높은 수준의 보안 기준이 필요하다.
공공 AI에 대한 신뢰가 한 번 무너지면 서비스 확산도 어려워진다.
정부는 올해 선정된 세 컨소시엄에 엔비디아 B200 GPU 512장을 지원한다. 2027년부터는 전 국민 서비스 제공에 필요한 비용도 정부 예산으로 지원할 계획이다. 과기정통부는 9월 중 사업자들과 협약을 맺고 실무협의체를 구성한 뒤 베타 서비스를 시작해 연내 정식 서비스로 전환한다는 방침이다.
GPU 512장은 이번 사업의 또 다른 중요한 지점이다.
생성형 AI 경쟁에서 GPU는 핵심 인프라다. 모델을 학습하고 대규모 이용자의 질문을 처리하려면 막대한 연산자원이 필요하고, 최신 GPU 확보 능력이 곧 서비스 경쟁력과 연결되기도 한다.
정부가 직접 GPU를 지원하는 것은 국내 기업이 글로벌 빅테크와 경쟁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한다는 의미가 있다.
하지만 지원의 효과를 GPU 숫자로만 평가해서는 안 된다.
공공자원이 투입되는 만큼 어떤 성과를 만들었는지 평가할 수 있는 기준도 필요하다.
몇 명이 서비스를 이용했는지뿐 아니라 답변 정확도와 이용자 만족도, 행정처리 성공률, 장애 발생률, 개인정보 사고 여부, 국내 스타트업 참여 정도 등을 함께 공개할 필요가 있다.
특히 2027년 이후 서비스 운영비까지 정부가 지원한다면 언제까지 세금으로 운영할 것인지도 중요한 문제다.
AI 서비스는 이용자가 늘수록 서버와 GPU 사용 비용도 함께 증가한다. 전 국민이 사용하는 서비스가 되면 운영비가 상당한 규모로 커질 수 있다.
초기에는 국가가 산업 생태계를 만들기 위해 지원할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도 계속 정부 예산에 의존한다면 서비스의 지속가능성을 따져봐야 한다.
결국 민간 사업자가 자체적인 수익모델을 만들면서도 공공서비스의 접근성을 유지할 수 있는 구조가 필요하다.
또 하나 주목할 부분은 세 사업자가 한 서비스에서 경쟁한다는 점이다.
정부가 하나의 국가대표 AI를 선정한 것이 아니라 SK텔레콤과 카카오, KT라는 서로 다른 플랫폼을 동시에 지원하는 방식이다.
이는 초기 단계에서는 장점이 크다.
한 사업자가 실패하더라도 다른 서비스가 남을 수 있고, 사업자들이 서로 다른 접근 방식을 시도하면서 어떤 방식이 실제 이용자에게 효과적인지 비교할 수 있다.
SK텔레콤은 전화와 문자, 카카오는 메신저, KT는 통신과 포털·IPTV라는 서로 다른 강점을 갖고 있다.
그러나 경쟁이 제대로 작동하려면 정부가 사업자별 성과를 투명하게 비교해야 한다.
이용자를 많이 모았다는 이유만으로 좋은 AI라고 판단해서도 안 된다.
기존 플랫폼 이용자가 많은 기업은 처음부터 유리하기 때문이다.
카카오톡이나 통신서비스에 AI 기능을 넣으면 상대적으로 빠르게 이용자 수를 확보할 수 있다.
그보다 중요한 것은 AI가 국민의 시간을 실제로 얼마나 줄였는지, 복잡한 행정 절차를 얼마나 쉽게 만들었는지, 디지털 취약계층의 접근성을 얼마나 높였는지다.
‘모두의 AI’가 국내 AI 생태계를 키우는 방식도 지켜볼 부분이다.
세 컨소시엄은 자체 모델만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업스테이지, 모티프테크놀로지스, LG AI연구원 등 국내 AI 기업의 모델을 함께 활용한다. 정부 역시 평가 항목에 국내 AI 생태계 기여도를 포함했다.
이 구조가 제대로 작동한다면 대기업 플랫폼이 중소 AI 기업의 기술을 국민 서비스와 연결하는 통로가 될 수 있다.
반대로 대기업이 정부의 GPU와 예산을 지원받으면서 서비스와 데이터를 독점한다면 정책 취지가 약해질 수 있다.
따라서 스타트업이 단순한 하청업체가 아니라 자신의 AI 서비스를 성장시킬 수 있는 구조가 만들어지는지도 중요하다.
‘한국형 챗GPT’라는 표현은 눈길을 끌지만, 실제 목표는 챗GPT를 그대로 복제하는 데 있어서는 안 된다.
범용 AI 모델의 성능 경쟁만으로는 글로벌 빅테크를 따라잡기 쉽지 않다.
한국이 더 잘할 수 있는 영역은 오히려 국내 행정체계와 의료·금융·통신·생활서비스를 연결하는 데 있을 수 있다.
한국의 복지제도와 행정절차를 정확히 이해하고, 주민센터에 갈 일을 줄여주며, 고령자도 전화로 쉽게 사용할 수 있는 AI라면 글로벌 서비스와 다른 존재 이유를 만들 수 있다.
결국 모두의 AI가 성공하려면 세 가지를 증명해야 한다.
실제로 쓸모가 있는가, 중요한 업무를 맡겨도 안전한가, 자신의 데이터를 맡길 만큼 신뢰할 수 있는가.
이 세 질문에서 답을 얻지 못하면 최신 GPU와 거대한 언어모델을 갖고 있어도 국민의 일상에 자리 잡기 어렵다.
반대로 이 세 가지를 해결한다면 한국의 AI 경쟁은 모델 성능 순위와 벤치마크 숫자를 넘어 새로운 단계로 갈 수 있다.
AI 경쟁의 최종 승부는 누가 가장 거대한 모델을 만들었느냐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사람이 반복하던 불편한 일을 얼마나 줄여주고, 복잡한 사회 시스템을 얼마나 쉽게 이용하게 만드는지가 결국 기술의 가치를 결정한다.
연말 정식 서비스가 시작되면 국민이 확인하게 될 것은 ‘한국형 챗GPT가 나왔다’는 홍보 문구가 아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