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배우를 대신하는 시대…연기와 초상권의 경계는 어디까지인가

배우가 촬영장에 나오지 않아도 새로운 장면을 만들고, 이미 촬영한 얼굴과 목소리를 바탕으로 전혀 다른 대사를 말하게 하며, 심지어 배우가 세상을 떠난 뒤에도 새로운 작품 속에 다시 등장시키는 시대가 현실이 되고 있다. 생성형 인공지능과 디지털 휴먼 기술이 광고와 영화, 게임, 영상 콘텐츠 전반으로 들어오면서 배우의 얼굴과 목소리는 더 이상 한 번의 촬영으로 끝나는 요소가 아니라 반복적으로 재생산할 수 있는 데이터가 되고 있다.
이 변화가 문화산업에 던지는 핵심 질문은 단순하다. 배우의 얼굴과 목소리를 AI가 다시 만들어 새로운 연기를 할 수 있다면, 그 연기의 권리는 누구에게 있는가.
기술적으로는 이미 상당 부분 가능한 일이 됐다. 배우의 얼굴을 3차원으로 스캔하고 목소리와 표정, 움직임 데이터를 학습시키면 실제 배우가 촬영하지 않은 장면에서도 유사한 모습을 구현할 수 있다. 광고에서는 한 번 촬영한 모델의 모습을 여러 버전으로 변형할 수 있고, 영상 콘텐츠에서는 배우의 입 모양이나 대사를 다른 언어에 맞게 조정하는 방식도 가능하다.
문제는 기술이 가능하다는 사실과 그것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다는 사실이 전혀 같지 않다는 데 있다.
배우의 얼굴은 단순한 이미지가 아니다. 목소리도 단순한 음성 파일이 아니다. 수년 동안 쌓인 인지도와 연기 스타일, 대중이 특정 배우에게 갖는 이미지가 결합돼 하나의 경제적·문화적 가치가 만들어진다. AI가 이를 복제해 새로운 장면이나 광고를 만든다면 기존의 초상권이나 퍼블리시티권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문제가 생긴다.
예를 들어 배우가 한 광고를 촬영하면서 자신의 얼굴 데이터를 제공했다고 가정해보자. 회사가 그 데이터를 바탕으로 다음 광고에서도 배우가 실제 촬영하지 않은 새로운 장면을 만들어도 되는지, 계약이 끝난 뒤에도 데이터를 보유할 수 있는지, 다른 상품 광고에 활용할 수 있는지에 따라 권리 관계는 완전히 달라진다.
그래서 최근 해외에서는 AI 시대의 배우 권리를 ‘동의·통제·보상’이라는 세 가지 원칙으로 정리하는 움직임이 뚜렷하다.
미국 배우·방송인노조 SAG-AFTRA는 AI 관련 보호의 핵심 원칙으로 명확한 동의와 공정한 보상, 자신의 연기에 대한 통제권을 제시하고 있다. 특히 2025년 광고 계약에서는 배우의 얼굴이나 목소리, 연기를 이용해 새로운 연기를 생성할 수 있는 디지털 복제본을 별도의 대상으로 정의하고, 이를 만들거나 사용할 때 배우의 사전 동의를 받도록 했다. 사용 목적 역시 구체적으로 설명해야 하고, 처음 합의한 범위를 넘어서는 이용에는 다시 동의를 받아야 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단순한 ‘사용 동의서 한 장’이 충분하지 않다는 점이다.
AI 시대에는 동의의 범위가 훨씬 세밀해져야 한다.
한 작품에서 자신의 얼굴을 사용하는 데 동의했다고 해서 그것이 다른 작품이나 광고, 게임으로 자동 확대되는 것은 아니라는 개념이다. 배우가 허용한 역할과 상황을 넘어 전혀 다른 행동이나 대사를 생성한다면 추가 동의가 필요하다는 방향으로 계약 기준이 발전하고 있다.
SAG-AFTRA의 2025년 광고 계약은 디지털 복제본을 이용해 새로운 광고 연기를 만들 경우 해당 배우에게 별도의 보상을 지급하도록 하고 있다. 또 계약 기간 이후 디지털 복제본을 계속 보유하려면 별도의 동의를 받아야 하고, 동의를 얻지 못한 경우 일정 기간 안에 복제 데이터를 삭제하도록 하는 조항도 두고 있다.
이는 앞으로 문화산업에서 중요한 변화가 될 가능성이 크다.
지금까지 배우의 노동은 대체로 촬영이라는 시간 단위로 계산됐다. 배우가 현장에 나와 몇 시간 또는 며칠 동안 연기하고 그 결과물이 영화나 광고에 사용되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디지털 복제본이 만들어지면 노동의 구조가 달라진다.
배우는 하루 촬영했지만 그날 만들어진 얼굴과 목소리 데이터가 몇 년 동안 새로운 콘텐츠를 생산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보상을 촬영 당시 한 번 지급하는 것으로 끝낼 것인지, 이후 생성되는 새로운 연기마다 다시 지급할 것인지가 새로운 쟁점이 된다.
이 문제는 유명 배우에게만 해당하지 않는다.
오히려 단역 배우와 보조출연자에게 더 민감할 수 있다.
대형 제작사가 촬영 과정에서 수많은 배우의 모습을 스캔해 데이터베이스로 구축한 뒤, 이후 군중 장면이나 배경 인물을 AI로 생성한다면 실제 배우를 다시 고용할 필요가 줄어들 수 있기 때문이다.
SAG-AFTRA가 디지털 복제본 규정을 강화한 배경에도 이런 우려가 있다. 기존 계약에서는 보조출연자의 모습을 스캔한 뒤 어떤 방식으로 재사용할 수 있는지가 중요한 쟁점이 됐고, 현재는 다른 프로젝트나 다른 방식으로 사용할 경우 다시 동의를 받고 보상을 지급하도록 하는 기준이 마련돼 있다.
최근에는 한 단계 더 나아가 실제 특정 배우를 복제한 것이 아니라, 완전히 AI로 만들어낸 ‘합성 배우’를 어떻게 다룰 것인지도 논의되고 있다.
SAG-AFTRA의 2026년 TV·극장 계약은 특정 인물을 닮은 디지털 복제본과, 실제 특정인을 그대로 재현하지 않은 합성 캐릭터를 구분하고 있다. 제작사가 합성 배우를 사용할 경우 노조에 알리고 협의하도록 했으며, 인간 배우보다 합성 배우를 선택하려면 제작 측이 추가적인 가치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는 원칙도 포함됐다.
이 규정이 보여주는 것은 문화산업의 논쟁이 이미 ‘AI를 사용할 것인가’라는 단계에서 ‘AI를 어떤 조건으로 사용할 것인가’라는 단계로 넘어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AI 배우 자체를 금지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배경 인물이 수천 명 필요한 장면이나 위험한 액션, 배우가 실제로 하기 어려운 연령 변화, 외국어 더빙처럼 디지털 기술이 제작의 효율과 표현 가능성을 크게 높이는 영역이 분명 존재하기 때문이다.
배우의 실제 목소리를 다른 언어로 변환하면서 입 모양까지 자연스럽게 맞추는 기술은 국제 콘텐츠 유통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 한 작품을 여러 국가에 배급할 때 언어의 장벽을 줄이고 배우의 연기 느낌을 보다 많이 유지할 가능성이 있다.
문제는 편리함이 권리를 자동으로 약화시켜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배우가 자신의 얼굴과 목소리를 제공했다는 이유만으로 제작사가 이를 무기한 사용할 수 있다면 권력관계는 크게 기울어진다.
특히 신인 배우나 단역 배우는 계약 협상력이 상대적으로 약하다. 일자리를 얻기 위해 광범위한 AI 활용 조항에 동의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생긴다면 형식적으로는 동의가 있더라도 실제로 충분한 선택권이 있었는지를 따져야 한다.
이 때문에 AI 시대의 계약에서는 ‘포괄적 동의’보다 사용 목적과 기간, 매체, 변형 범위를 구체적으로 적는 것이 중요해지고 있다.
배우의 얼굴을 드라마 제작에 사용하는 것과 특정 정치 광고에 사용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다.
일반 상품 광고와 도박·성인물처럼 배우가 자신의 이미지와 연결되기를 원하지 않을 수 있는 영역 역시 구분돼야 한다. 생성형 AI는 원본 촬영에서 존재하지 않았던 행동과 상황까지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에 사용 범위를 구체적으로 정하지 않으면 배우가 전혀 의도하지 않은 모습으로 등장할 가능성이 있다.
사망한 배우의 디지털 복제는 더 복잡한 문제를 제기한다.
2026년 미국에서는 고(故) 발 킬머의 디지털 복제 활용을 놓고 권리 문제가 다시 주목받았다. SAG-AFTRA는 영화에서 사망한 배우의 디지털 복제본을 사용하려면 관련 계약과 주법에 따라 유족이나 권리관리자의 동의가 필요하다고 밝히면서, 해당 사례에서는 가족의 동의가 이뤄졌다고 설명했다.
미국 캘리포니아도 이미 배우와 공연자의 디지털 초상을 보호하기 위한 법을 마련했다. 살아 있는 배우뿐 아니라 사망한 배우의 디지털 재현에도 동의 기준을 강화하는 방향이다.
이런 사례는 앞으로 한국 문화산업에서도 피하기 어려운 질문을 던진다.
한국 배우의 해외 인지도가 높아지고 콘텐츠의 글로벌 유통이 확대될수록 얼굴과 목소리의 경제적 가치는 커지고 있다. 배우가 출연한 드라마가 수십 개 국가에서 서비스되고, 광고와 게임, 가상공간으로 IP가 확대되는 상황에서는 디지털 복제본의 활용 범위도 훨씬 넓어진다.
배우의 목소리를 AI로 변환해 해외 광고를 만들거나, 원래 작품에 없던 장면을 추가하거나, 캐릭터를 게임과 가상세계에서 계속 활용하는 것도 기술적으로는 점점 쉬워질 것이다.
따라서 국내에서도 초상권만으로 접근하기보다 배우의 연기 데이터를 독립적인 권리 대상으로 볼 것인지 논의를 시작할 필요가 있다.
얼굴과 목소리의 사용 허락뿐 아니라 그것을 학습해 새로운 연기를 생성하는 권리까지 계약서에 명시하는 방식이 필요할 수 있다.
또 제작사가 디지털 복제 데이터를 얼마나 오래 보관할 수 있는지, 다른 회사에 양도할 수 있는지, 해킹이나 유출이 발생했을 때 누가 책임지는지도 중요한 문제다.
배우의 디지털 복제본이 유출된다면 일반적인 개인정보 유출보다 피해가 클 수 있다.
한 번 확보된 얼굴과 음성 데이터로 수많은 가짜 영상과 음성을 만들 수 있고, 배우가 실제로 하지 않은 발언이나 행동을 했던 것처럼 보이게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AI 시대에는 초상권 보호가 곧 데이터 보안의 문제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논쟁을 ‘AI 대 인간 배우’라는 단순한 대결 구도로 볼 필요도 없다.
영화산업은 언제나 기술과 함께 변화해왔다.
컴퓨터그래픽이 등장했을 때도 실제 세트와 배우의 역할이 줄어들 것이라는 우려가 있었고, 모션캡처 기술 역시 배우의 연기를 데이터로 변환했다. 그럼에도 새로운 기술은 배우의 역할을 완전히 없애기보다는 연기의 범위를 확장하는 방식으로 발전해왔다.
AI 역시 같은 방향으로 갈 가능성이 있다.
위험한 장면을 대신하거나 배우의 연령을 자연스럽게 변화시키고, 해외 언어 버전을 제작하거나 촬영 일정의 한계를 보완하는 도구로 사용될 수 있다.
문제는 누가 그 기술을 통제하느냐이다.
배우가 자신의 디지털 복제본이 어디에서 어떻게 사용되는지를 알고 결정할 수 있으며, 새로운 이용에 대해 합당한 보상을 받는다면 AI는 새로운 창작 도구가 될 수 있다.
반대로 제작사가 한 번 확보한 데이터를 무기한 사용하고 실제 배우를 계속 대체한다면 기술은 창작자의 권리를 약화시키는 수단이 될 수 있다.
결국 AI 배우 시대에 필요한 것은 기술을 막는 규제가 아니라 사용의 경계를 명확하게 만드는 규칙이다.
누구의 얼굴인지, 누구의 목소리인지, 어떤 연기를 학습했는지, 배우가 실제로 동의했는지, 새로운 콘텐츠가 만들어질 때 추가 보상이 있는지를 투명하게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
관객의 권리도 무시할 수 없다.
실제 배우가 연기한 장면인지 AI로 생성한 것인지에 따라 작품을 받아들이는 방식은 달라질 수 있다. 광고에서도 실제 모델이 제품을 사용하거나 말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AI가 만들어낸 장면이라면 소비자에게 이를 어느 정도 알려야 하는지 논의가 필요하다.
뉴욕주는 2025년 AI로 만들어진 사람이 광고에 등장하는 경우 이를 표시하도록 하는 법을 마련했고, 2026년부터 관련 제도가 시행되고 있다.
AI 기술이 발전할수록 역설적으로 ‘진짜 인간의 연기’가 더 중요한 가치가 될 수도 있다.
관객이 배우를 좋아하는 이유는 얼굴이 아름답거나 목소리가 익숙해서만은 아니다. 어떤 상황을 해석하고 감정을 만들어내는 과정에는 배우 개인의 경험과 판단이 들어간다.
AI는 그 결과를 모방할 수 있지만, 그 연기의 출발점이 되는 인간의 경험까지 동일하게 복제할 수 있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그래서 앞으로 문화산업에서 가장 중요한 질문은 AI가 인간 배우를 완전히 대신할 수 있느냐가 아닐 가능성이 크다.
오히려 인간의 연기를 데이터로 바꾸고 다시 사용할 때 그 사람의 선택권과 경제적 권리를 어디까지 인정할 것인가가 더 현실적인 문제다.
배우의 얼굴과 목소리가 영구적으로 복제 가능한 시대가 이미 시작됐다.
이제 계약서 한 장에 적힌 ‘초상 사용 동의’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을 수 있다.
누가 데이터를 만들고, 누가 보관하며, 어디까지 변형하고, 언제 다시 동의를 받아야 하는지를 정하는 일이 새로운 문화산업의 기본 규칙이 되고 있다.
AI 배우 시대의 경계는 기술이 정하지 않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