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빚 2천조원 턱밑…은행 막히자 비은행 주택대출·‘빚투’가 불렸다

올해 1분기 가계 빚이 1993조원까지 불어나며 2천조원 선에 바짝 다가섰다. 은행권 대출은 줄었지만 상호저축은행과 신용협동조합 등 비은행권 주택 관련 대출이 크게 늘었고, 증시 활황 속에 빚을 내 주식에 투자하는 이른바 ‘빚투’ 수요까지 가세하면서 가계부채 증가세가 다시 확대됐다.
한국은행이 19일 발표한 1분기 가계신용 잠정치에 따르면, 올해 3월 말 기준 가계신용 잔액은 1993조1천억원으로 지난해 말보다 14조원 증가했다. 1년 전과 비교하면 68조1천억원 늘어난 규모다. 가계신용은 가계가 금융기관에서 빌린 대출뿐 아니라 신용카드 결제대금 등 판매신용까지 포함한 포괄적 가계 빚 지표다.
증가세를 주도한 것은 가계대출이었다. 1분기 가계대출은 12조9천억원 늘어 직전 분기 증가 폭인 11조3천억원보다 확대됐다. 특히 주택 관련 대출이 8조1천억원 늘며 전체 증가분의 상당 부분을 차지했다. 주택 관련 대출에는 개별 주택담보대출뿐 아니라 전세자금대출과 집단대출 등이 포함된다.
눈에 띄는 대목은 대출 증가의 중심이 은행권에서 비은행권으로 이동했다는 점이다. 예금은행 가계대출은 지난해 4분기 6조원 증가에서 올해 1분기 2천억원 감소로 돌아섰다. 은행권의 주택 관련 대출 증가세가 둔화하고 기타대출이 줄어든 결과다. 반면 비은행예금취급기관의 가계대출은 같은 기간 4조1천억원 증가에서 8조2천억원 증가로 두 배가량 커졌다.
이는 은행권 대출 문턱이 높아진 상황에서 일부 차주가 상호저축은행, 신협 등 비은행권으로 이동한 결과로 풀이된다. 전세 물량 부족과 월세화 흐름 속에서 전세 수요 일부가 중저가 매매 수요로 바뀐 점도 비은행권 주택대출 증가에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대출 규제가 강화되면 은행 대출은 잡히더라도 상대적으로 금리가 높은 비은행권으로 수요가 옮겨가는 ‘풍선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는 이유다.
기타대출 증가도 가계 빚 확대에 힘을 보탰다. 올해 1분기 기타대출은 4조8천억원 늘어 지난해 4분기 증가 폭 4조1천억원보다 커졌다. 한국은행은 증권사 신용공여 증가가 주요 배경이라고 설명했다. 증시가 활기를 띠자 투자자들이 증권사에서 돈을 빌려 주식을 사는 신용거래를 늘린 것으로 해석된다. 최근 국내 경제가 반도체 경기 호조와 소비 회복세를 바탕으로 성장 흐름을 이어가고 있다는 한국은행의 경기 진단도 금융시장 위험선호 심리 확대와 맞물려 있다.
기타금융기관 대출 증가 폭도 확대됐다. 보험회사와 여신전문회사, 공적 금융기관 등을 포함한 기타금융기관의 가계대출은 지난해 4분기 1조2천억원 증가에서 올해 1분기 5조원 증가로 커졌다. 주택 관련 대출은 감소세를 이어갔지만 감소 폭이 줄었고, 기타대출 증가 폭이 확대되면서 전체 가계대출을 밀어 올렸다.
판매신용도 증가했다. 신용카드 이용 규모가 커지면서 판매신용은 전 분기보다 1조1천억원 늘었다. 다만 증가 폭은 지난해 4분기 3조원보다 줄었다. 개인 신용카드 이용 규모는 지난해 말 204조3천억원에서 올해 3월 말 204조7천억원으로 소폭 증가했다.
가계부채가 다시 늘어나는 배경에는 경기 회복 기대와 자산시장 반등, 주거비 부담이 동시에 자리 잡고 있다. 한국은행은 지난 4월 발표한 1분기 실질 국내총생산 속보치에서 한국 경제가 전기 대비 1.7%, 전년 동기 대비 3.6% 성장했다고 밝혔다. 경기 회복세는 소득과 투자 심리를 개선할 수 있지만, 동시에 주택·주식 등 자산시장으로 차입 수요를 자극할 수 있다.
문제는 가계 빚의 총량뿐 아니라 질이다. 은행보다 금리가 높은 비은행권 대출이 늘고, 주식 투자 목적의 신용공여가 확대되면 금리 변동이나 자산가격 조정에 취약한 차주가 늘어날 수 있다. 특히 주택 관련 대출과 빚투가 동시에 증가하는 흐름은 부동산과 증시가 흔들릴 경우 가계 상환 부담이 빠르게 커질 수 있다는 점에서 금융당국의 관리 대상이 될 가능성이 크다.
한국은행은 금융당국의 관리 강화 기조가 이어지고 있어 비은행권 주택 관련 대출 증가세가 앞으로 크게 확대되지는 않을 것으로 봤다. 다만 최근 주택 매매가 다시 늘고 있는 만큼 관련 대출 흐름을 계속 주시해야 한다고 밝혔다. 결국 관건은 가계부채가 2천조원 선을 넘느냐가 아니라, 증가한 빚이 어느 금융권에서, 어떤 차주에게, 어떤 목적으로 쌓이고 있느냐다.
이번 1분기 가계신용 통계는 은행권 대출 규제만으로는 가계부채 흐름을 충분히 통제하기 어렵다는 점을 보여준다. 주택시장 회복 기대와 증시 활황이 맞물리는 국면에서 비은행 대출과 신용거래가 새로운 위험 축으로 떠오른 만큼, 가계부채 관리는 총량 규제와 함께 취약 차주 보호, 비은행권 건전성 점검, 자산시장 과열 차단을 동시에 요구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