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사람이 죽고 나서야 멈추는 공장, 이게 정상일까
지난 8월 28일 충남 천안의 한 제조업 공장에서 불이 나 노동자 3명이 숨지고 부상자가 발생했다. 고용노동부는 곧바로 중앙산업재해수습본부와 지역산업재해수습본부를 꾸리고 해당 작업에 작업중지 명령을 내렸다. 전담수사팀도 구성됐다. 정부는 사고의 구조적 원인을 철저히 규명하고 엄정하게 감독·수사하겠다고 밝혔다. 바로 다음 날에는 코레일 작업자가 차량 연결·분리 작업 도중 열차에 깔려 숨졌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이런 장면은 낯설지 않다. 노동자가 숨지면 작업은 멈추고, 정부는 특별감독이나 수사를 시작하며, 기업은 재발방지를 약속한다. 정치권에서도 현장점검과 대책 마련을 주문한다. 그러다 시간이 지나면 관심은 줄어들고, 어느 날 다른 공장과 공사장에서 비슷한 사고가 다시 발생한다.
물론 변화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올해 상반기 재해조사 대상 사고사망자는 253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4명, 11.8% 감소했다. 관련 통계를 집계하기 시작한 이후 상반기 기준 가장 낮은 수준이다. 숫자로만 보면 분명 개선이다. 그러나 통계가 좋아졌다는 사실과 현장에서 사람이 계속 숨진다는 사실은 동시에 존재한다.
그래서 이제는 단순히 “산재가 줄었는가”만 물을 것이 아니라 “죽을 뻔한 위험을 사고 전에 얼마나 멈췄는가”를 물어야 한다.
정부도 사고를 줄이기 위해 여러 제도를 강화하고 있다. 8월부터는 일정 규모 이상 기업이 안전보건 현황과 관계수급인 근로자의 사망사고 현황 등을 공개하는 안전보건공시제가 시행됐다. 9월에는 지게차와 크레인, 컨베이어를 사용하는 제조업 사업장 1000곳을 대상으로 집중점검도 예정돼 있다. 정부가 위험을 사전에 관리하는 방향으로 움직이는 것은 필요한 변화다.
하지만 사고가 날 때마다 반복되는 정부 대응을 보면 여전히 우리 산업안전 시스템이 ‘사후 대응’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는 인상을 지우기 어렵다.
사고가 나기 전에도 위험신호는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기계 주변의 안전장치가 불편하다는 이유로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을 수도 있고, 작업자가 혼자 위험한 공정을 맡았을 수도 있다. 생산속도를 맞추기 위해 점검시간이 줄어들었을 수도 있고, 하청 노동자가 위험을 알고도 작업을 거부하기 어려웠을 수도 있다.
산업재해는 흔히 ‘순간적인 실수’로 설명되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위험이 반복적으로 축적된 끝에 사고로 터지는 경우가 적지 않다.
최근에도 한 자동차부품 공장에서 청년 하청노동자가 끼임 사고로 숨진 뒤 한 달 사이 같은 기업의 다른 공장에서 추가 끼임 사고가 발생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사고 하나를 처리했다고 위험한 작업방식 자체가 자동으로 바뀌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 지점에서 산업안전의 가장 중요한 질문이 나온다.
현장의 노동자가 “이 작업은 위험하다”고 느꼈을 때 실제로 멈출 수 있는가.
법과 매뉴얼에는 작업중지권이 있어도 현실에서는 사용하기 어려울 수 있다. 납기가 밀리고, 생산라인이 멈추고, 협력업체가 원청 눈치를 보는 상황에서 작업자 한 명이 “위험하니 하지 않겠다”고 말하는 것은 생각보다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그래서 안전은 개인의 용기에 기대서는 안 된다.
위험을 발견한 사람이 작업을 멈춰도 불이익을 받지 않고, 관리자가 생산량보다 안전을 우선해도 책임을 추궁받지 않으며, 하청업체가 위험한 작업조건을 원청에 요구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런 구조가 만들어져야 작업중지권이 종이에 적힌 권리가 아니라 실제 현장의 권리가 된다.
중대재해가 발생할 때마다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와 기업 경영을 지나치게 위축시켜서는 안 된다는 반론이 맞선다. 이 논쟁은 필요하다. 책임 있는 경영과 과도한 형사책임의 경계를 어디에 둘 것인지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다만 처벌 논쟁이 너무 커지면 더 중요한 질문이 뒤로 밀릴 수 있다.
사람이 죽기 전에 위험을 발견하고 멈추게 만드는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가.
사고가 난 뒤 책임자를 찾아 처벌하는 것은 필요하다. 그러나 아무리 강한 처벌도 이미 잃은 생명을 되돌릴 수는 없다. 산업안전에서 가장 좋은 결과는 유죄판결을 많이 받아내는 것이 아니라 애초에 법정으로 갈 사고가 생기지 않는 것이다.
올해 상반기 산재 사망자가 줄었다는 사실은 반가운 신호다. 동시에 최근 며칠 사이 다시 이어진 사망사고는 숫자가 좋아졌다고 경계를 풀 수 없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정부는 9월 제조업 사업장 1000곳을 집중점검한다고 한다. 그 점검이 또 하나의 캠페인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 현장에서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끼임과 떨어짐, 맞음 사고가 왜 같은 유형으로 계속 나타나는지, 안전설비가 있어도 왜 작동하지 않는지, 노동자가 위험을 알고도 왜 작업을 계속하는지까지 들여다봐야 한다.
사고가 발생한 뒤 공장을 멈추는 것은 어렵지 않다.
진짜 어려운 일은 아무 사고도 일어나지 않은 평범한 날, 생산이 한창 돌아가고 있을 때 누군가 위험하다고 말하면 그 말 하나만으로 기계를 멈추는 것이다.
산업재해를 줄이는 사회는 사고 뒤에 더 강하게 움직이는 사회가 아니다. 사람이 죽기 전에 멈출 수 있는 사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