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경찰 문서까지 가짜였다…2억원대 명품 구매대행 사기의 전말

형사·범죄

명품을 대신 사주겠다며 돈을 받은 업체가 실제로는 물건을 제대로 구매할 능력이 없었고, 피해자들의 항의가 이어지자 이번에는 해외 경찰 명의의 문서까지 만들어냈다는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더 놀라운 대목은 위조된 것으로 조사된 문서가 단순히 피해자들을 달래는 데 사용된 것이 아니라 실제 경찰 수사와 법원 절차에도 제출됐다는 점이다. 경찰은 한때 이 자료를 근거로 사건을 불송치했지만, 이후 검찰이 프랑스 당국에 국제형사사법공조를 요청해 진위를 확인하면서 사건의 흐름이 뒤집혔다.

서울동부지검 형사4부는 지난 8월 28일 40대 여성 A씨와 30대 여성 B씨를 사기와 사문서위조, 위조사문서행사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검찰에 따르면 두 사람은 2022년 10월부터 2023년 7월까지 명품 구매대행업체를 운영하면서 구매대행이나 예치금 반환 의사와 능력이 충분하지 않은 상태에서 피해자 7명으로부터 회원 가입비와 예치금 등의 명목으로 총 2억1691만원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아직 법원의 유죄 판단이 나온 것은 아니다. 다만 검찰이 재판에 넘기기까지의 과정을 따라가 보면, 온라인 구매대행 사기가 어떻게 신뢰를 얻고 유지하며, 문제가 생긴 뒤 어떤 방식으로 책임을 피하려 하는지 보여주는 특징적인 사건이다.


명품을 사주겠다며 받은 돈, 실제로는 운영비로


검찰 수사 결과에 따르면 A씨와 B씨는 회원들로부터 받은 예치금을 정상적인 명품 구매에만 사용하지 않고 법인 운영비와 직원 급여 등에 활용한 것으로 조사됐다. 다른 회원에게 받은 돈으로 기존 비용을 메우는 이른바 ‘돌려막기’ 방식이 이어졌다는 것이 검찰의 판단이다.

구매대행 사업에서는 소비자가 먼저 돈을 보내고 업체가 이후 해외에서 물품을 확보하는 경우가 많다. 소비자는 실제로 주문이 들어갔는지, 해외에서 물품이 확보됐는지 즉시 확인하기 어렵기 때문에 사업자의 신뢰가 거래의 핵심이 된다.

특히 명품처럼 한 건의 거래금액이 큰 상품은 피해 규모도 빠르게 커질 수 있다. 업체가 정상적인 자금흐름을 유지하는 동안에는 문제가 잘 드러나지 않지만, 신규 입금이 줄거나 기존 주문의 환불 요구가 한꺼번에 몰리면 자금 부족이 겉으로 드러날 수 있다.

검찰은 업체의 직원 급여와 4대 보험 체납 자료, 계좌 흐름 등을 분석해 업체의 재정상태를 다시 들여다봤고, 회원들의 예치금이 실제 어떻게 사용됐는지도 확인했다.


“프랑스 창고가 털렸다”…설명의 근거가 된 문서


회원들의 항의가 이어진 것은 2023년 9월 무렵이었다.

검찰에 따르면 피고인들은 이에 앞서 같은 해 8월 14일 프랑스에서 물품을 보관하던 창고가 도난당했다는 내용의 프랑스 경찰관 명의 ‘범죄사실 보고서’를 제시했다. 업체가 물품을 전달하지 못하고 재정적으로 어려워진 이유가 사업 실패나 자금 유용이 아니라 해외에서 벌어진 예상치 못한 절도사건 때문이라는 설명을 뒷받침하는 자료였다.

해외 경찰기관의 문서처럼 보이는 자료는 피해자 입장에서 쉽게 의심하기 어렵다. 언어가 다르고 해당 국가의 문서 형식을 알기 어려운 데다 국내에서 직접 진위를 확인하기도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검찰 조사에서는 이 문서가 실제 프랑스 경찰이 작성한 것이 아닌 것으로 파악됐다.

뉴시스 보도에 따르면 해당 문서는 과거 업체와 함께 일했던 다른 직원이 프랑스의 개인 주거지에서 실제 도난사건을 신고했을 당시 작성된 경찰 서류를 바탕으로 날짜와 사건 내용을 바꿔 만든 것으로 조사됐다. 실제 존재했던 외국 경찰 문서의 외형을 활용했다는 점에서 단순히 처음부터 가짜 양식을 만든 것보다 진위를 가리기가 더 어려웠을 가능성이 있다.


경찰은 불송치했다…사건을 뒤집은 건 프랑스의 한마디


이 사건에서 가장 눈여겨볼 부분은 위조 혐의를 받는 문서가 실제 형사절차에 영향을 미쳤다는 점이다.

2023년 9월 고소장을 접수한 송파경찰서는 수사를 거쳐 2024년 3월 15일 사건을 불송치했다. 당시에는 프랑스 창고에서 실제 도난사고가 발생했고 이 때문에 업체가 명품을 잃고 파산했다는 취지의 해명이 판단에 반영된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고소인이 이의를 제기하면서 사건은 검찰로 넘어갔다.

검찰은 제출된 프랑스 경찰 문서 자체의 진위를 다시 확인하기로 하고 2024년 11월 프랑스 측에 국제형사사법공조를 요청했다. 이후 2026년 1월 프랑스 측으로부터 해당 내용의 신고가 접수된 사실이 없다는 취지의 회신을 받았다.

사건의 방향이 달라진 순간이었다.

검찰은 이후 피해자들을 전면 재조사하고 계좌와 업체 재정자료를 분석해 회원 예치금 사용처와 임금체불, 업체 파산 과정을 추가로 확인했다. 그 결과 두 사람에게 사기뿐 아니라 사문서위조와 위조사문서행사 혐의까지 적용해 재판에 넘겼다.


해외 문서 한 장을 확인하는 데 왜 국제공조가 필요했을까


국내에서 발급된 공문서라면 발급기관에 사실조회 등을 통해 진위를 비교적 빠르게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외국 수사기관이나 행정기관 명의의 문서는 사정이 다르다.

국내 수사기관이 외국 경찰기관의 내부 기록에 임의로 접근할 수 없고, 해당 국가의 법과 절차에 따라 공식적인 협조를 요청해야 하기 때문이다.

국제형사사법공조는 국가 간 형사사건 수사와 재판을 위해 증거 확보, 사실조회, 서류 송달 등에 서로 협조하는 절차다. 이번 사건에서는 프랑스 경찰기관에 실제 신고나 사건 기록이 존재하는지를 확인하는 데 이 절차가 활용됐다.

온라인 거래가 국경을 넘을수록 이런 확인의 중요성은 더 커진다.

해외 업체의 계약서, 현지 경찰 신고서, 물류회사 확인서, 세관자료 등이 분쟁 과정에서 제시될 수 있지만 국내 소비자는 물론 수사기관도 그 자리에서 진위를 확인하기 어렵다. 문서의 외형이 그럴듯하다는 이유만으로 내용을 신뢰한다면 수사나 민사 판단 자체가 잘못된 방향으로 갈 위험이 있다.

이번 사건은 해외자료가 제출됐다는 사실 자체보다, 결국 그 자료를 원 발급기관까지 따라가 확인해야 실체가 드러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사기 혐의에 문서위조 혐의까지 더해진 이유


검찰이 두 사람에게 적용한 혐의는 사기만이 아니다.

검찰은 프랑스 경찰관 명의의 범죄사실 보고서를 허위로 만들어낸 행위에 사문서위조 혐의를, 이를 경찰서와 법원 등에 실제 제출한 행위에는 위조사문서행사 혐의를 적용했다.

법적 판단은 향후 재판에서 확정되지만, 이 두 범죄는 구분된다.

문서를 허위로 만들어낸 행위와 이미 만들어진 위조 문서를 진짜인 것처럼 사용한 행위가 서로 다른 법적 평가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의미다.

특히 수사기관이나 법원에 허위 자료를 제출하는 행위는 단순히 거래 상대방을 속이는 것을 넘어 형사사법 절차의 판단을 왜곡할 수 있다는 점에서 문제가 커진다. 실제로 이번 사건에서는 해당 문서가 초기 경찰의 불송치 판단에 영향을 준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경찰의 초기 판단이 해당 문서 하나만으로 이뤄졌다고 단정해서는 안 된다. 당시 수사기록 전체가 공개된 것은 아니며, 최종적으로 각 피고인의 범죄 성립 여부 역시 법원이 증거를 토대로 판단하게 된다.


구매대행 사기에서 소비자가 먼저 확인해야 할 것


이번 사건은 해외 구매대행 거래의 구조적인 취약점도 보여준다.

고가 제품일수록 소비자는 가격 차이나 희소성을 이유로 해외 구매대행을 이용하지만, 돈을 먼저 보낸 뒤 물건을 받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릴 수 있다. 그 과정에서 사업자가 실제 주문을 넣었는지, 보관 중인 물품이 존재하는지, 소비자 예치금이 다른 용도로 사용되고 있는지 외부에서는 확인하기 어렵다.

따라서 업체가 지나치게 높은 선입금이나 장기간의 예치금을 요구하거나 배송지연이 반복되면서 설명만 계속 바뀐다면 주의가 필요하다. 해외 도난이나 통관 문제 같은 이유를 제시할 경우에도 단순히 문서 이미지 한 장을 보여주는 것만으로 신뢰하기보다 주문번호와 현지 거래내역, 보험처리 여부 등 여러 자료를 함께 확인하는 것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신규 회원의 돈으로 기존 회원 환불을 계속 처리해야 할 정도로 자금흐름이 악화된 사업은 외부에서 정상 업체처럼 보여도 어느 순간 지급 능력을 잃을 수 있다.

이번 사건에서 검찰이 직원 급여와 4대 보험 체납까지 다시 들여다본 것도 업체의 설명보다 실제 재정상태가 어떠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한 번의 불송치가 사건의 끝은 아니었다


이번 사건은 수사 절차 측면에서도 의미가 있다.

경찰의 불송치 결정으로 사건이 한 차례 끝나는 듯했지만 고소인의 이의제기를 거쳐 검찰이 다시 기록을 검토했고, 이후 해외 공조와 계좌분석, 피해자 재조사가 이어지면서 전혀 다른 결론에 도달했다.

물론 모든 불송치 사건이 잘못됐다는 뜻도 아니고, 검찰이 다시 수사한다고 언제나 혐의가 드러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이번 사건이 보여주는 것은 형사절차에서 증거 하나의 신뢰성이 얼마나 중요한가라는 점이다.

외국 경찰기관 명의와 도장이 붙어 있다고 해서 문서가 자동으로 사실이 되는 것은 아니다. 피의자가 제출했다는 이유로 무조건 의심해서도 안 되지만, 사건의 결론을 좌우할 정도로 중요한 자료라면 발급경위와 원본, 실제 사건 존재 여부를 확인하는 절차가 필요하다.

피해자 7명에게서 2억원이 넘는 돈이 오간 이번 사건은 결국 프랑스에 실제 신고가 있었는지를 묻는 단순한 확인에서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위조된 문서가 사실처럼 받아들여지는 순간 수사도 잘못된 방향으로 갈 수 있지만, 그 문서의 출처를 끝까지 추적하면 사건의 판단 역시 다시 달라질 수 있다.

이번 재판에서 피고인들의 혐의가 어떻게 판단될지는 법원의 몫이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사기범죄가 점점 정교해질수록 수사에서 중요한 것은 그럴듯한 증거의 양이 아니라, 그 증거가 실제 어디에서 만들어졌는지를 끝까지 확인하는 일​이라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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