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릿값 뛰자 전국 교량 ‘이름표 절도’ … 황당 범행 뒤엔 원자재 급등·허술한 유통망

구릿값 상승을 노리고 전국 교량의 교명판과 설명판을 떼어 고물상에 넘긴 일당이 붙잡히면서, 공공시설 동판 절도가 전국적으로 번지고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얼핏 황당한 사건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원자재 가격 급등과 느슨한 장물 유통 구조, 공공시설 관리 사각지대가 겹치며 반복되는 범죄라는 점에서 가볍게 볼 일이 아니라는 지적이 나온다. 삼척경찰서는 15일 전국 교량을 돌며 동판 416개를 훔친 30대 2명을 특수절도 혐의로 구속했다고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이들은 지난 3월 21일부터 4월 7일까지 약 보름 남짓한 기간 동안 전국 22개 시·군, 120여 개 교량을 돌며 교명판과 교량 설명판 416개를 떼어낸 혐의를 받고 있다. 훔친 동판의 총무게는 1.9t가량으로, 이를 고물상에 팔아 약 2000만 원의 범죄수익을 챙긴 것으로 조사됐다. 경찰은 CCTV 분석과 동선 추적을 통해 경기 안산과 인천에서 이들을 긴급체포했고, 피해품 전량도 확보했다고 밝혔다. 매입한 고물상 업주 등에 대해서도 장물취득 혐의로 수사를 확대할 방침이다.
이번 사건이 특히 주목되는 이유는 단발성 범행이 아니라는 점이다. 지난달 전남 장흥에서도 40대 남성이 전남·전북 일대 254개 교량에서 교명판 850여 개를 훔쳐 고물상에 넘긴 혐의로 적발됐다. 이 사건에서 경찰은 훔친 교명판 판매 대금이 4000만 원대에 이르고, 원상복구 비용까지 포함한 피해액은 약 6억 원에 달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같은 유형의 범행이 한 달 새 다른 지역에서 잇따라 확인됐다는 것은, 교량 명판 절도가 우발적 기행이 아니라 ‘팔릴 만한 금속만 보이면 떼 간다’는 식의 반복 범죄로 번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배경에는 분명 구리 가격 상승이 있다. 런던금속거래소(LME)는 구리를 글로벌 기준 가격이 형성되는 대표 비철금속으로 소개하고 있고, 최근 시장에서는 구리 가격이 높은 수준을 이어가고 있다. Trading Economics 집계 기준으로 2026년 4월 15일 구리 가격은 최근 한 달 새 약 5% 오르고, 1년 전보다 약 30% 높은 수준으로 나타났다. JP모건은 2026년 구리 시장이 정련 구리 기준 약 33만 톤 공급 부족 상태를 보일 것으로 전망했고, IEA도 지난달 해설 자료에서 최근 구리 가격이 사상 최고 수준에 도달했다고 평가했다. 산업계가 구리를 ‘전력망·AI 인프라·전기차 시대의 핵심 금속’으로 보는 상황에서, 범죄자들 역시 이를 손쉬운 현금화 수단으로 보기 시작한 셈이다.
문제는 훔친 동판이 생각보다 쉽게 유통된다는 점이다. 이번 삼척 사건에서도 경찰은 stolen 동판이 고물상을 거쳐 제련공장으로 거래된 사실을 확인했다. 장흥 사건에서도 경찰은 교명판을 사들인 고물상 관계자들을 장물취득 혐의로 함께 수사했다. 공공시설에 붙어 있는 명판은 규격과 형태가 비교적 뚜렷한데도, 이를 매입해 다시 유통시키는 경로가 끊기지 않는다면 같은 범행은 반복될 수밖에 없다. 절도범만 검거해서 끝낼 문제가 아니라, 고물상과 중간 유통 단계에서 출처 확인을 얼마나 엄격히 하느냐가 재발 방지의 핵심이라는 뜻이다.
교량 명판 절도는 단순 재산 피해로도 끝나지 않는다. 교명판은 다리 이름과 위치, 설계 정보를 알려주는 표지물이고, 설명판은 교량 구조와 유형을 안내하는 역할을 한다. 주민 입장에선 생활 기반시설의 식별 정보가 사라지는 것이고, 지자체 입장에선 일일이 현장을 확인해 다시 제작·설치해야 하는 행정 부담이 생긴다. 장흥 사례처럼 절도범이 챙긴 돈은 수천만 원에 그쳐도 복구비용은 수억 원대로 커질 수 있는 이유다. 범죄수익보다 사회적 복구비가 훨씬 커지는 전형적 공공시설 절도인 셈이다.
이번 사건은 또 다른 질문도 남긴다. 왜 하필 교량 명판이 표적이 됐느냐는 점이다. 범인들이 노린 것은 경비가 삼엄한 창고나 공장이 아니라, 야외에 노출돼 있고 공구만 있으면 비교적 쉽게 떼어낼 수 있는 공공시설이었다. 사람 왕래가 적은 시간대나 외곽 지역 교량은 CCTV 사각지대가 생기기 쉽고, 실제 분실 여부를 지자체가 인지하기까지 시간이 걸릴 수 있다. 범죄자 입장에선 위험 대비 수익이 나쁘지 않은 표적으로 판단했을 가능성이 크다. 이는 공공 인프라의 금속성 부착물을 어떻게 관리하고, 어떤 시설에 추가 고정 장치나 위치 추적, 재질 대체를 도입할지 재점검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결국 이번 사건은 ‘구릿값이 오르니 별게 다 चोरी 대상이 된다’는 웃지 못할 뉴스로 끝낼 일이 아니다. 원자재 가격 급등이 생활 주변의 공공시설 범죄로 번지고, 허술한 매입·유통 구조가 이를 뒷받침하며, 피해 복구 비용은 고스란히 지역사회와 지자체가 떠안는 구조가 드러났기 때문이다. 경찰이 고물상 업주들에 대한 수사를 예고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구리값 강세가 당분간 이어질 가능성이 거론되는 만큼, 교량 명판 절도는 특정 지역의 해프닝이 아니라 전국 공공시설 관리의 새로운 취약지점으로 봐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