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도 옷 입는다”…한세실업, 휴머노이드 시대 겨냥한 ‘미래 의류’ 선점 나서

한세실업이 사람을 위한 옷을 넘어 로봇과 미래 직업군을 위한 의류 시장으로 사업 상상력을 확장하고 있다. 글로벌 패션 제조자개발생산(ODM) 기업으로 쌓아온 기능성 소재와 3D 디자인 역량을 바탕으로, 앞으로 휴머노이드 로봇이 산업·교육·돌봄·서비스 현장에 투입되는 시대에 맞춘 새로운 의류 카테고리를 선점하겠다는 구상이다.
김익환 한세실업 부회장은 8일 서울 삼성동 섬유센터에서 열린 ‘웨어 더 퓨처 미디어 데이’에서 “로봇에게 옷이 왜 필요하냐고 생각할 수 있지만, 휴머노이드가 사람 곁에서 일하는 시대에는 보호와 기능, 친근감을 위한 의류가 필요해질 것”이라며 미래 의류 시장 진출 의지를 밝혔다. 행사장에서는 휴머노이드 로봇이 무대에 올라 퍼포먼스를 선보였고, 한세실업은 미래 직업군과 로봇 활용 환경을 고려한 의류 콘셉트와 기능성 소재 적용 방향을 소개했다.
한세실업이 주목한 지점은 휴머노이드 로봇의 상용화가 단순히 기계 산업에만 머물지 않는다는 점이다. 로봇이 공장이나 물류센터뿐 아니라 병원, 학교, 요양시설, 호텔, 매장 등 사람과 가까운 공간으로 들어오면 외관과 착용물도 사용자 경험의 일부가 된다. 산업 현장에서는 내구성과 보호 기능이 중요하고, 돌봄·교육·서비스 현장에서는 위생성, 부드러운 촉감, 친근한 이미지가 필요해질 수 있다.
글로벌 시장 전망도 이런 시도에 힘을 싣고 있다. 골드만삭스 리서치는 휴머노이드 로봇 시장이 2035년 380억달러 규모에 이를 수 있다고 전망했고, 모건스탠리는 2050년 휴머노이드 관련 시장이 공급망과 유지보수·서비스까지 포함해 5조달러 규모로 성장할 수 있다고 봤다. 아직 상용화 속도와 실제 수요를 둘러싼 불확실성은 크지만, AI 발전과 인력 부족 문제가 맞물리며 휴머노이드 산업이 중장기 성장 축으로 부상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한세실업의 강점은 기존 의류 ODM 사업에서 축적한 소재·생산·디자인 인프라다. 한세실업은 1982년 설립된 글로벌 의류 제조 기업으로, 갭·H&M·나이키 등 글로벌 브랜드와 협력해 왔고 7개국 14개 생산시설과 서울·뉴욕 R&D 거점을 운영하고 있다. 회사는 뉴욕, 스페인 바르셀로나 등 해외 거점을 통해 글로벌 브랜드의 디자인 요구에 대응해 왔다.
특히 한세실업은 3D 디자인 기술을 미래 의류 개발의 핵심 기반으로 보고 있다. 회사는 2017년부터 자체 3D 디자인 기술을 활용해 가상 샘플을 제작해 왔으며, 국내 의류 ODM 업계에서 버추얼 디자인 전담 조직을 일찍 구축한 기업으로 꼽힌다. 가상 샘플은 실물 샘플 제작에 들어가는 원단 폐기물, 포장재, 운송 비용을 줄이는 효과가 있고, 실제 원단의 질감과 패턴, 색감을 디지털로 구현하는 방향으로 고도화되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 제시된 로봇 의류는 단순한 장식물이 아니라 기능성 제품에 가깝다. 냉감, 고신축, 고내구성 소재를 적용하면 로봇의 반복 동작을 방해하지 않으면서 표면 손상을 줄이고, 작업 환경에 따른 오염이나 마찰을 완화할 수 있다. 사람과 접촉하는 서비스형 로봇의 경우 금속이나 플라스틱 외피가 주는 차가운 인상을 줄이고, 직무별 정체성을 보여주는 유니폼 역할도 할 수 있다.
한세실업의 시도는 패션 산업이 ‘사람이 입는 옷’이라는 전통적 정의에서 벗어나고 있음을 보여준다. 웨어러블 기기, 스마트 섬유, 디지털 패션, 로봇 의류는 모두 섬유와 기술이 결합하는 흐름 위에 있다. 조지아공대는 이미 센서가 생체 데이터를 수집할 수 있는 ‘스마트 셔츠’ 연구를 통해 의류가 데이터 수집과 헬스케어 플랫폼으로 확장될 수 있음을 보여준 바 있다.
다만 휴머노이드 의류 시장이 당장 큰 매출로 이어질지는 아직 미지수다. 휴머노이드 로봇은 가격, 안전성, 배터리, 동작 정밀도, 실제 업무 효율성 등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고, 산업계에서도 범용 휴머노이드보다 목적 특화 로봇이 먼저 확산될 것이라는 신중론이 적지 않다. 따라서 한세실업의 전략은 단기 매출보다 미래 카테고리 선점과 기술 이미지 강화에 가까운 행보로 해석된다.
그럼에도 이번 행사는 한세실업이 기존 의류 수출·제조 기업의 틀에서 벗어나 기술 기반 패션 기업으로 포지셔닝하려는 신호로 읽힌다. 글로벌 패션 ODM 시장은 원가 경쟁만으로는 차별화가 어려워지고 있고, 브랜드 고객사들은 지속가능성, 개발 속도, 디지털 샘플링, 기능성 소재 역량을 동시에 요구하고 있다. 한세실업이 로봇 의류를 전면에 내세운 것은 미래 산업을 겨냥한 상징적 프로젝트이면서, 회사가 가진 소재·디자인·생산 기술을 새롭게 보여주는 무대이기도 하다.
김 부회장이 강조한 “가장 먼저 시도하는 DNA”는 한세실업의 향후 방향을 압축한다. 사람의 옷을 잘 만드는 기업에서, 사람과 함께 일할 로봇의 옷까지 설계하는 기업으로 확장하겠다는 것이다. 휴머노이드 시대가 실제로 얼마나 빨리 올지는 아직 불확실하지만, 한세실업은 그 가능성을 패션 산업의 다음 실험장으로 삼기 시작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