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고령사회 돌봄 공백 커지는데…국회입법조사처 “생활동반자법 재논의 필요”

혼자 사는 고령자가 빠르게 늘어나는 가운데, 혈연과 혼인 중심의 기존 가족제도로는 노년 돌봄 공백을 감당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왔다. 국회입법조사처는 1인 고령가구의 의료·돌봄 사각지대를 해소하기 위해 이른바 ‘생활동반자법(안)’을 다시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16일 ‘1인 고령자 가구의 자발적 상호돌봄 제도화를 위한 입법·정책 과제’ 보고서를 통해 초고령사회에 접어든 한국 사회에서 생활동반자 제도를 돌봄 대안의 하나로 검토해야 한다고 밝혔다. 보고서는 생활동반자법을 특정 집단의 권리 문제로만 볼 것이 아니라, 변화한 삶의 형태를 법과 제도가 어떻게 수용할 것인지의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재 국내 65세 이상 고령인구는 1051만4000명으로 전체 인구의 20%를 넘겼다. 이 가운데 65세 이상 고령자 가구의 37.8%인 213만명은 혼자 사는 것으로 집계됐다. 보고서는 특히 고령 1인 가구가 단순한 저소득 문제를 넘어 은퇴 이후 소득 단절, 사회적 관계망 해체, 의료적 위기와 돌봄 취약성이 한꺼번에 겹치는 구조적 위험에 놓여 있다고 진단했다.
실제 1인 가구로 살고 있는 중·고령층의 상당수는 앞으로도 독거 생활을 유지하길 원하면서도, 가장 큰 불안 요인으로 경제적 어려움과 질병·건강 악화 시 돌봄 문제를 꼽았다. 국회입법조사처는 전통적인 가족 부양 구조가 약해지는 상황에서 현행 제도만으로는 이 같은 불안을 흡수하기 어렵다고 봤다.
가족에 대한 인식 변화도 제도 재검토 필요성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제시됐다. 최근 조사에서는 국민 2명 중 1명가량이 고령 부모 부양 책임이 반드시 자녀에게 있지는 않다고 인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혈연이나 혼인, 입양만으로 가족을 한정하는 방식은 시대 변화에 맞지 않는다는 응답이 과반을 넘겼고, 가족 형태에 따른 차별을 막아야 한다는 의견도 높게 나타났다.
생활동반자 제도 도입에 대한 찬성 여론도 적지 않았다. 관련 조사에서 생활동반자 제도 도입에 동의한다는 응답은 62.1%였고, 특히 노년층에서는 67.5%로 더 높게 집계됐다. 의료적 위기 상황에서 생활동반자에게 의료 결정권이나 면회권을 부여하는 데 대해서도 폭넓은 공감대가 형성된 것으로 조사됐다.
생활동반자법 논의는 새로운 의제가 아니다. 국내에서는 2014년부터 제도 도입 논의가 시작됐지만, 보수·종교계 반발과 사회적 합의 부족 등을 이유로 입법이 진전되지 못했다. 이후 21대와 22대 국회에서 관련 법안이 발의됐지만, 여전히 본격적인 제도화로 이어지지는 못한 상태다.
국회입법조사처는 현재의 논의가 동성혼이나 기존 가족 질서와의 충돌 같은 이념적 프레임에 갇혀 있다고 지적했다. 그 결과 비혼 증가, 고령화, 돌봄 공백 확대라는 현실적 문제에 대응하는 제도적 대안으로서의 의미가 충분히 논의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보고서는 1인 고령자 돌봄 공백을 줄이기 위한 5대 입법 과제도 제시했다. 우선 의료법을 손질해 생활동반자와 같은 제도화된 관계를 일정 범위에서 보호자로 인정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또 가족돌봄휴가 대상을 넓히기 위한 남녀고용평등법 개정, 실질적 거주 보호를 반영한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 비혈연 돌봄 제공자를 제도권에 포함시키는 노인장기요양보험법 정비, 장례와 애도 권리 보장을 위한 장사 관련 법 개정도 필요하다고 밝혔다.
해외 사례도 함께 제시됐다. 프랑스의 시민연대계약, 독일의 생활동반자법, 미국의 병원 면회권 확대와 등록 동반자 대상 가족휴가 제도 등은 법적 관계의 폭을 넓힌 뒤 고령층의 의료 접근성과 돌봄의 질을 높이는 데 긍정적 효과를 냈다고 보고서는 설명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생활동반자 제도를 둘러싼 논의가 특정 쟁점에 매몰되기보다, 국민적 공감대가 큰 의료·돌봄·주거 영역부터 단계적으로 설계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자발적 상호돌봄 관계를 법적으로 인정하는 문제는 단지 새로운 제도를 하나 만드는 차원을 넘어, 한국 사회가 돌봄을 누구와 어떻게 나눌 것인가에 대한 사회적 합의의 문제라고 짚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