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개인회생은 비상구이지 면죄부가 아니다… 성실 상환자 보호도 필요

오피니언

채무자 구제와 신용 질서 사이, 갚을 수 있는 사람의 책임까지 물어야

빚을 갚지 못하는 사람을 모두 비난할 수는 없다. 실직과 폐업, 질병, 가족 부양, 고금리 부담이 한꺼번에 닥치면 정상적인 상환 계획도 무너질 수 있다. 금융 취약계층에게 다시 설 기회를 주는 제도는 필요하다. 개인회생과 채무조정 제도는 그런 이유로 존재한다.

그러나 문제는 다른 곳에서 생긴다. 갚고 싶어도 갚지 못하는 사람과, 갚을 능력이 있는데도 버티는 사람은 구분되어야 한다. 제도가 재기의 통로가 아니라 책임 회피의 수단으로 쓰이기 시작하면 신용 사회의 기반은 흔들린다. 채무자 보호가 필요한 만큼 성실 상환자 보호도 필요하다.

최근 채권 추심 현장에서 전해지는 일부 사례는 이 불균형을 보여준다. 빚 독촉을 받는 채무자가 위축되기는커녕 개인회생 신청을 방패처럼 말하고, 정부의 채무 감면 정책을 기다리겠다고 답하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일부 사례만으로 전체 채무자를 일반화해서는 안 된다. 다만 이런 태도가 반복된다면 제도의 허점을 점검할 이유는 충분하다.

개인회생은 본래 빚을 없애주는 제도가 아니다. 일정한 소득이 있는 채무자가 법원의 변제계획에 따라 일정 기간 빚의 일부를 갚고, 남은 채무를 조정받는 절차다. 채무자의 경제적 재기를 돕는 동시에 채권자에게도 일정한 회수를 가능하게 하려는 장치다. 따라서 개인회생은 실패한 사람에게 다시 기회를 주는 제도이지, 갚을 능력이 있는 사람에게 책임을 면제해주는 통로가 되어서는 안 된다.

개인회생 신청 증가도 단순히 도덕적 해이로만 볼 일은 아니다. 고금리와 경기 둔화, 자영업 침체, 가계부채 증가, 실질소득 감소가 누적되면 법적 채무조정 수요는 자연스럽게 늘어난다. 코로나19 이후 부채를 버텨온 개인사업자와 저소득층이 한계에 몰린 것도 중요한 배경이다. 신청 건수 증가를 곧바로 제도 악용 증가로 단정하면 현실의 어려움을 놓칠 수 있다.

그럼에도 악용 가능성을 방치해서는 안 된다. 상환 능력이 있는데도 재산을 숨기거나, 소비 수준을 유지하면서 채무조정을 기대하거나, 반복적으로 제도를 이용해 채권 회수를 지연시키는 행위는 분명히 걸러내야 한다. 법과 제도는 선의의 실패자를 보호해야 하지만, 고의적 회피자에게 유리하게 작동해서는 안 된다. 이 경계가 무너지면 사회적 신뢰가 무너진다.

성실 상환자의 상대적 박탈감도 가볍게 볼 수 없다. 누군가는 허리띠를 졸라매며 매달 빚을 갚는다. 소비를 줄이고, 여행을 미루고, 생활 수준을 낮추며 약속을 지킨다. 그런데 다른 누군가는 버티면 감면받고, 버티지 않고 갚은 사람은 손해를 본다는 인식이 퍼진다면 신용 질서는 약해질 수밖에 없다. 금융시장의 기초는 계약을 지키는 사람이 불이익을 받지 않는다는 믿음이다.

채권자의 권리도 함께 봐야 한다. 빚은 단지 금융회사 장부 위 숫자가 아니다. 그 뒤에는 예금자, 투자자, 보증인, 거래처, 소상공인 채권자도 있을 수 있다. 대출채권이 회수되지 않으면 그 비용은 결국 금리, 수수료, 신용평가, 금융 접근성의 형태로 사회 전체에 전가된다. 무분별한 탕감은 당장의 부담을 덜어주는 것처럼 보이지만, 장기적으로는 금융 취약계층의 비용을 더 높일 수도 있다.

물론 불법 추심은 강하게 막아야 한다. 협박성 독촉, 야간 연락, 가족·직장에 대한 압박, 개인정보 침해는 정당한 채권 회수가 아니다. 채무자가 빚을 졌다고 해서 인격권까지 포기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합법적 추심과 불법 추심을 구분하고, 취약 채무자의 기본권을 보호하는 일은 계속 강화되어야 한다.

그러나 불법 추심을 막는 일과 정당한 채권 회수를 무력화하는 일은 다르다. 채무자 보호 정책이 모든 독촉을 부당한 압박처럼 만들면, 정상적인 금융 계약은 작동하기 어렵다. 갚을 능력이 있는 사람에게 상환을 요구하는 것은 폭력이 아니라 계약의 이행을 요구하는 절차다. 사회는 이 차이를 분명히 해야 한다.

정부의 채무 감면 정책도 더 정교해져야 한다. 취약계층을 돕는다는 명분만으로 넓게 탕감하는 방식은 오래 지속되기 어렵다. 상환 능력 심사를 강화하고, 고의 연체와 생계형 연체를 구분해야 한다. 재산 은닉, 반복 신청, 채무조정 이후 과도한 소비나 허위 신고에 대해서는 엄격한 검증 장치가 필요하다.

동시에 성실 상환자에 대한 인센티브도 검토해야 한다. 일정 기간 성실히 갚은 사람에게 금리 인하, 신용 회복 가속, 수수료 감면, 추가 금융 접근성 회복 같은 보상이 주어져야 한다. 채무조정 제도가 실패자에게만 기회를 주는 구조로 보이면 반감은 커진다. 제도를 지키며 빚을 갚는 사람도 보호받는다는 신호가 필요하다.

금융회사의 책임도 빠질 수 없다. 무리한 대출을 권하고, 상환 능력을 충분히 보지 않고, 고금리 상품으로 취약층을 끌어들인 뒤 문제가 생기면 채무자 책임만 말하는 것도 정당하지 않다. 신용 질서는 채무자만 지키는 것이 아니다. 돈을 빌려주는 쪽도 책임 있는 심사와 설명 의무를 다해야 한다.

결국 핵심은 균형이다. 갚을 수 없는 사람에게 다시 설 기회를 주는 것은 사회의 안전망이다. 그러나 갚을 수 있는 사람이 제도의 빈틈을 이용해 책임을 미루는 것은 신용 질서의 훼손이다. 정부 정책은 이 둘을 구분해야 한다. 구제의 문은 열어두되, 악용의 길은 좁혀야 한다.

빚을 갚는 사람이 바보가 되어서는 안 된다. 동시에 빚을 갚지 못하는 사람이 낙인찍혀서도 안 된다. 성숙한 금융정책은 이 두 원칙을 함께 지켜야 한다. 개인회생과 채무조정은 면죄부가 아니라 재기의 절차여야 한다. 그 절차가 신뢰를 얻으려면 채무자의 권리와 채권자의 권리, 취약계층 보호와 성실 상환자 보호가 같은 테이블 위에서 다뤄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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