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병원, 수술후 회복 향상 프로그램 도입…”입원기간 단축”

서울대병원이 대장암 환자의 수술 후 회복 과정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연 ‘ERAS(Enhanced Recovery After Surgery, 수술 후 회복 향상 프로그램)’를 도입해 가시적인 성과를 거두고 있다. 기존 재래식 수술 회복 방식 대비 입원 기간은 평균 4일, 장운동 회복 시간은 2.5일 이상 줄었다는 것이 병원의 설명이다.

단순히 입원 기간을 줄이는 것 이상의 임상 성과를 이끌어낸 ERAS는, 앞으로 국내 전체 암 수술환자 회복 관리의 표준 모델로 자리 잡을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ERAS란 무엇인가?
수술 전·중·후 환자의 스트레스 반응을 최소화하고, 회복을 가속화하기 위한 다학제적 접근 방식으로, 1997년 덴마크 콜레트 박사 팀이 처음 개념을 정립했다. 이후 유럽과 북미 주요 병원들을 중심으로 확산됐으며, 특히 복부 수술에서 탁월한 효과가 입증되었다.

핵심 원칙은 ‘조기 회복’과 ‘환자 중심’이다. 수술 전 영양 상태 평가 및 최적화, 최소 침습 수술법 사용, 통증 조절 전략의 표준화, 수액 요법의 제한적 사용, 그리고 수술 직후 빠른 식사 및 보행 독려 등이 포함된다. 쉽게 말해 예전처럼 며칠을 금식하거나 지켜본 후 걷기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수술 다음 날 곧바로 걸어 다니며 식사까지 하는 환자 중심의 회복 전략이다.

서울대병원, ERAS로 얼마나 변화했나

서울대병원 외과는 2021년부터 대장암 환자를 대상으로 ERAS 프로토콜을 단계적으로 도입하고 있으며, 이번 성과는 2021년부터 2023년까지의 환자 125명의 데이터를 기반으로 발표됐다. 기존 표준 회복군 환자들과 비교했을 때, ERAS 적용 환자군은 평균 입원 기간이 9.6일에서 5.7일로 단축됐으며, 장운동 기능 회복도 3.5일에서 1.0일로 앞당겨졌다.

특히 입원 비용에 있어 환자 부담이 줄어든 점도 주목할 만하다. 서울대병원 측은 환자 1인당 약 130만 원의 병원비 절감 효과가 있었다고 밝혔다. 이는 건강보험 재정 건전성 측면에서도 큰 의미가 있다.

기존 수술 후 회복과 무엇이 다른가?

과거의 ‘보수적 회복 프로토콜’은 일명 “3일 금식-침상 안정-통증 이겨내기”를 특징으로 했다. 하지만 현대 수술학은 인간의 생리적 회복 능력을 적극 활용하는 방향으로 진화했다. 특히 고령 환자나 기저질환이 많은 암 환자의 경우, 장기적인 침상 안정이 오히려 폐렴, 혈전증 등의 합병증 발생 가능성을 높인다는 사실이 다수 연구에서 지적돼 왔다.

여기에 ERAS는 수술 스트레스를 근본적으로 낮추며 인슐린 저항성과 관련된 신진대사 이상까지 완화시켜 면역기능의 빠른 복귀를 도와준다. 결국 이는 암 재발률 감소와 장기 생존율 향상으로 이어지는 선순환을 만든다.

단순한 병원 전략 아닌 국가 보건의료 차원의 접근 필요

서울대병원의 이번 시도는 개별 병원의 선진 의료 도입 사례로 그쳐선 안 된다. 필자가 현장을 10년 이상 취재하며, 복부 수술 전 과정에서 경험한 의료진과 환자 간의 불신, 표준화되지 않은 회복 가이드라인, 수술 후 방치되는 회복 사각지대 등을 통과하며 절감한 한 가지가 있다면, 이제 수술은 ‘끝’이 아니라 ‘치료의 시작’이라는 점이다.

보건당국은 ERAS 같은 고효율 회복 전략을 상급병원뿐 아니라 지역 중소병원까지 확산시킬 수 있도록 교육 및 재정적 인센티브 정책을 고민해야 한다. 특히 대장암은 국민 암 등록통계 기준, 국내에서 두 번째로 많이 발생하는 암으로, 연간 2만 5천 명 이상이 수술받는다. 이들 중 상당수가 여전히 구시대적 회복 프로토콜 속에서 고통 받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ERAS는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어야 한다.

국내 도입 확대 위한 조건은?

서울대병원의 ERAS는 확실한 사례로서 자리매김했으나, 이를 전국적인 실천으로 옮기기 위해선 몇 가지 전제 조건이 필요하다.

첫째, 통일된 ‘ERAS 가이드라인’의 제정이다. 현재 병원별로 ERAS의 적용 영역과 해석 범위가 다르기 때문에, 대한외과학회 차원의 표준화가 시급하다. 둘째, 수술 전 준비단계부터 퇴원 후 재활까지 포괄하는 통합전담팀의 확보. 영양사, 물리치료사, 마취과, 간호사 등 직역 간 협업체계가 필수이며, 특히 중소병원은 전담 인력 확보부터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아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 셋째, 환자 교육 및 참여강화. 수술 환자 본인의 적극적인 회복 참여 없이는 아무리 좋은 프로토콜도 빛을 발하지 않는다. 쉽게 이해 가능한 동영상 콘텐츠, 회복 앱, 일일 식단 및 운동 계획표 등이 병행돼야 한다.

서울대병원의 ERAS 도입은 단순히 선진 의료기술을 따라한 데 그치지 않고, 이를 우리나라의 현실적 환경에서 검증, 발전시켰다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다. 대장암뿐 아니라 위암, 간암, 부인과, 비뇨기과 수술 등으로까지 확산될 수 있는 플랫폼 기반이며, 적절한 정책 뒷받침이 있다면 향후 국민 전체의 입원일 단축 및 재입원률 감소라는 국가적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ERAS, 이제는 선택이 아닌 시대의 대세다. ‘빠른 수술보다 중요한 것은 좋은 회복’임을 의료계뿐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가 자각해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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