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와 치유의 공존…마임 공연장으로 변신한 강원대 어린이병원

“마임은 언어 없이도 마음을 연결합니다. 병원의 정적을 깨고 아이들의 웃음이 흘러나온 건, 무대 위가 아닌 병실 속 힐링의 시작이었습니다.”

강원대학교 어린이병원이 ‘공연장’으로 탈바꿈했다. 의료기기와 하얀 병상 사이를 유랑하는 것은 ‘도깨비 유랑단’이라는 이름의 특별한 공연팀. 2025 춘천마임축제를 향한 사전 행사 일환으로, 병원 공간에서 펼쳐진 마임 공연은 단순한 볼거리를 넘어선 하나의 ‘치유 문화 프로젝트’였다.

지난 6월 18일, 춘천시 강원대병원 어린이병동에는 평소 들리지 않던 경쾌한 웃음소리와 함박웃음이 번졌다. 무대 위 배우들은 말 없이 몸짓과 표정만으로 무더운 초여름의 병동을 환히 밝히며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감정을 나눴다.

행사의 메인 프로그램은 △찾아가는 힐링 공연 ‘도깨비 유랑단’ △0~36개월 영유아를 위한 감각놀이 형식의 ‘베이비 지퍼 마임쇼’. 특히 후자는 일반 공연장에서 접근하기 어려운 유아 연령대를 위한 예술 놀이형 마임극으로, 부모와 아이의 정서적 교감을 극대화할 수 있는 형태로 기획됐다.

강원대 어린이병원 김길동 병원장은 지난 행사 이후 인터뷰에서 “의료진의 치료뿐 아니라, 문화적 자극과 정서적 케어가 아동 환자들의 치료 효과에 긍정적 영향을 주는 것이 최근 다양한 연구에서 입증되고 있다”며 “이런 프로그램을 통해 병원도 새로운 돌봄 환경으로 나아가는 중요한 변화를 시도 중”이라고 전했다.

문화예술을 접목한 치유활동은 최근 국내·외 의료계에서 주목받고 있다. 특히 소아병동, 암병동, 장기입원 환자들을 위해 예술의 치유 효과를 활용하는 병원이 늘고 있으며, 일부 국립병원에서는 전문 문화기획자와 예술치유사가 상주하고 있기도 하다.

세계보건기구(WHO)는 2019년 “문화예술과 건강: 정책형성을 위한 근거(Evidence on the role of arts in improving health and wellbeing)”라는 보고서를 통해 예술 활동이 정신건강, 만성 질환 관리, 통증 조절, 사회적 고립 등 다양한 분야에 효과를 발휘한다고 밝힌 바 있다.

실제로 북유럽 국가들에서는 음악치료, 미술치료, 웃음치료 등 예술 기반의 치유 프로그램이 의료보험에서 일정 부분 보장되기도 한다. 반면, 우리나라는 아직 대부분이 민간 차원 또는 지자체 단위의 지원사업으로 추진되고 있어 제도화된 접근은 다소 미흡한 상황이다.

춘천마임축제는 예술을 ‘거리 위 문화’로만 머무르게 하지 않고, 병원이라는 한정된 공간 안으로 끌어들여 ‘경계 없는 예술’을 실현했다는 점에서 주목할만하다. 특히 ‘찾아가는 공연’이라는 이동식 무대와 미취학 아동까지 아우를 수 있는 공연 형식은 향후 소아전문병원의 문화복지 모델로 발전 가능성을 보인다.

통증과 불안은 아이의 성장 과정을 지연시킬 수 있는 심각한 장애 요인이다. 특히 오랜 입원을 요하는 희귀·난치성 질환 아동의 경우, 의료인이 아닌 외부 환경과의 정서적인 교류가 매우 제한될 수밖에 없다. 이런 자리에서 웃음을 유도하는 문화 콘텐츠는 단순한 오락을 넘어 필수적 심리 처방으로 기능할 수 있다.

한 아동심리전문가는 “어린아이일수록 언어적 표현보단 신체 감각과 분위기에 영향을 크게 받는다. 마임처럼 직접적인 말이 없이 교감하는 예술 형식은 주의집중 지속 시간이 짧은 아동들에게 훨씬 효과적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실제 ‘베이비 지퍼 마임쇼’에서 아기와 부모의 동시 참여, 촉각 자극을 기반으로 한 연출은 감각통합을 자극하면서 안정된 심리 상태를 유지하게 돕는다. 이는 이후 식사, 수면, 그리고 약 복용 등에 이르는 전반적인 병원 생활 전반에 긍정적 영향을 준다.

강원대 어린이병원의 이번 시도는 국내 의료기관에서 단순히 외래·입원 치료를 넘어 문화와 치유의 ‘플랫폼 공간’으로의 변모를 보여준 대표 사례다. 최근 서울아산병원, 서울국립어린이병원도 자체 치료극장 건립 또는 마술·연극 공연을 도입했지만, 외부 문화축제와 협업해 병원으로 무대를 옮긴 것은 드물다.

향후에는 공공보건 정책 차원에서 마임, 음악, 영상 등 다양한 예술 형태가 정기적이고 체계적으로 병원 내 프로그램으로 편입되길 바라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우리 사회는 치료와 문화, 의술과 정서를 따로 보아왔다. 그러나 병동의 현실은 분리된 공간이 아니다. 두려움도, 설렘도, 희망도 여느 생활과 다르지 않은 곳이다. 춘천마임축제와 강원대병원의 협력은 진료 시간이 끝나도 환자들의 마음을 진료하는 방법이 존재함을 보여준다.

질병 치료뿐 아니라 환자 삶의 질을 높이는 전인적 접근. 이는 의료인에게도 중요한 전환의 계기다. 앞으로 더 많은 의료기관이 이런 문화 예술 기반의 치료적 시도들에 적극적으로 나선다면, 병원은 더 이상 ‘아픈 공간’이 아닌, ‘치유와 성장의 문화 공동체’로 바뀔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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