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착한 소비가 정말 지구를 살릴 수 있는가?
“이 상품은 윤리적 방식으로 생산되었습니다.”
“이 포장은 생분해됩니다.”
“이 브랜드는 지구를 생각합니다.”
우리는 이제 이런 문장들을 마주치지 않는 날이 없다.
마트에서는 ‘친환경’을 강조한 포장재와 슬로건이 넘쳐나고, 온라인 쇼핑몰에는 ‘지속가능한 선택’을 유도하는 배너가 떠 있다. 환경과 노동, 동물복지, 탄소배출을 고려한 소비가 곧 착한 소비이며, 그런 선택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믿음이 확산된다.
그러나 질문은 여전히 유효하다. 정말 그런가? 정말 우리가 사는 방식이 지구를 구할 수 있는가?
소비자에게 전가된 윤리, 책임은 누구의 것인가
지속가능한 소비(sustainable consumption)는 본래 환경을 해치지 않는 생산과 소비의 균형을 지향하는 개념이다. 그러나 실제로 이 용어가 사용되는 방식은 대부분 소비자 개인의 선택에 초점을 맞춘다. 마치 문제의 원인이 시민의 무지나 무책임인 것처럼, 개선 역시 개인의 윤리적 각성과 실천으로 귀결된다.
이런 담론 구조는 위험하다. 왜냐하면 소비를 둘러싼 결정권은 절대적으로 불균형하기 때문이다. 기업은 어떤 상품을 만들고, 어떤 원자재를 쓰며, 얼마나 포장할지를 결정한다. 정부는 어떤 규제를 만들고, 어떤 보조금을 지급할지를 선택한다. 반면 소비자는 주어진 조건 안에서 ‘선택’할 수 있을 뿐이다. 시스템은 바뀌지 않고, 선택의 책임만 전가된다.
예컨대, 플라스틱 제품을 줄이려는 소비자가 있다 하더라도, 시장 전체가 플라스틱 포장 일색이라면 소비자는 무력하다. 대체 상품이 극도로 비싸거나, 접근이 어렵다면 ‘윤리적 선택’은 곧 ‘사치’가 된다. 이렇게 소비자의 도덕성이 강조될수록, 구조 개혁에 대한 사회적 요구는 오히려 약화된다.
녹색 소비가 자본의 언어로 흡수될 때
더 심각한 문제는 ‘지속가능성’ 자체가 마케팅의 언어로 포섭되고 있다는 점이다.
기업은 ‘녹색 프레임’을 앞세워 새로운 수요를 창출하고, 고부가가치를 실현한다. 재활용 원단을 사용한 고가의 패션 아이템, 비건 인증을 강조하는 명품 화장품, 생분해성 포장을 사용한 프리미엄 식품 등은 ‘윤리적 소비’를 일종의 계급적 상징으로 만든다.
그러나 이 ‘착한 소비’는 대부분 기존 자본주의 생산 구조 안에서 이뤄진다.
제품의 전 과정에서 에너지를 소비하고, 물류와 포장을 통해 탄소를 배출하며, 생태계를 점유하고 있다는 사실은 마케팅 문구 뒤에 가려진다. 요컨대, “덜 나쁜 소비”가 “좋은 소비”로 치환되는 과정에서 본질적인 생산·유통 구조에 대한 비판은 무력화된다.
이것이 바로 그린워싱(greenwashing)의 구조다.
소비자들은 ‘지속가능하다’는 브랜드의 메시지를 믿고 선택하지만, 그 브랜드가 실제로 얼마나 기후위기에 대응하고 있는지는 파악하기 어렵다. 관련 인증제도나 기준은 국가마다 다르고, 투명성은 낮다. 신뢰보다는 인상(impression)이 지배하는 시장에서, 윤리성은 오히려 상품의 또 다른 포장지가 된다.
착한 소비가 아닌, 규범의 재설정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대안은 무엇인가?
우선, 개인 윤리의 영역에서 사회 규범과 제도로 시선을 옮겨야 한다.
- 왜 플라스틱 포장을 줄이려는 기업보다 그대로 유지하려는 기업이 더 많은가?
- 왜 친환경 상품은 늘 비싸고, 대중적 선택지는 여전히 ‘싼 게 우선’인가?
- 왜 기업은 탄소배출 감축을 ‘의무’가 아니라 ‘선택’으로 간주하는가?
이 질문들에 답하는 방식은 ‘더 나은 선택을 하자’가 아니라,‘선택의 조건을 바꾸자’여야 한다.
탄소세, 기업의 환경정보 공개 의무화, 지속가능성 보고 기준의 법제화, 생산자 책임 강화(EPR) 제도 등은 모두 구조의 변화를 요구하는 방식이다.
윤리적 소비를 독려하는 것보다 더 효과적인 건, 비윤리적 생산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법과 시스템이다.
시민으로 산다는 것, 소비자를 넘어서
물론, 우리는 여전히 소비자다. 매일 물건을 사고, 먹고, 입는다.
그러나 지구의 미래에 관심이 있다면, 그 정체성에 ‘시민’이라는 책임을 덧붙여야 한다.
착한 소비가 세상을 바꾼다는 말은 절반만 맞다.
나머지 절반은, 그 착한 소비가 사회적 압력으로 조직될 때만 의미를 갖는다.
윤리적 선택을 넘어 윤리적 구조를 만들기.
우리가 지금 해야 할 일은 ‘무엇을 살까’가 아니라, ‘어떻게 바꿀까’를 묻는 일이다.
지속가능한 소비는 종착지가 아니다.
그것은 지속가능한 사회를 향한 하나의 문, 하나의 계기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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