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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사·범죄 이슈

1961년 대구 ‘2대 악법 반대 시위’, 63년 만에 무죄… 불법구금과 증거 부재가 뒤집은 판결

1961년 봄 대구에서 발생한 ‘2대 악법 반대 시위’ 사건이 63년 만에 무죄로 결론났다. 당시 피고인은 폭력 시위에 가담해 소요와 특수공무집행방해를 저질렀다는 이유로 유죄를 선고받았으나, 재심 법원은 불법구금의 지속과 자백의 임의성 결여를 결정적 사유로 판단해 기존 판결을 전부 뒤집었다. 사건은 장면 정부가 추진했던 국가보안법 개정안과 데모규제법을 둘러싼 전국적 반대 운동 속에서 발생했으며, 이번 재심은 권위주의적 절차가 남긴 인권침해의 구조를 다시 드러냈다.

판결문에 따르면 피고인은 1961년 4월 2일 체포된 뒤 4월 26일 기소되었고, 사건은 혁명재판소로 넘겨졌다가 다시 대구지방법원으로 이관되는 비정상적 절차를 거쳤다. 1962년 2월 24일 1심 법원은 피고인에게 징역 2년을 선고했고, 항소심에서는 형량이 1년 6개월로 감경되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수사기록과 재판기록은 폐기되었고, 피고인의 자녀가 2024년 재심을 청구하면서 사건을 다시 살필 수 있는 최소한의 자료가 확보됐다. 기록이 사라진 상황에서 재심 법원은 판결문 사본과 당시 과거사 조사 결과 등을 종합하는 방식으로 사건을 재구성했다.

재심 판단의 핵심은 불법구금이다. 당시 구 형사소송법은 1심 단계에서 최대 6개월까지만 구속을 허용했지만, 피고인은 체포일로부터 이를 146일이나 초과해 구금되었다. 법원은 이를 명백한 신체자유 침해로 보았고, 장기간의 부당한 억압 속에서 이뤄진 피고인의 진술은 임의성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특히 피고인의 자백이 경찰·검찰·법정을 거치며 동일하게 반복된 점에 대해서도, 최초 단계에서 강압이 존재했다면 이후 진술 역시 자유로운 상태라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보았다.

증거 부재 역시 중요한 판단 요소였다. 당시 원심이 증거로 제시한 사진 자료는 기록 폐기로 인해 더 이상 확인할 수 없었고, 공소사실 자체도 피고인이 어떤 폭력행위에 직접 관여했는지 구체적으로 특정되지 않았다. 시위의 양상 역시 구호를 외치며 행진하는 과정에서 경찰 저지선과 몸싸움이 발생한 수준에 그쳤고, 도구나 조직적 폭력의 정황도 확인되지 않았다. 법원은 이 정도 행위가 형법상 소요죄가 요구하는 ‘공공의 평온을 침해할 수준’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사건의 당시 배경을 살펴보면 상황은 더 명확해진다. 장면 정부는 1961년 3월 초 국가보안법 개정안과 데모규제법안을 추진했으며, 전국 언론과 야당·학생단체·사회단체들은 이를 기본권 침해 위험이 있는 법안으로 규정하고 강하게 반대했다. 중앙지들은 사설을 통해 정부의 입법 시도를 비판했고, 사회당·학생조직·유족회 등은 공동투쟁위원회를 구성해 전국적인 반대 집회를 주도했다. 서울·지방 곳곳에서 수만 명이 참여한 대규모 시위가 이어졌고, 결국 법안은 국회에 제출되지 못한 채 철회됐다. 이 같은 흐름을 고려하면 대구 시위 역시 특정 단체가 선동한 폭력 사건이라기보다, 표현의 자유와 정치적 반발이 충돌한 시대적 장면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재심 법원은 이러한 시대적 맥락과 사실관계를 종합해 피고인에게 공동정범의 책임을 물을 수 없다고 보았다. 공소사실에는 피고인이 폭력행위를 저질렀다는 내용이 특정되지 않았고, 현장에서 시위를 주도하거나 도구를 이용해 경찰의 공무집행을 방해했다는 직접 증거도 존재하지 않았다. 단순히 시위 행렬에 참여했다는 사실만으로는 공동가공의 의사나 기능적 행위지배를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 법원의 결론이다.

이번 판결은 과거 인권침해 사건의 재심 절차가 어떻게 현대 법원에서 재평가되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장기간 불법구금, 강압적 자백, 기록의 소멸은 권위주의 시기 형사사법의 구조적 문제였고, 이러한 사건은 시간이 흘러도 법적 구제가 필요하다. 이번 재심은 과거 제도적 한계를 바로잡는 과정으로 평가되며, 향후 유사한 사건의 재심 청구에도 중요한 기준을 제시할 수 있다. 특히 기록 관리 체계와 증거 보존 제도의 취약성이 재발되지 않도록 제도 개선 논의가 이어질 필요가 있다.

63년 만에 내려진 무죄 판결은 개별 피고인의 명예 회복을 넘어 한국 형사사법의 역사적 궤적을 다시 살피게 한다. 재심 법원은 “범죄사실의 증명이 없다”는 명확한 결론을 제시했으며, 이는 형사재판의 기본 원칙이 과거 사건에도 동일하게 적용되어야 함을 확인한 것이다. 사건은 시대적 혼란 속에서 발생했지만, 법적 판단은 현재의 기준으로 재평가되어야 한다는 점을 이번 판결은 분명히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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