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이 사람 죽일까 두려워 스스로 경찰에 전화”… 法 “살인예비로 볼 수 없다”
극단적 분노 후 자수한 남성, ‘살인예비죄 무죄’… 법원 “행동 이전의 상상만으로 처벌할 수는 없어”
밤 10시, 인천의 한 원룸 건물 앞.
피고인 A는 떨리는 손으로 휴대전화를 붙잡았다.
전화기 너머로 112 접수원이 “신고 내용 말씀해 주세요”라고 묻자, 그는 낮게 말했다.
“제가… 사람을 죽일 것 같습니다. 제정신이 아닙니다.”
잠시 후 도착한 경찰은 그를 제압하지 않았다. 대신 어깨에 손을 얹고 말했다.
“괜찮습니다. 지금 멈출 수 있습니다.”
그 한마디로, 피고인의 운명은 달라졌다.
“사람을 해칠 의도는 있었지만, 아직 ‘행동’은 없었다”
사건의 시작은 다툼이었다. 피고인은 동거 중인 피해자와 말다툼 끝에 극도로 분노했다.
순간 ‘칼로 찔러버릴까’라는 생각이 스쳤고, 주방으로 가 흉기를 집었다.
하지만 그는 곧 손을 내려놓고 스스로 경찰에 신고했다.
출동한 경찰이 현장에서 칼을 확보했고, 그는 현행범으로 체포됐다.
검찰은 형법 제255조 제1항(살인예비죄)를 적용해 기소했다.
“살인의 실행을 준비한 이상, 실제 범행에 이르지 않아도 처벌할 수 있다”는 논리였다.
그러나 재판부는 ‘생각과 행동은 다르다’는 원칙을 분명히 했다.
“피고인이 분노로 흉기를 든 것은 사실이지만, 이는 살인을 위한 구체적 준비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또한 “곧바로 경찰에 신고했고, 피해자에게 접근하지 않은 점을 보면 사회적 위험성이 없었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 관련 법률 해설
- 형법 제255조 제1항 “살인을 예비 또는 음모한 자는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 형법 제250조 제1항 “사람을 살해한 자는 사형,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
이 조항의 취지는 살인 ‘실행 이전의 단계’라도 사회적 위험이 뚜렷하면 처벌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법원은 “단순한 상상이나 분노의 표출만으로는 구체적 예비행위가 아니다”라며
‘생각만으로는 범죄가 성립할 수 없다’는 형법의 기본 원칙을 재확인했다.
“분노조절 실패와 자수의 경계, 그리고 사회의 시선”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피고인이 충동적으로 범행을 떠올렸으나, 스스로 경찰에 신고해 위험을 차단한 점은 사회적으로 보호할 가치가 있다”고 언급했다.
그는 경찰 출동 당시 울먹이며 “제가 사람을 다칠까봐 무서웠습니다”라고 말했다.
법원은 이를 ‘자기 억제의 의지’로 평가했다.
이 사건은 단순 살인예비죄의 성립 여부를 넘어, 인간이 스스로의 감정을 통제하는 마지막 순간을 보여준다.
분노의 한계선에서 스스로 멈춘 사람에게 법이 선처의 손을 내민 것이다.
“만약 나였다면… 피고인 입장에서의 대응 시나리오”
이 판결은 ‘극단적 감정이 폭발했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가’라는 현실적 질문을 남긴다.
만약 자신이 비슷한 상황에 놓였다면, 첫 번째 행동은 ‘즉시 멈추는 것’이다.
칼을 내려놓고 공간을 벗어나야 한다. 그 다음은 즉시 112 또는 주변인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다.
이는 단순한 도덕적 선택이 아니라, 형법상으로도 ‘자수’(형법 제52조)로 인정돼 처벌을 감경하거나 면제받을 수 있다.
두 번째는 증거를 남기되, 스스로 진정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내가 통제하기 어렵다”고 직접 밝히는 말이나 신고 기록은, 법적으로 자신의 위험성을 인정하고 도움을 구한 행위로 평가된다.
이번 사건에서도 재판부는 “자신의 행위를 고백하고 구조를 요청한 피고인의 태도”를 무죄 판단의 주요 근거로 들었다.
세 번째는 행동의 선을 넘지 않는 것이다.
칼을 들거나 위협적 언행을 하면 살인예비죄나 협박죄로 번질 수 있다.
하지만 피고인처럼 “생각이 두려워 미리 신고”한 경우엔, 범행 의도보다 자기 통제의 의지가 우선 평가된다.
마지막으로는 심리적 도움을 받는 것이다.
분노조절장애, 스트레스, 우울 상태는 형사사건에서 ‘심신미약’ 감경사유가 될 뿐 아니라,
무죄 이후에도 재범 방지를 위한 근거로 인정된다.
법원은 “치료를 병행하며 자수한 사람은 사회적 위험을 스스로 줄인 사례”라고 판단했다.
“살인예비, 어디까지가 처벌 대상인가”
칼을 사거나 피해자를 미행하는 등 구체적 준비행위가 있으면 살인예비로 처벌된다.
하지만 단순히 분노로 흉기를 쥐었으나, 실행으로 나아가기 전에 멈추었다면 이는 ‘위험의 현실화’가 없다고 본다.
법원은 이 사건을 통해 “형법은 인간의 생각까지 처벌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다시 한 번 천명했다.
▣ 사건 요약
- 사건명: 인천지방법원 2025고단 살인예비
- 피고인: A (40대 남성)
- 혐의: 형법 제255조 제1항 위반(살인예비)
- 주요 쟁점: 흉기 소지 및 자수의 경우 예비행위 성립 여부
- 판결 요지: 구체적 실행 준비로 보기 어려워 무죄
- 선고 결과: 무죄 (2025년 9월 선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