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도 예산·세입·정책입법 108건 일괄 처리… 국회, 재정조정·산업전환·사회보호 체계 전반 손질
고배당 과세체계 개편부터 지역의사제·비대면진료 법제화까지… 구조 개편형 입법 비중 높아
연말 정기국회 본회의에서는 내년도 예산안과 세입예산 부수법안, 산업·복지·안전 분야의 개정 법률안이 대거 처리됐다. 정부가 제출한 2026년도 예산안은 총지출 기준에서 일부 조정되며 재정 여력을 재배분하는 방향으로 확정됐고, 고배당 기업에 대한 분리과세 체계 도입 등 세입 구조의 손질도 이루어졌다. 산업구조 전환과 지역 필수의료 확충을 목적으로 한 제정법이 함께 통과되며 예산·조세·정책입법이 연결된 형태의 구조개편형 본회의라는 평가가 나온다. 국회는 이틀간의 회의에서 총 108건을 의결하며 정기회 후반부 입법 가속에 나섰다.
본회의가 확인한 내년도 총지출 규모는 약 727조 원이다. 정부안 대비 증·감액 규모는 크지 않지만 항목 구조가 재배열되면서 핵심 정책군의 우선순위가 분명해졌다는 점이 특징이다. 인공지능 관련 예산 일부가 감액된 반면 농어촌 기본소득 시범사업, 국가정보자원관리원의 재해복구 시스템, 자율주행 실증도시 조성, 국가장학금, 군 처우 개선 예산 등은 증액되었다. 기초연금 예산의 감액조정은 최근 불용액 추이를 반영한 구조조정 성격이 짙다. 재정운용의 실효성을 반영하려는 조치로 읽히며, 큰 틀의 재정기조 변화를 예고하는 대목도 아니다.
세입 부문에서는 고배당 기업의 배당소득을 분리과세하도록 개편한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이 눈에 띈다. 배당성향이 높은 기업의 배당금을 과표 구간별로 최대 30% 세율로 분리과세하는 방식은 자본시장의 유동성과 기업의 이익환원 구조를 동시에 고려한 조치다. 기업의 배당정책이 단기 시가 변동보다 안정적 현금흐름 중심으로 이동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개정된 소득세법과 부가가치세법, 법인세법은 각각 교육비 세액공제 확대, 미디어콘텐츠창작업에 대한 현금매출명세서 제출 의무 부과, 가공세금계산서 가산세율 상향, 법인세율 상향 구간 확대 등을 포함하며 기존 공제체계와 납세 패턴에 변화가 예상된다. 법인세 전 구간을 1%p씩 올린 조정은 중장기적으로 재정수입을 확보하는 동시에 기업의 비용 구조에 일정한 부담을 분산시키는 방향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다양한 제정·개정 법률안이 포함된 이번 본회의에서 특히 주목되는 것은 산업·의료·청소년·성폭력·항공안전 등 공공 영역 전반을 재편하는 법안들이 병렬적으로 의결되었다는 점이다. 국내 석유화학산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한 특별법은 공급과잉과 탄소중립 대응 비용 증가로 수익성이 떨어지는 산업 생태계를 구조전환 관점에서 바라본 첫 입법 성과라는 의미가 있다. 정부와 지자체가 사업재편 승인기업에 대한 규제 특례를 부여하고 국가 연구개발 우선지원 및 기술료 감면까지 가능해지면서 기존 단일시설 중심의 대규모 공정산업이 점진적 전환 국면을 맞게 될 것으로 보인다. 기업결합심사 단축과 정보교환 허용 범위 확대는 경쟁법과 산업정책의 균형을 조정하는 조치로, 업계의 사업구조 개편 압력이 높아지는 시점과 맞물렸다.
지역의사 양성과 장기 정착을 목표로 한 법률안도 신규 제정됐다. 지역 공공의료기관에서 10년간 의무복무하는 ‘복무형 지역의사’ 제도는 의료 인력의 수도권 집중 문제를 구조적으로 완화하려는 정책적 시도이다. 지역 출신 고교생을 우선 선발해 장학금을 지원하고, 의무복무 불이행 시 면허정지·취소 절차를 단계별로 적용하는 구조는 강한 정책 신호를 포함한다. 지역 기반 필수의료 공백 현상이 지속되는 가운데, 공급자 확보에 규제적 기조를 부분적으로 도입한 셈이다. 다만 의무복무 강제 규정이 실제 정착률을 높일 수 있는지 여부는 의료현장과의 제도적 조정이 필수적이라는 지적도 예상된다.
비대면진료의 법제화는 감염병 확산 상황을 넘어 상시제도화 필요성이 제기된 흐름을 반영한다. 동일 의료기관의 동일 증상에 대한 일정 시기 내 대면기록이 존재하거나 거주지역과 의료기관이 동일지역인 경우 등 조건부 허용 구조는 의료 접근성 확대와 안전성 확보 사이의 균형을 고려한 설계다. 전자처방전 전달시스템의 구축·위탁 규정, 마약류 및 오남용 우려 약물 처방 제한, 환자의 타인 정보 도용 금지 조항 등이 포함되며, 비대면진료가 새로운 의료시장으로 자리 잡기까지 필요한 안전장치가 구체화됐다.
청소년·여성 보호 영역에서도 다수의 법안이 개정됐다. 합성니코틴 전자담배를 담배 범주에 포함한 담배사업법 개정안은 규제 사각지대를 제거한 조치다. 광고·온라인판매·제세부담금 규제가 일괄 적용되며 청소년 흡연 유입 경로를 차단하는 효과가 예상된다. 전자장치 부착자의 접근금지 위반 사실을 피해자에게 직접 통지하도록 한 전자장치부착법 개정은 스토킹 피해자의 실시간 보호조치 강화를 목표로 한다. 사기죄 법정형을 대폭 상향한 형법 개정안은 보이스피싱·전세사기 등 최근 피해 규모가 큰 범죄의 억제 효과를 노린 조치로, 기존 범죄구조의 지능화 흐름을 고려한 형사정책적 대응이다.
여성폭력방지기본법의 개정은 언론보도의 권고기준과 이행 방안을 법에 명문화한 점에서 미디어 관행과 직접 맞닿은 조치다. 사건 보도방식이 2차 피해로 이어진다는 비판이 이어져 왔던 만큼 보도 기준의 도입은 언론 자율규제 논의를 촉발할 가능성이 있다. 청소년복지 지원법 개정은 고립·은둔 청소년 지원 근거를 구체화하고, 가정 밖 청소년이 쉼터를 이용할 때의 안전 의무를 명시해 취약 계층 보호체계를 개선했다. 아동·청소년성보호법 개정으로 ‘알면서’ 문구가 삭제되고 친족에 의한 성범죄 공소시효가 폐지되면서 수사·기소 과정의 입증 부담을 줄이고 피해자 보호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법체계가 조정되었다.
항공안전법 개정은 무인비행장치 규제를 정비한 사례다. 비행규칙 적용 대상을 기관·단체까지 확대하고 공해상에서 국제협약 준수 의무를 명시하면서 드론 활용이 늘어나는 재난 대응 환경에 법적 기반을 마련했다. 비행금지구역에서의 무인자유기구 비행을 사물 무게와 무관하게 금지한 점은 접경지역 위험사례에 대한 대응 성격이 강하다. 재난 대응 과정에서 국가·지자체가 운영하는 무인비행장치에 특례를 부여한 조항도 포함되어 현장 대응력 제고를 목표로 한다.
이번 본회의 처리 안건은 재정·조세·산업·사회보호·안전 정책 전반을 연계적으로 조정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예산안과 세입 관련 법률안이 동시에 조정되며 재정 구조가 연동되고, 산업전환·의료접근성·청소년보호 등 분야별 제도 설계가 제정법과 개정법 형태로 나란히 처리되었다. 개별 정책이 아니라 구조 단위의 조정이 이루어진 셈이며, 2026년 정책환경을 규정할 입법 기반이 빠르게 정비됐다. 정책 간 상호작용이 큰 시점에서 국회의 대규모 입법 처리는 향후 집행부의 세부 설계와 현장안착 과정에서 의미 있는 기준점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