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 추천 이사 ‘중임’ 놓고 법정 다툼… “관행·정관 위반 없다” 원고 패소
추천권은 인정하되 기속력은 없다는 판단… 중임 전 의사 확인 의무도 부정
재단법인 B가 2023년 11월 정기이사회에서 원고 교단의 추천을 받아 선임된 이사 C을 다시 중임한 결의의 효력을 둘러싸고 벌어진 소송에서 서울중앙지방법원은 2025년 9월 5일 원고의 청구를 기각했다. 교단이 추천한 인사를 이사로 선임해야 한다는 원고 측 주장은 법적 기속력이 없다고 보았고, 중임 결의 당시 교단의 의견을 다시 확인할 의무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재단의 이사 구성에 대한 권한과 교단 추천권의 관계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지가 쟁점의 핵심이었다.
판결문에 따르면 원고는 전국의 D교회가 모인 교단이고 피고는 기독교 성서의 번역·출판·반포를 목적으로 하는 비영리 재단이다. 피고는 2018년 원고의 추천을 받아 C을 교단 대표인 이사로 선임했고, 이후 2020년 11월과 2023년 11월 두 차례에 걸쳐 C을 중임했다. 이에 대해 원고는 2024년 11월 교단 회의를 통해 C을 교체하고 S을 새로운 교단 대표 이사로 파송하기로 결의한 뒤 피고에 교체를 요청했다. 그러나 피고는 “사임이나 정당한 해임절차 없이 교체는 불가하다”는 입장을 유지했다. 결국 원고는 2023년 11월 30일 이사 C의 중임 결의 자체가 무효라고 주장하며 소송을 제기했다.
법원은 먼저 피고 정관이 규정한 이사 선임 구조를 검토했다. 피고의 이사 선임 권한은 이사회에 있고, 전체 이사 중 1명은 원고 교단 대표를 선임하도록 정하고 있으나 교단 대표를 누구로 정할 것인지에 관한 세부 기준은 존재하지 않는다. 법원은 이 조항의 취지가 교단의 의사를 반영하기 위한 것이라는 점에는 동의하면서도, 추천권을 법적으로 인정하더라도 그 추천에 피고 이사회가 반드시 기속될 의무까지 발생하지는 않는다고 설명했다. 즉, 교단은 자신이 대표로 지정한 인물을 피고에 추천할 권한이 있으나, 피고는 그 인물을 심사해 선임할지 여부를 결정할 재량을 가진다는 판단이다.
그러나 법원은 이 재량이 ‘역추천’까지 허용하는 것은 아니라고 보았다. 교단이 추천하지 않은 인물을 피고가 임의로 원고 대표라 간주해 이사로 선임할 수 없으며, 추천권 자체의 의미는 여전히 유지된다는 점을 명확히 했다. 그럼에도 이 추천권은 어디까지나 선임 과정에서 참고되는 요소이며, 법적으로 피고의 의사결정을 구속하는 장치는 아니라는 점에서 원고 측 주장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쟁점은 이어 ‘중임’ 절차로 넘어갔다. 원고는 중임 역시 새로운 선임과 동일한 성격을 가지므로 교단의 사전 확인이 필수라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정관 어디에도 중임 시 교단 의사를 재확인해야 한다는 규정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오히려 피고는 약 20년 동안 교단 대표 이사를 중임할 때마다 교단에 별도의 추천 의뢰를 하지 않는 관행을 유지해왔고, 원고를 포함한 가맹 교단 중 어느 곳에서도 이 관행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 적이 없었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재판부는 특히 원고의 ‘묵시적 동의’를 강조했다. 원고는 2018년 C을 추천한 뒤 2020년 중임, 2023년 중임에 이르기까지 C의 교단 대표 자격에 대해 단 한 차례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그동안 C이 피고 이사로 활동해온 사실은 원고가 모든 일정과 절차를 알고 있었음에도 특별한 문제를 제기하지 않은 것으로 평가되었고, 이는 원고가 중임 절차에도 사실상 이견이 없었다는 해석으로 이어졌다. 원고가 2024년 12월 뒤늦게 교체를 요청한 것은 이미 중임 결의로 새 임기가 시작된 이후의 조치였으며, 이는 추천권을 임의로 철회한 것에 불과해 기존 결의의 효력을 소급적으로 무효화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이번 사건에서 법원은 피고가 원고 교단 대표에 대한 추천 의사를 다시 확인할 의무가 없다는 점을 명확히 했다. 다만 판결문 말미에서 “향후 C의 임기가 만료되는 2027년 4월 이전에 새로운 중임 결의를 할 경우 원고의 추천 의사를 다시 확인해야 할 여지가 있다”고 언급해, 중임 이후 교단의 의사 철회가 명확히 확인된 상황에서는 관행보다 교단 의사가 우선 고려될 수 있음을 제한적으로 시사했다.
이번 판결은 비영리 재단의 이사 구성 과정에서 추천권과 선임권이 어디까지 영향을 미치는지, 그리고 오랜 관행이 법적 안정성에 어떤 역할을 하는지에 대한 기준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추천권을 협조적 절차로만 축소하지 않으면서도, 추천권이 곧바로 피고 이사회의 선임권을 제약하는 장치가 아님을 확인함으로써, 교단과 재단 간 권한 관계의 경계를 분명히 한 셈이다. 명시적 규정이 부재한 영역에서는 장기간의 운영 관행과 묵시적 동의가 법적 판단의 기준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도 이번 판결에서 다시 확인됐다.
재판부는 결론적으로 “이사회 결의가 정관 제7조 제1항을 위반해 무효라고 볼 수 없다”며 원고 청구를 기각했다. 이번 사건은 비영리기관의 이사 구성 과정에서 교단의 추천과 재단의 선임 권한이 조화되는 방식에 관한 분쟁이었으며, 판결은 양자의 관계를 제한적 균형 속에서 재구성한 결과로 읽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