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률 문학관 Ep.03 아버지의 보험금
[PROLOGUE]
보험금은 사람을 살리라고 만든 제도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그 돈이 누군가의 죽음보다 먼저 떠오른다.
아버지는 말이 없었다.
아니, 말을 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그 침묵 속에서,
누군가는 계산기를 두드리고 있었다.
[STORY]
1부 — 재혼
민수가 아버지의 재혼 소식을 들은 건 전화 너머였다.
“아들, 나 결혼한다.”
65세. 어머니가 돌아가신 지 3년 만이었다. 민수는 잠시 말을 잃었다가, 겨우 “축하해요”라고 답했다. 아버지는 웃었다. 오랜만에 듣는 밝은 목소리였다.
새어머니의 이름은 정미란. 58세. 성당에서 만났다고 했다. 얼굴은 결혼식 날 처음 봤다. 단정한 인상이었다. 그 옆에는 스물여섯 살 아들이 서 있었다. 이복동생이라고 불러야 할 사람. 민수는 어색하게 악수를 나눴다.
“형님, 잘 부탁드립니다.”
동생은 공손했다. 그러나 눈빛은 차가웠다.
아버지는 행복해 보였다. 그게 전부였다. 민수는 부산으로 돌아갔다. 일이 바빴고, 아버지는 서울에 있었다. 일 년에 한두 번, 명절에나 얼굴을 보는 사이가 되었다.
2부 — 전화
그해 가을, 아버지가 쓰러졌다.
뇌졸중이었다. 민수는 병원으로 달려갔다. 아버지는 침대에 누워 있었다. 오른쪽 팔다리가 마비되었고, 말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의사는 말했다.
“재활 치료가 중요합니다. 꾸준히 하시면 회복 가능성이 있어요.”
민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정미란은 달랐다.
“입원은 부담스러워요. 집에서 제가 돌볼게요.”
“하지만 재활 치료는 병원에서 해야…”
“괜찮아요. 요양보호사 불러서 집에서 할게요.”
민수는 불안했지만, 새어머니의 눈빛은 단호했다. 아버지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저 천장만 바라볼 뿐이었다.
민수는 부산으로 돌아가야 했다. 회사에서 프로젝트가 막바지였다. 그는 일주일에 한 번씩 전화를 걸었다.
“아버지 어떠세요?”
“괜찮아요. 잘 드시고 계세요.”
정미란의 목소리는 늘 밝았다. 그러나 아버지와는 통화할 수 없었다. “아직 말이 어려우세요”라는 대답만 돌아왔다.
한 달이 지나고, 두 달이 지났다. 민수는 점점 불안해졌다. 그러나 거리는 멀었고, 일은 바빴다. 그는 자신을 다독였다. ‘새어머니가 잘 돌보고 계실 거야.’
3부 — 장례식장
그해 겨울,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전화를 받은 건 새벽이었다. 정미란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아버님이… 방금 돌아가셨어요.”
민수는 새벽 기차를 타고 서울로 올라갔다. 장례식장에는 이미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관 앞에 아버지의 사진이 놓여 있었다. 웃고 있는 얼굴. 민수는 그 앞에 무릎을 꿇고 울었다.
빈소 정리를 하던 중, 민수는 아버지의 옷을 챙기다가 멈췄다.
등에 큰 욕창이 있었다. 붉게 짓무른 자국. 오랫동안 누워 있었던 흔적이었다. 팔다리는 앙상했다. 뼈만 남은 것 같았다.
“이게 뭡니까?”
민수는 정미란을 불렀다. 그녀는 고개를 돌렸다.
“누워만 계셔서 그래요. 제가 최선을 다했어요.”
“욕창은 이렇게 심하게 생기지 않아요. 제대로 돌보지 않았다는 증거 아닙니까?”
“뭐라고요?”
정미란의 목소리가 날카로워졌다. 이복동생이 끼어들었다.
“형님, 어머니가 얼마나 고생하셨는데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민수는 입을 다물었다. 그러나 가슴속에서 무언가가 타오르기 시작했다.
4부 — 보험금
장례를 치른 지 일주일 후, 민수는 아버지의 서류를 정리하다가 보험증권을 발견했다.
5억.
수령인은 배우자 정미란과 아들 이준호. 민수의 이름은 없었다. 아버지가 재혼 후 수령인을 변경한 것이었다.
민수는 손이 떨렸다. 보험금 자체가 문제는 아니었다. 그러나 욕창, 영양실조, 그리고 병원 치료를 거부했던 새어머니의 태도. 모든 것이 하나로 이어졌다.
민수는 요양보호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버지를 돌봤던 김 선생이었다.
“선생님, 우리 아버지 상태 어떠셨어요?”
“…사실은요.”
김 선생의 목소리는 조심스러웠다.
“부인분이 약을 제대로 안 드렸어요. 병원 가자고 해도 ‘괜찮다’고만 하시고. 제가 여러 번 말씀드렸는데…”
“뭐라고요?”
“그리고 식사도 제대로 안 챙겨주셨어요. 제가 있을 때만 밥을 주시고. 나중엔 제 출근 시간도 줄이라고 하셨어요.”
민수는 전화를 끊고 멍하니 앉아 있었다. 손에 보험증권이 쥐어져 있었다. 5억. 아버지의 목숨값.
5부 — 진실
민수는 증거를 모으기 시작했다.
요양보호사의 진술서, 병원 진료 기록, 약국 처방전. 아버지는 뇌졸중 후 한 번도 병원에 가지 않았다. 재활 치료는커녕, 기본적인 진료조차 받지 못했다.
민수는 변호사를 찾아갔다.
“이건 방치입니다. 고의적인 방치.”
변호사는 서류를 훑어보며 말했다.
“부작위 살인으로 볼 여지가 있습니다. 배우자는 보증인 지위에 있어요. 생명을 보호할 의무가 있는 사람이죠. 그런데 치료를 거부하고 방치했다면, 이건 살인입니다.”
“정말로… 고소할 수 있습니까?”
“네. 그리고 보험금도 환수 청구할 수 있습니다.”
민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손이 떨렸지만, 이번엔 분노가 아니라 결심 때문이었다.
그는 정미란을 고소했다.
6부 — 법정
재판은 6개월 동안 이어졌다.
검찰은 정미란을 부작위 살인 혐의로 기소했다. 요양보호사가 증인으로 나왔고, 의사는 “적절한 치료를 받았다면 생존 가능성이 높았다”고 증언했다.
정미란은 끝까지 부인했다.
“저는 최선을 다했습니다. 제가 뭘 어쩌라는 겁니까?”
그러나 증거는 명확했다. 약 처방 기록, 병원 진료 거부, 욕창, 영양실조. 그리고 보험금 5억.
판사는 판결문을 읽었다.
“피고인은 배우자로서 생명 보호 의무를 방기하였으며, 보험금을 목적으로 고의적으로 치료를 방치한 것으로 판단된다. 형법 제250조 살인죄를 적용, 징역 8년을 선고한다.”
정미란은 그 자리에서 무너졌다. 이준호는 고개를 숙인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민수는 방청석에 앉아 있었다. 아무 감정도 느껴지지 않았다. 정의는 구현되었다. 그러나 아버지는 돌아오지 않았다.
그는 법정을 나서며 하늘을 올려다봤다. 겨울 하늘은 차갑고 맑았다.
[EPILOGUE]
법은 묻는다.
당신은 살릴 수 있었는가.
침묵은 때로,
가장 잔인한 범죄가 된다.
그리고 사람은 안다.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이 있다는 걸.
그것은 시간이고,
사랑이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사람이다.
[AFTER STORY — 법으로 읽는 인생]
1️⃣ 서두
이야기가 끝나고, 법정에 남은 것은 무엇인가.
정의는 구현되었지만, 아버지는 돌아오지 않았다.
법은 관계를 정리하지만, 상실은 영원히 남는다.
2️⃣ 핵심 법조항
형법 제250조 (살인죄)
“사람을 살해한 자는 사형,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
형법 제18조 (부작위범)
“위험의 발생을 방지할 의무가 있는 자가 그 의무를 이행하지 아니하여 결과를 발생시킨 경우에도 처벌한다.”
보증인 지위란?
법률상 또는 계약상 타인의 생명·신체를 보호할 의무를 지는 사람을 말한다. 배우자, 부모, 간병인 등이 이에 해당한다. 이들이 고의로 보호 의무를 방기하여 사망에 이르게 한 경우, 부작위 살인으로 처벌받는다.
3️⃣ 예외 및 실제 사례
실제 판례: 2019년 수원지방법원
뇌출혈로 쓰러진 남편을 방치하고 병원 치료를 거부한 아내에게 징역 7년이 선고되었다. 법원은 “생명을 구할 수 있었음에도 보험금을 목적으로 방치한 것은 살인”이라고 판단했다.
보험금 환수
부작위 살인으로 유죄가 확정되면, 보험금 수령인 자격이 박탈된다. 민법 제1004조에 따라 상속결격 사유에 해당하며, 이미 지급된 보험금도 환수된다.
간병 방치와 학대의 경계
단순히 간병이 미흡한 것과 ‘고의적 방치’는 다르다. 법원은 다음을 기준으로 판단한다:
- 경제적 능력이 있었는가
- 병원 치료를 의도적으로 거부했는가
- 보험금 등 경제적 이득이 있었는가
- 사망 전후 행동이 비정상적이었는가
4️⃣ 교훈 정리
“법은 침묵을 용서하지 않는다.”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 누군가의 생명이 방치되어서는 안 된다. 보증인 지위에 있는 사람은 적극적으로 생명을 보호할 의무가 있다. 그 의무를 저버린다면, 법은 그것을 살인으로 본다.
보험금은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이들을 위로하기 위한 제도다. 그러나 그것이 누군가의 죽음을 앞당기는 동기가 되어서는 안 된다.
5️⃣ 요약표
| 법조항 | 내용 | 적용 사례 |
|---|---|---|
| 형법 제250조 | 살인죄 | 부작위 살인 포함 (방치로 인한 사망) |
| 형법 제18조 | 부작위범 | 보증인 지위에 있는 자의 의무 불이행 |
| 보증인 지위 | 생명 보호 의무자 | 배우자, 부모, 간병인 등 |
| 민법 제1004조 | 상속결격 사유 | 고의로 피상속인을 사망케 한 자 |
| 보험금 환수 | 범죄로 인한 이득 박탈 | 살인죄 확정 시 보험금 수령 불가 |
🎧 마무리
“법은 관계를 정리하고,
마음은 관계를 남긴다.”
민수는 정의를 얻었지만,
아버지를 잃었다.
그리고 우리는 안다.
어떤 것은 법으로도,
돈으로도,
되돌릴 수 없다는 것을.
〈 법률문학관〉
“이야기로 배우는 인생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