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리적 이유 없는 감자, 배임 성립 어려워”… 대법, 특정경제범죄법 위반 일부 무죄 확정
2025년 10월 16일, 대법원 1부(주심 노태악 대법관)는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위반(배임) 등 혐의로 기소된 전직 경영진과 관련자들에 대해 일부 유죄, 일부 무죄를 확정했다.
이 사건은 기업의 감자(減資) 과정에서 주식가치를 임의로 높게 평가하고, 불필요한 자산을 유출해 회사에 손해를 끼쳤다는 혐의로 사회적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대법원은 “감자 결정 자체가 회사 재무상태에 구체적 위험을 초래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며 배임죄 성립을 인정하지 않았다.
사건의 중심에는 △△△△아트 사업을 시행한 관련 법인과, 이를 둘러싼 특수관계 회사 간의 거래가 있었다. 피고인들은 자신들이 소유하거나 관계된 회사의 미술품을 펀드 시행사가 매입할 수 없는 구조임에도 불구하고, 제3자를 통하는 형식으로 매입하게 한 혐의로 기소됐다. 검찰은 이를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배임 행위’로 판단했지만, 재판 과정에서 그 실질적 손해 입증이 핵심 쟁점으로 떠올랐다.
대법원은 먼저 배임죄의 성립 요건에 대해 명확한 판단 기준을 제시했다.
재판부는 “자본금을 감소시킬 합리적 이유가 없고, 그로 인해 회사의 통상적인 채무 변제가 어려워지는 등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위험이 초래된다면 배임이 될 수 있다”고 전제했다.
그러나 이번 사건에서 문제된 유상감자(有償減資) 행위는 그러한 요건을 충족하지 못했다고 보았다.
즉, 감자 과정에서 자산 유출이 있었다 하더라도 그것이 곧바로 회사의 실질적 손해로 이어졌다고 단정할 수 없으며, 피고인들이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의무를 위반했다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또한 대법원은 피고인들이 자신 또는 계열사에 허위급여나 허위용역비를 지급하여 부외자금을 조성했다는 횡령 혐의와 관련해서는 원심의 판단을 그대로 인정했다.
피고인 1과 3, 5에 대해서는 허위 지급을 통한 자금 유용이 실제로 있었던 점이 인정돼 유죄가 확정되었다.
반면 피고인 2와 4에 대해서는 공모관계나 손해 인식이 명확하지 않아 무죄가 유지됐다.
즉, 재판부는 기업의 재무 판단과 형사적 책임의 경계를 엄격히 구분한 것이다.
이번 판결은 기업의 경영 의사결정이 형사법상 배임으로 평가받기 위해서는 단순한 경영상의 판단 오류나 손해 발생 가능성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재판부는 “배임은 경영 판단의 영역과 구별되어야 하며, 결과적 손해가 아니라 의도된 이익 편취가 입증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법조계는 이번 판결이 경영판단의 원칙(Business Judgment Rule) 을 명문화한 의미 있는 사례로 평가하고 있다.
이는 기업의 감자나 자산처분 결정이 사회적 비판을 받더라도, 형사책임으로 이어지려면 고의와 실질적 손해의 입증이 필요함을 보여준다.
결국 대법원은 검사와 피고인의 상고를 모두 기각하며,
“원심이 자유심증주의의 한계를 벗어나거나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없다”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일부 배임 혐의는 무죄로, 나머지 업무상 횡령 등은 유죄로 확정됐다.
재판부는 이번 판결의 의의에 대해 “자본금 감자나 재무활동이 곧바로 배임으로 연결될 수 없으며, 회사의 재산보호 의무 위반이 구체적으로 입증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