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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사·범죄 이슈

“사고 난 줄 몰랐다”던 화물차 운전자… 法 “미필적 인식 있었다, 도주치상 유죄”

피해자 중상 입었는데 차량만 확인 후 떠나… 법원 “도주 고의 부정 못 해”

어둠이 내린 고속도로, 짙은 트럭 그림자가 빠른 속도로 차선을 바꿨다.
그 순간, ‘쿵’ 하는 소리와 함께 트럭 조수석 쪽이 흔들렸다. 승용차 한 대가 휘청이며 옆 차선으로 밀려났다. 화물차 운전자는 잠시 당황했지만, “별일 아니겠지”라며 속도를 늦추지 않았다. 950미터를 더 달린 뒤 갓길에 정차해 트럭 외관을 훑어본 그는 “이상 없다”고 판단하고 그대로 떠났다. 그러나 그 뒤, 충돌당한 승용차 운전자는 방호벽에 부딪혀 중상을 입었다.

이날의 운전자는 결국 ‘도주치상’ 혐의로 법정에 섰다.

“사고 인식 못 했다”… 항소한 운전자

피고인 A씨는 평택지원 1심에서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고 항소했다.
그는 “사고 발생 자체를 인식하지 못했으며, 종합보험에 가입되어 있어 도주할 이유가 없었다”고 주장했다. 단지 도로에 무언가를 밟은 듯 차량이 휘청거려, 안전지대에서 차량만 확인했을 뿐이라는 항변이었다.

그러나 2심 재판부는 그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법원은 “피고인은 사고를 미필적으로나마 인식했음에도 피해 확인이나 신고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며 도주의 고의를 인정했다.

“확정적 인식이 없어도, 외면한 순간 도주로 본다”

법원은 우선 ‘사고 인식의 정도’에 대한 대법원 판례를 근거로 들었다.
“사고로 피해자가 사상을 당한 사실을 확정적으로 알지 못하더라도, 그 가능성을 짐짓 외면한 채 현장을 떠났다면 미필적 인식이 있다”고 한 것이다.
즉, 사고 가능성을 느끼고도 ‘설마 아니겠지’ 하고 외면했다면, 이는 곧 ‘도주의 고의’로 본다는 취지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차선을 변경하며 피해자 차량을 충격했을 당시 후사경을 통해 충분히 확인할 수 있었음에도 이를 무시했다는 점을 주목했다.
또, 차량 전방 조수석 부분의 범퍼가 크게 파손돼 있었고, 흰색 페인트가 묻어 있었다. 피해자 차량의 색상 역시 흰색이었다. 법원은 “피고인이 현장에서 차량 상태를 직접 확인했음에도, 피해 사실을 몰랐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피해자는 중상, 차량은 폐차”… 미필적 고의로도 중한 책임

사고 당시 블랙박스 영상에는 트럭이 승용차를 스치듯 충격한 뒤, 피해 차량이 중심을 잃고 3차로로 밀려가 방호벽을 들이받는 장면이 담겨 있었다. 피해자는 전치 12주의 상해를 입었고 차량은 전손 처리됐다.

법원은 “피고인은 화물차가 흔들릴 만큼의 충격을 느끼고도 피해 차량의 상태를 확인하지 않았으며, 112 신고 등 기본적인 조치도 하지 않았다”며, “고속도로에서 화물차와 승용차가 충돌할 경우 상대방이 중상을 입을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예견할 수 있었음에도 그대로 현장을 이탈했다”고 지적했다.

결국 재판부는 “피고인은 적어도 미필적으로 사고 발생을 인식하고 도주했다”고 결론지었다.

항소 기각… “진심 어린 사과도 없어”

양형에서도 법원은 단호했다.
피고인이 보험에 가입되어 있고, 동종 전과가 없으며, 미필적 고의로 보인다는 점은 유리한 정상으로 참작됐다. 그러나 그는 끝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았고, 피해자에게 사과나 배상조차 하지 않았다. 피해자는 중상으로 고통을 호소하며 피고인의 엄벌을 탄원했다.

이에 수원지방법원 제2형사부(재판장 김연하)는 “피고인은 사고 인식 가능성을 외면하고 현장을 떠났으며, 피해 회복 노력이 없다”며 항소를 기각했다.
원심 형량인 징역 1년 6개월이 그대로 확정됐다.

“사고 후 떠나는 순간, 책임은 더 커진다”

이 판결은 단순한 교통사고가 아닌 ‘사고 후 태도’의 중요성을 일깨운다.
법원은 “사고 직후 운전자가 피해자 구호 의무를 다하지 않으면, 결과의 경중과 무관하게 도주치상죄가 성립한다”고 명시했다.
“차를 멈춰 세우는 용기 하나가, 형사처벌과 인간적 책임을 가르는 경계선이 된다”는 메시지가 묵직하게 남는다.

이 기사는 수원지방법원 제2형사부 2024노1763 판결문(2025.8.27. 선고)을 바탕으로 사실관계를 유지하며 서사적으로 각색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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