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자냐, 사업주냐”… 법원, ‘형식보다 실질’ 강조하며 근로자 지위 인정
서울동부지법 “노무제공자라 하더라도 사용자의 지휘·감독 아래 있었다면 근로자”
서울의 한 의료기기 영업대리점에서 일하던 김모 씨는 수년간 ‘프리랜서’ 신분으로 일했다.
계약서상 그는 개인사업자였다. 하지만 실제로는 매일 정해진 시간에 출근했고, 매출 실적을 기준으로 상사의 지시를 받으며 근무했다.
그는 말한다.
“나는 늘 ‘사장님’이라 불렸지만, 실상은 회사의 직원이었다.”
김씨는 퇴직 후 회사를 상대로 근로자 지위 확인 소송을 제기했다.
명함에는 ‘영업대리인’이라 적혀 있었지만, 그는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라고 주장했다.
회사 측은 “본인이 자영업자로서 계약을 맺었고, 업무시간과 방식도 자유롭게 정했다”며 강하게 반박했다.
법원, “업무지시·성과관리·출퇴근 통제”… 실질적 종속관계 인정
서울동부지방법원 민사합의부는 김씨가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판결문에 따르면 김씨는 회사에서 정해준 시간에 출근했고, 영업 지역과 고객 리스트도 본사에서 지정받았다.
그의 실적은 매주 상사에게 보고됐으며, 목표 미달 시 ‘경고조치’가 내려졌다.
재판부는 “이러한 통제 구조는 자율적인 사업활동이라기보다 사용자의 지휘·감독 아래 이뤄진 근로에 가깝다”고 판단했다.
또한 김씨는 자신의 차량을 이용해 영업활동을 했지만,
유류비와 통신비 일부를 회사가 정액으로 지급했다.
법원은 이를 “회사가 업무 수행에 필요한 비용을 실질적으로 부담한 것으로, 독립된 사업자로 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특히 김씨가 매달 고정된 수수료를 지급받고, 다른 거래처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없었던 점 역시 ‘경제적 종속성’의 근거로 제시됐다.
회사 “성과 중심의 외주계약”… 법원 “계약명칭보다 실질이 우선”
피고 회사는 김씨와의 계약이 “성과급 중심의 외주용역”이며,
“영업 결과에 따라 수입이 달라지는 독립사업자 관계”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노무제공 관계의 실질을 종합적으로 살펴야 한다”며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법원은 “형식적으로는 위탁계약이라 하더라도,
업무 내용·시간·장소가 사용자에 의해 구체적으로 지정되고,
성과에 따라 평가·제재가 이뤄졌다면 근로자성을 인정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이와 함께 “업무용 차량·명함·근무시간 관리 등에서 회사의 통제력이 명확히 드러난다”고 덧붙였다.
“노동시장 경계 흐려진 시대”… 프리랜서와 근로자 사이의 회색지대
이번 판결은 최근 확산되는 플랫폼·프리랜서 근로형태에 중요한 선례로 평가된다.
특히 계약서상 ‘개인사업자’라는 이유만으로 근로자 지위를 부정할 수 없다는 법원의 입장을 다시 확인한 것이다.
노동법 전문가들은 이번 판결을 “형식보다 실질을 본 전형적 사례”로 분석하며,
“노무제공자의 경제적 종속성과 사용자의 지휘·감독 관계가 핵심 판단 요소로 자리 잡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는 향후 플랫폼 노동, 보험설계사, 학습지 교사 등 ‘특수형태근로종사자’ 관련 분쟁에도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사건 요약]
사건명: 근로자지위확인 등
사건번호: 서울동부지방법원 2021가합105963
원고: 김○○
피고: ○○의료기기 주식회사
주요 쟁점: 프리랜서 영업대리인이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인지 여부
결론: 근로자 지위 인정, 원고 일부 승소
판결선고: 2023년 11월 14일
이 기사는 서울동부지방법원 2021가합105963 판결문을 바탕으로 사실관계를 유지하며 서사적으로 각색한 기사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