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이뤘지만, 돈은 남았다”…법원, 결혼중개업체 ‘성혼사례금’ 일부 감액 판결
서울 한복판, 여름의 끝자락.
법정 안은 잠잠했지만 공기는 묘하게 묵직했다. ‘사랑의 결실’을 두고 법정 다툼이 벌어진 것이다.
서울중앙지방법원은 결혼중개업체 A주식회사가 결혼 회원 B씨를 상대로 제기한 성혼사례금 청구 소송에서 “지급의무는 인정되지만 금액은 감액해야 한다”며 1,200만 원만 인정했다. 사랑의 결실 뒤에 남은 ‘계약의 무게’가 법정에서 계산된 셈이다.
■ 사랑에서 소송으로
이 사건의 시작은 몇 년 전, 한 결혼중개업체의 상담실이었다.
B씨의 어머니는 “딸이 좋은 사람을 만나 평생의 짝을 찾기를 바란다”며 가입비 600만 원과 성혼사례금 1,500만 원, 그리고 8개월 동안 세 번의 만남을 보장하는 계약서를 썼다.
A업체는 “성혼에 이르면 사례금을 받는다”는 문구를 명확히 계약서에 넣었다.
몇 달 후, B씨는 업체의 주선으로 남성회원 C씨를 만났다. 그 만남은 뜻밖의 성공이었다. 두 사람은 교제 끝에 결혼에 골인했다. 결혼식장엔 축복이 넘쳤고, 중개업체도 내심 뿌듯했다.
하지만 행복은 길지 않았다.
결혼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업체는 “약정된 성혼사례금 1,500만 원을 납부하라”며 청구서를 보냈다.
B씨는 놀랐다. “계약은 어머니가 했을 뿐, 나는 계약하지 않았다. 이 돈은 부당하다.”
이 한마디가, 사랑의 끝을 법정으로 끌어올렸다.
■ 법원의 눈은 계약서와 현실 사이에 있었다
법정에서 B씨는 완강했다. “어머니가 한 계약이지, 나는 사인하지 않았다.”
하지만 재판부는 달리 봤다.
B씨가 실제로 그 계약의 결과로 배우자를 만나 결혼까지 한 점을 근거로, “적어도 어머니가 한 계약을 추인했다고 봄이 상당하다”고 판단했다.
즉, 계약의 효력은 인정된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법원이 업체의 손을 그대로 들어준 것은 아니었다.
쟁점은 ‘성혼사례금 1,500만 원’이 과도한지 여부였다.
판사는 이 사건을 단순한 상거래로 보지 않았다.
“결혼중개 계약은 민법상 위임계약의 성질을 가진다”며, 대법원 판례(2012. 4. 12. 선고 2011다107900 판결)를 인용했다.
즉, 위임인이 얻는 이익, 업무 처리의 난이도, 중개업체가 투입한 노력, 가입비의 수준 등을 모두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재판부는 이렇게 말했다.
“성혼사례금 1,500만 원은 부당하게 과다하다.
계약의 성격과 당사자들이 부담한 비용, 원고의 노력 정도를 종합할 때
1,200만 원이 상당하다.”
■ ‘사랑의 가격’을 재단한 판결
이 판결은 결혼중개업체의 성혼사례금이 어디까지 정당할 수 있는지를 법원이 구체적으로 판단한 드문 사례다.
그동안 결혼중개업체들은 “성혼이 이루어지면 성공보수 개념으로 사례금을 받는다”는 관행을 유지해왔다.
그러나 이번 판결은 그 보수액이 신의성실 원칙에 반하거나 형평에 어긋날 정도로 과다하면 감액될 수 있다는 점을 명확히 했다.
한마디로, ‘사랑의 성공’에도 상한선이 있다는 것이다.
A업체는 “계약서에 명시된 금액”이라며 반발했지만, 법원은 “사랑의 성취와 상관없이 계약은 사회통념상 합리적이어야 한다”고 선을 그었다.
결국 B씨는 1,200만 원만 지급하면 됐고, 나머지 300만 원은 법이 ‘과하다고 본 사랑의 값’으로 날아갔다.
■ 법정 밖 이야기 — 계약의 그림자
이 판결은 결혼중개시장에 미묘한 파장을 던졌다.
고액 성혼사례금을 내세워 고급 이미지를 강조하던 일부 업체들은 “법원이 이제 금액을 따지기 시작했다”는 점에 긴장했다.
반면 소비자들은 “사랑에도 소비자의 권리가 있다”며 반색했다.
법률 전문가들은 이번 사건을 두고 “결혼중개 계약의 경제적 성격을 인정하면서도, 인간관계의 특수성을 감안한 절묘한 판결”이라고 평가했다.
계약은 유효하지만, 그 이행은 사람의 정(情)과 법의 형평(衡) 사이에서 조정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한 법조인는 이렇게 말했다.
“사랑을 돈으로 환산할 수 없다는 말은 여전히 진리입니다.
그러나 결혼중개라는 산업에서는 사랑에도 계약이 붙습니다.
이번 판결은 그 경계선을 정한 사례죠.”
■ 법이 말하는 ‘합리적인 사랑’
서울중앙지방법원은 2025년 8월 14일 선고를 통해
“피고는 원고에게 1,200만 원 및 이에 대한 이자를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나머지 청구는 모두 기각됐으며, 소송비용은 20%는 원고, 80%는 피고가 부담하기로 했다.
결국 이 소송은 누가 옳고 그르냐의 문제가 아니었다.
사랑이 계약의 형태를 띠는 순간, 법은 그것을 ‘상품’처럼 다뤄야 했다.
그리고 그 상품이 지나치게 비싸다면, 법은 “사랑도 합리적이어야 한다”고 속삭인다.
결혼식장에서의 ‘사랑합니다’는 선언이,
법정에서는 ‘지급합니다’로 바뀌었다.
그러나 어쩌면 이 두 문장은 — 모두 약속의 다른 형태일지도 모른다.
사건 요약
사건명: 성혼사례금
사건번호: 서울중앙지방법원 2024가소1674696
선고일: 2025년 8월 14일
결과: 성혼사례금 1,500만 원 중 1,200만 원만 인정
담당 판사: 이건배
*이 기사는 서울중앙지방법원 2024가소1674696(성혼사례금) 판결문을 바탕으로 사실관계를 유지하며 서사적으로 각색한 기사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