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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속 법률

[법률문학관]EP02〈마지막 통장〉

(이야기로 배우는 인생법 – 유류분 분쟁편)


[PROLOGUE]

죽음은 끝이 아니다.
남겨진 사람들에겐,
그 뒤의 정산이 남는다.
사랑이 돈으로 계산되는 순간,
가족은 타인이 된다.

은행 창구에 놓인 통장 한 권,
그것이 한 집안의 평화를 무너뜨렸다.


[STORY – 1부 / 아버지의 비밀 통장]

그날 아침,
장남 정수는 아버지의 방 서랍에서
묵은 봉투 하나를 발견했다.
안에는 통장과 도장이 들어 있었다.
잔액은 2억 3천만 원,
예금주는 아버지였지만
통장은 막내딸 은주의 이름으로 되어 있었다.

정수는 한참 그 통장을 바라보다가
천천히 숨을 들이마셨다.
“아버지가 이 돈을 왜 은주 이름으로 넣었을까…”

그날 저녁, 세 남매가 오랜만에 한자리에 모였다.
정수, 둘째 영수, 그리고 막내 은주.

은주는 고개를 숙인 채 말했다.
“아버지가 병원비 도와주신다고 제 이름으로 넣으셨어요.”
정수는 날선 눈빛으로 물었다.
“그게 ‘보관’이야, ‘증여’야?”
은주는 한참을 망설였다.
“…그땐, 그냥 아버지가 주신 줄 알았어요.”

정수의 입가에 미묘한 미소가 걸렸다.
“그렇다면 이건 상속재산이야.”
그 말은 폭탄처럼 떨어졌다.


[STORY – 2부 / 유산의 분배]

아버지는 유언장을 남기지 않았다.
남은 건 시골집 한 채, 소액의 예금,
그리고 그 통장뿐이었다.

정수는 말했다.
“법대로 하자.
아버지 재산은 3등분.”

영수는 계산기를 두드렸다.
“근데 은주 통장도 포함이야.
그거 아버지 돈이잖아.”

은주는 고개를 저었다.
“아버지가 제게 직접 주신 거예요.
‘너 아니면 내가 못 버텼다’고 말씀하셨어요.”

정수는 탁자를 두드렸다.
“그럼 우린 뭐야?
효도 안 했다고 상속에서 빠지라는 거야?”

은주는 대답하지 못했다.
그날 이후, 세 남매는 서로의 번호를 지웠다.
남은 건 혈연이 아닌 계산뿐이었다.


[STORY – 3부 / 변호사의 말]

며칠 후, 정수는 변호사 사무실을 찾았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막내한테만 돈을 줬습니다.
이거 돌려받을 수 있죠?”

변호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가능합니다.
유류분 반환청구권이라는 게 있습니다.”

“유류분…?”
“피상속인이 일부 가족에게 재산을 몰아준 경우,
다른 상속인은 일정 지분을 돌려달라 청구할 수 있죠.”

정수의 표정이 환해졌다.
“그럼 이 통장도 해당되나요?”
“그 돈이 정말 아버지 소유였다는 걸 증명할 수 있다면, 그렇습니다.”

정수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증명이라면, 통장 사본이 있습니다.”
그의 눈빛은 이미 가족이 아닌 소송의 눈빛이었다.


[STORY – 4부 / 막내의 입장]

며칠 후, 은주는 우편함에서
‘내용증명’이라는 붉은 글씨를 발견했다.
보낸 사람은 정수였다.

그날 밤, 은주는 어머니의 영정 앞에 앉았다.
오래된 수첩을 꺼내들었다.
아버지의 필체가 남아 있었다.

“은주야,
네가 간병비를 대신 냈으니,
내가 조금이라도 돌려주마.
내 명의로 하면 세금이 많다 하여
네 이름으로 넣는다.”

은주는 손끝으로 글자를 천천히 따라 썼다.
‘내 이름으로 넣는다’ —
그 문장이 아버지의 마지막 보호였다.

그녀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아버지, 전 돈보다 이 싸움이 더 무서워요.”


[STORY – 5부 / 법정의 공기]

법정의 공기는 냉랭했다.
정수는 변호사 옆에,
은주는 홀로 앉아 있었다.

판사가 물었다.
“이 통장 잔액 2억 3천만 원의 출처는?”
은주가 대답했다.
“아버지가 주셨습니다.
제가 간병비를 대신 내드렸거든요.”

“그 근거는 있습니까?”
“이 수첩입니다.”

법정 안은 잠시 정적에 잠겼다.
판사는 오래된 수첩을 들여다보며 말했다.
“필체가 일정하고, 시점도 일관됩니다.
이건 단순한 증여가 아니라 ‘상환’으로 보이네요.”

그날 판결은 명확했다.

“이 예금은 증여가 아닌
간병비 상환 목적의 실질적 반환금으로 인정한다.
유류분 반환청구는 기각한다.”

정수는 아무 말 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법정 밖의 공기가 유난히 차가웠다.


[STORY – 6부 / 남겨진 것들]

며칠 후,
은주는 조용히 은행 창구 앞에 섰다.
손에 쥔 통장은 커피 얼룩이 남아 있었다.
아버지가 즐겨 쓰던 봉투에서 꺼낸 그대로였다.

“해지하시겠어요?”
직원의 물음에 은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잔액은 모두 기부하려고요.
아버지가 받은 사랑을 돌려드리고 싶어요.”

서류에 사인을 마친 뒤,
그녀는 봉투를 두 손으로 접어 들고
천천히 은행 문을 나섰다.

며칠 뒤, 지역신문 사회면 구석에
짧은 기사가 실렸다.

“고(故) ○○○ 유족, 요양병원 간병인 복지기금에 2억 원 기부.”
기부자: 막내딸 ○○○

정수는 그 기사를 휴대폰으로 보며
한참 동안 아무 말이 없었다.
그제야 깨달았다.
그가 원한 건 돈이 아니라
아버지의 인정이었다는 걸.

그날 밤,
은주의 휴대폰이 진동했다.

“ 은주야! 통장 정리했어?”

은주는 잠시 휴대폰을 바라보다가
짧게 답장을 보냈다.

“이제야 아버지가 웃으실 것 같아요.”

잠시 후, 정수에게서 답장이 왔다.

“그래… 아버지한텐
너 같은 딸이 있었구나.”

은주는 창가에 기대어 눈을 감았다.
창문 밖, 달빛이 식탁 위를 스쳤다.
그 식탁엔 여전히 아버지의 찻잔이 놓여 있었다.
그 밤,
가족의 마지막 잔향이
그녀 곁을 천천히 감싸고 흘러갔다.


[EPILOGUE]

사람은 떠나면 유산을 남긴다.
그 유산엔 돈도 있고, 감정도 있다.
하지만 법이 보호하는 건 돈이고,
감정을 지키는 건 인간뿐이다.

누군가에겐 마지막 통장이
돈의 상징이지만,
다른 누군가에겐
사랑의 흔적이다.


[AFTER STORY – 법으로 읽는 인생]

🎙️ 이야기가 끝나고, 현실의 법이 남는다.
오늘의 주제는 유류분 분쟁이다.


⚖️ 1️⃣ 유류분이란?

민법 제1112조
“유류분이란 피상속인이 생전 증여나 유증으로
상속인의 법정상속분을 침해한 경우,
그 침해분을 반환 청구할 수 있는 권리이다.”

즉, 부모가 한쪽 자녀에게만 재산을 몰아줬다면
다른 자녀는 법이 정한 최소한의 몫을 청구할 수 있다.
이게 바로 유류분 반환청구다.


⚖️ 2️⃣ 누가 청구할 수 있나?

  • 상속인(배우자, 자녀, 부모, 형제자매)만 가능
  • 청구기한: 상속 개시 및 침해 사실을 안 날로부터 1년 이내
  • 유류분 산정 시, 피상속인의 생전 증여·유증 내역이 모두 포함된다.

⚖️ 3️⃣ 이번 사례의 쟁점

은주의 통장이 ‘증여’인지 ‘상환’인지가 핵심이었다.
유류분 반환 대상은 무상 증여나 유증(일방적 이익)에 한정된다.
그러나 간병비 상환처럼 대가 관계가 명확한 거래
유류분 침해로 보지 않는다.

결국, 아버지의 수첩 한 줄이
그녀의 진심을 법적으로 증명한 셈이다.


⚖️ 4️⃣ 실무 팁 – 가족 간 분쟁을 예방하려면

  1. 유언장 작성 시 명확한 문구 사용
    • “간병비 상환 목적”, “보상금 성격” 등 구체적 이유 명시
  2. 공증 유언장 활용 (민법 제1066조)
    • 분쟁 시 법적 효력 강화
  3. 가족 간 금전 거래는 증빙 남기기
    • 이체 내역, 영수증, 간병 기록, 일지 등

💬 “마음의 증거도, 문서로 남길 때 보호받는다.”


⚖️ 5️⃣ 요약 표

항목내용
유류분상속인의 최소 보장분. 침해 시 반환 청구 가능.
법조항민법 제1112조~제1118조
청구기한상속개시 및 사실인지 후 1년 이내
예외대가성 거래(간병비 상환 등)는 제외
예방책명시적 유언장, 공증, 금전거래 기록 보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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