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토탈리콜’ 소환투표, 한국 ‘국민소환제’ 도입 논의에 경고음
대만에서 전례 없는 대규모 국회의원 소환투표가 시행되면서 우리 새 정부가 추진 중인 ‘국민소환제’에 대한 관심과 논란이 커지고 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9일 「토탈리콜: 대만 분점정부의 파행과 입법위원 소환투표」 보고서를 통해 “국민소환제가 정치적 책임성을 강화할 수 있지만 정당 간 대립의 도구로 악용되면 사회 갈등을 심화시킬 수 있다”고 경고했다.
지난 7월과 8월 대만에서는 전체 113명 입법위원 가운데 약 40%가 소환투표 대상에 올랐다. 7월 26일과 8월 23일 각각 24명과 7명의 의원에 대해 투표가 실시됐으며, 모두 국민당 소속 의원들이었다. 그러나 결과는 전원 부결로, 가장 높은 파면 찬성률을 기록한 신베이시 예위안즈 의원조차 찬성률이 48.6%에 머물렀다.
이번 사태는 지난해 총선 이후 여소야대 구도에서 비롯됐다. 라이칭더 총통이 이끄는 민진당은 3연속 집권에 성공했지만, 입법원 다수는 국민당·민중당이 차지했다. 야당은 의회 권한을 강화하는 법률을 일방 처리했고, 이에 반발한 시민사회가 ‘파랑새운동’을 조직하며 소환투표로 맞섰다. 헌법재판소 격인 사법원이 해당 법률의 위헌 판결을 잇따라 내리자 야당은 사법 기능을 사실상 마비시켰고, 정치 갈등은 격화됐다. 결국 소환투표는 시민단체와 정당이 서로를 겨냥하는 정치적 맞불로 변질됐다.
대만에서 소환투표를 발의하려면 선거구 유권자 1% 이상이 파면 제안서를 제출하고, 이어 10% 이상 서명을 받아야 한다. 2016년 법 개정으로 요건이 완화되면서 이번처럼 대규모 투표가 가능해졌다. 그러나 이번 투표는 대규모 동원에도 불구하고 파면 성과를 내지 못한 채 정치적 갈등만 드러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입법조사처는 보고서에서 “국민소환제는 국민의 정치적 효능감을 높이는 장점이 있지만, 정당 간 극한 대립이 심한 상황에서 남용되면 제도의 본래 취지가 훼손된다”며 남용 방지 장치 마련을 주문했다. 또 대만의 ‘반(反)대통령제’ 제도를 언급하며 “우리나라에서 논의되는 분권형 대통령제와 맞닿아 있다. 분점정부에서 통치력 확보가 어렵다는 점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지적했다.
이재명 대통령 역시 민주당 대표 시절 국민소환제 도입을 공약한 바 있어, 대만 사례가 한국의 제도 설계 과정에 중요한 참고가 될 전망이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국민소환제 도입과 함께 제도 남용을 막을 제도적 안전장치, 나아가 분권형 대통령제 개헌 논의까지 본격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