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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노동 법률

극심한 업무 스트레스에 시달리다 생을 마감… 法 “정신적 이상 상태였다면 업무상 재해”

광주고법, 버스기사 유족의 평균임금 정정청구 인용… “사고와 자살의 인과관계는 명백”

버스 차고지는 이른 새벽부터 엔진 소음으로 가득했다.
한 사람의 손끝이 미세하게 떨리던 순간, 그 떨림을 누구도 알아채지 못했다.
정규직 전환 첫 달, 네 차례의 사고, 그리고 회사의 짧은 한마디.
“그건 보험처리 말고, 기사님이 알아서 해요.”
그 말은 칼날처럼 그를 파고들었다.

망인 김모 씨(당시 52세)는 2019년부터 2021년까지 나주시 한 버스회사에서 운전원으로 일했다. 계약직으로 근무하다 2021년 6월 1일 정규직으로 전환됐고, 불과 12일 만에 출근을 멈췄다. 6월 18일, 그는 모텔 방 안에서 번개탄을 피운 채 숨진 채 발견됐다.
그의 죽음은 ‘개인적 선택’으로 남지 않았다. 광주고등법원은 이 사건을 업무상 재해로 인정하며, 근로복지공단의 평균임금 산정 불승인 처분을 취소했다.

법정의 논점 — ‘사망일’이 아닌 ‘정신 붕괴의 날’

    이번 사건의 핵심 쟁점은 평균임금 산정의 기준일이었다.
    근로복지공단은 김 씨가 사망한 6월 18일을 기준으로 임금을 계산했고,
    결근 기간(6월 12~17일)을 제외하여 평균임금을 하루 6만9천 원으로 산정했다.
    그러나 유족은 이 기간이 무단결근이 아니라 “업무상 스트레스로 인한 정신적 이상 상태의 결과”라며 이의를 제기했다.

    법원은 판례와 법리를 조합해 섬세하게 결론을 내렸다.
    “근로자가 업무상의 사유로 인한 정신적 이상 상태에서 자살에 이른 경우,그 인식능력이 저하되어 근로를 제공하지 못한 시점이‘사망의 원인이 되는 사고가 발생한 날’이다.”즉, 단순히 생명이 끊어진 날이 아니라‘정신이 무너진 순간’을 평균임금 산정의 기준일로 본 것이다.

    판결문은 그 시점을 2021년 6월 12일로 특정했다. 그날 김 씨는 집을 나서며 아내에게 마지막 메시지를 남겼다.

    “여보 미안해, 힘들어서 못 하겠어. 회사에서 보험처리도 안 해주고 내 사비로 해결하래.”
    그날 이후 그는 다시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법리가 포착한 ‘정신의 붕괴’

      광주고법 제1행정부는 단호했다.
      김 씨가 정상적인 인식능력을 상실한 것은 6월 12일이며,
      그 원인은 업무상 스트레스였다고 명시했다.

      당시 김 씨는 정규직으로 전환된 지 열흘 남짓한 시점이었다.
      그 사이 네 건의 사고가 잇따랐다.
      버스 후진 중 동료 차량을 들이받고,
      다음날엔 승객이 탄 채 급정거로 추돌사고를 냈다.
      회사는 그에게 보험처리를 제한했고,
      사고 건수가 인사평가에 반영될 수 있음을 암시했다.

      그는 사고 합의금을 마련하기 위해 대출을 알아보았고,
      이미 가정은 파산면책 절차를 밟은 상태였다.
      “돈이 너무 많이 들어간다”는 한마디에는
      경제적 압박이 극단적 선택의 직접적 동기로 작용한 정황이 담겨 있었다.

      재판부는 이 상황을 개인적 불안으로 보지 않았다.
      업무상 스트레스가 ‘자살 충동의 결정적 요인’이 되었음을 명확히 인정했다.
      즉, 김 씨는 스스로의 의지가 아니라,
      업무 환경이 빚어낸 정신적 붕괴 속에서 생을 마감했다는 것이다.

      평균임금의 의미 — ‘삶의 복원’이라는 법적 정의

        판결의 본질은 단지 자살의 인과관계를 따지는 것이 아니었다.
        법원이 주목한 것은 ‘평균임금’이라는 제도의 존재 이유였다.
        이는 단순한 계산식이 아니라,“근로자의 생활임금을 사실대로 반영해 통상적인 생활수준을 보장하기 위한 제도”다.

        재판부는 이렇게 적었다.

        “사망의 원인이 되는 사고가 발생한 날을 평균임금 산정 사유로 삼는 것은
        사고로 인해 임금이 왜곡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다.”

        즉, 김 씨가 정상적으로 일할 수 없게 된 6월 12일부터
        그의 경제적 손실을 배제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정신적 이상 상태에서의 결근은 근로자의 귀책이 아니라 보호의 대상”임을 의미한다.
        그 결과, 법원은 공단의 처분을 취소하고
        유족의 청구를 전면 인용했다.

        판결문 사이의 인간

          판결문 속 문장은 냉정했지만,
          그 안에는 묘하게 따뜻한 사실주의가 스며 있었다.
          ‘버스 충돌’, ‘자부담 합의’, ‘가출’, ‘모텔’
          이 짧은 단어들이 합쳐질 때,
          한 인간이 어떻게 제도의 균열 속에서 서서히 무너지는지가 드러난다.

          김 씨는 네 번의 사고를 내며도
          단 한 번의 변명조차 남기지 않았다.
          그는 자필로 합의서에 사인을 남겼고,
          회사 동료들에게 “내가 부담할게요”라고 했다.
          그 자존심은 ‘근로계약서’보다 강했고,
          그 자존심이 그를 서서히 파괴했다.

          법은 그런 무너짐을 ‘인식능력 저하’라는 문장으로 기록했지만,
          그 문장 속에는 피로, 불안, 생계의 그림자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판례의 함의 — 법이 말하는 보호의 선

            이 사건은 행정법원과 고등법원을 거치며
            ‘평균임금 산정의 시점’이라는 좁은 논점에서 시작했지만,
            결국 “노동자의 정신적 존엄을 보호하는 법의 태도”로 확장됐다.

            법원은 명확히 선언했다.

            “업무상 스트레스에 의해 인식능력이 뚜렷이 낮아진 상태에서의 자해행위는
            자유로운 의사결정에 의한 것이 아니므로,
            그 사망은 업무상 재해로 본다.”

            이 판단은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제37조 제2항의 단서 규정을
            실질적으로 재해석한 사례로 평가된다.
            이는 단순 자살을 인정한 판례가 아니라,‘정신적 이상 상태’의 인과관계를 구체적으로 입증한 첫 사례 중 하나로 꼽힌다.

            결국 법은 이렇게 말한다.


            “업무로 인한 고통이 인간의 의식을 왜곡했다면, 그 책임은 개인이 아니라 사회에 있다.”

            *이 기사는 광주고등법원 2024누11401 판결문(비실명화 편집본)을 바탕으로 사실관계를 유지하며 서사적으로 각색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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